○피지컬 씨어터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10월 7일


피지컬 씨어터(physical theatre)는 말 대신 몸을 주요 표현 수단으로 삼는 공연 양식이다. 마임과 무용, 아크로바틱의 경계를 넘나들며, 대사로는 다 담을 수 없는 감정과 기억을 몸짓과 움직임으로 전한다.
연극 <네이처 오브 포겟팅>은 영국 극단 시어터 리가 신경과학자의 자문과 치매 환자 인터뷰를 바탕으로 만든 피지컬 씨어터로, 2017년 런던 국제 마임 페스티벌에서 초연되었다. 이번 공연은 2022년 한국 프로덕션 초연 이후 세 번째 시즌이다.
이 작품은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대사 대신 신체 언어로 들려준다는 점에서, 형식과 내용이 매우 잘 맞아떨어지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공연이 시작되면 무대에는 톰과 딸 소피가 있다. 오늘은 치매를 앓는 55세 톰의 생일이다. 딸은 아버지에게 재킷과 붉은 넥타이를 골라주며 몇 마디를 건넨다. 옷을 행거 맨 끝에 걸어둘 테니 챙겨 입으라는 말을 남기고 딸은 나간다. 이 몇 마디가 작품의 대사 거의 전부이다. 그러나 이 짧은 말조차 톰에게는 온전한 문장으로 남지 못한다. '재킷', '붉은 넥타이', '행거 맨 끝' 같은 낱말의 파편만이 환청처럼 떠다닐 뿐이다.
톰은 딸을 아내로 착각하고, 재킷을 교복으로 여긴다. 붉은 넥타이는 아내 이자벨라의 붉은 드레스를 떠올리게 한다. 재킷은 교복에서 결혼식 예복으로, 생일 케이크는 파티와 다툼과 사고로 이어진다. 마치 '의식의 흐름'처럼 연상이 꼬리를 물며 장면이 이어진다.
무대에는 옷이 잔뜩 걸린 행거 두 개가 가로놓여 있고, 행거 뒤편에 한 단 높은 정사각형 단상이 놓여 있다. 단상 바깥은 톰이 딸의 간단한 말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현실 세계이다. 반면 단상은 기억의 공간이다. 톰은 이 단상 위로 뛰어오를 때마다 교복 차림의 소년이 되고, 밀려날 때마다 재킷 하나 제대로 걸치지 못하는 현재로 돌아온다.
책상을 대각선으로 늘어놓으면 교실이 되고, 그 책상을 밀어붙이면 결혼식 피로연이 된다. 몇 개의 책상과 의자, 옷가지만으로 공간이 해체되고 다시 조립된다.
이러한 극중 전환의 중심에는 행거가 있다. 행거는 현재와 과거를 가로막는 경계로 기능하며 무대를 이원화한다. 동시에 배우들은 걸린 옷을 바꿔 입는 것만으로 다른 인물이 된다. 마이크와 엠마를 비롯해 여러 인물을 오가는 김시유와 송나영의 역할 전환이 막힘없이 이루어지는 것도 이 덕분이다. 소품 하나가 공간 분할과 역할 전환을 감당한 셈이다.
톰의 뇌는 의미와 맥락을 알아차리는 힘을 잃었다. 그런데 바로 그 뇌 속에서 첫 등교, 수업 시간에 몰래 주고받는 쪽지, 둘이 한 자전거에 올라타 달리는 모습 같은 일상의 장면들이 발랄하고 경쾌하게 펼쳐진다. 아픈 뇌의 세계를 밝고 찬란한 이미지로 그려낸 아이러니가 눈물겹다.
배우들은 매우 빠른 몸놀림으로 무대를 전환하고 여러 역할을 소화하며, 정확한 호흡으로 마임과 리프트, 아크로바틱을 이어간다. 관객에게 숨 돌릴 틈조차 주지 않는다.
