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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모기전쟁>

연극

by 무아(無我) 2026. 9. 29.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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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씨어터
○9월 24일



모기 세 마리가 있다. 어느 정도 살아 온 '후기', 아직 어린 '강기', 너무나 어린 '정기'는 다음 생을 위해, '피'를 빨기 위해, 살아가기 위해 움직인다. 인간에게는 손바닥 한 번이면 끝날 하찮은 존재들이지만, 이 연극에서 이들의 비행은 곧 삶 전체를 건 모험이다.

극단 불의 <모기전쟁>은 이 작은 생명체의 입을 빌려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라는 문제를 우의적으로 제기한 작품이다.

무대에는 모기 곁으로 시끄러운 파리, 교활한 개미, 도도한 거미가 등장하며 현실보다 한층 과장된 우화적 세계가 펼쳐진다. 곤충들의 윙윙거리는 소리는 인간의 머릿속을 맴도는 잡생각, 곧 내면의 목소리들을 상징한다.

걱정을 앞세워 속담을 늘어놓는 파리는 세상의 통념과 주변의 참견을, 부지런히 곳간을 채우는 개미는 "그래도 돈은 있어야지"라고 속삭이는 현실의 목소리를 나타낸다.

줄을 치고 기다리는 거미는 "모험하지 말고 좋은 데 들어가 편히 살라"며 앞길을 막는 부모와 관습의 목소리이다.

이들 사이에서 모기가 좇는 '피'는 단순한 먹이가 아니라, 나는 누구이며 왜 이 세상에 왔는가를 향한 갈증, 곧 자기 존재의 