톰의 기억이 흔들릴 때마다 단상 위 인물들은 알 수 없는 힘에 끌려 그 바깥으로 밀려난다. 그리고 기억을 붙들려 분투하는 톰을 무력하게 바라본다. 기억은 반복될수록 점점 끊기고 일그러진다. 넷이던 책상이 하나씩 줄어들고, 결혼식 전야와 피로연이 뒤섞이고, 아내의 자리가 빈 채 딸을 임신한 장면마저 사라진다. 톰은 자꾸만 기울어지는 어린 이자벨라의 책상을 끝없이 바로 세우려 한다. 뻣뻣하게 앞으로 내미는 손짓을 되풀이하는데, 그것이 재킷에 팔을 꿰는 동작임을 알아차리는 순간 옷 입는 법조차 잃어버린 절망이 극명하게 다가온다.
톰이 아내와 차 안에서 다투다 사고에 이른 장면 또한 언어가 아닌 몸짓으로 재현된다. 이 기억은 끈질기게 되돌아오며, 모든 것을 망각해도 끝내 지워지지 않는 사랑의 아픔, 혹은 죄의식이 있음을 일깨워준다.
극이 막바지에 이르면 기억의 경계가 무너지고 단상과 단상 바깥은 하나가 된다. 배우들은 행거의 옷들을 공중으로 집어던지고, 무대는 온통 널브러진 옷가지로 뒤덮인다. 현실이라면 이 장면은 치매 환자와 그를 돌보는 가족의 고통으로 읽혔을 것이다. 그러나 이 연극에서는 오히려 환희와 그리움, 일종의 해방감으로 다가온다. 언어를 걷어내자 같은 행동이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낸 것이다.
결말에서 모든 연결 고리를 잃고 바닥에 쓰러진 톰은 그동안 아내로 여기던 딸을 비로소 '소피'라고 부른다. 이자벨라와 소피를 오간 김주연 배우의 연기는 시종일관 빼어났지만, 특히 이 장면에서 1인 2역이 빛을 발했다.
톰은 아내를 잊고서야 딸을 본다. 과거를 붙들려는 처절한 투쟁이 끝난 자리에서야 지금 눈앞에 있는 얼굴이 제 이름으로 보이는 것이다. 어머니와 오랜 친구가 생일 케이크를 들고 들어서고, 톰은 촛불 앞에서 안도와 행복이 뒤섞인 얼굴이 된다. 망각은 상실이자 동시에 현재로의 귀환이라고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치매 환자의 내면 세계를 피지컬 씨어터의 문법으로 매력적으로 풀어냈다. 그렇지만 결말이 얼마나 현실을 핍진하게 형상화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없지 않다. 톰이 곁에 있던 얼굴을 알아볼 만큼 회복된 것인지, 아니면 고통스러운 현실을 보여주는 대신 낭만적인 결말을 택한 것인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끈질기게 회귀하는 사고의 기억이 톰에게 어떤 죄의식이었는지도 끝내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무대 위 피지컬 씨어터가 강렬하게 와닿을 수 있었던 것은 김주연을 비롯한 배우들의 열연 덕분이다. 톰 역의 백성현은 교복 차림의 소년과 재킷 하나 걸치지 못하는 55세 치매 환자의 모습을 실감 나게 보여주었다. 김시유와 송나영은 옷 한 벌로 여러 역할을 넘나들며 기억 속 세계의 환상과 몽환의 분위기를 묘미 있게 자아냈다.
음악 또한 대사가 없는 무대에서 배우들의 표정과 몸짓에 담긴 의미를 선명하게 부각하는 데 일조했다. 멀티 연주자 김치영과 퍼커셔니스트 이우림은 피아노와 바이올린, 타악기를 연주하고 루프 스테이션을 활용하여 극의 호흡을 이끌었다. 두 연주자는 극적 상황을 대신 말하는 또 하나의 화자이자 배우나 다름없었다. 기억에는 닿을 수 없어도, 그때의 상황과 감정이 음악을 통해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기억은 사라져도 함께 나눈 공간과 사람은 남는 법이다. 문득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내 지인들을 생각해 본다. 여기서 만난 얼굴들도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이 공간과 시간과 사람과 함께 했다는 사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무대 위 이야기가 현실 너머의 일이 아니라 머지않아 우리에게 다가올 현실이라는 사실이 새삼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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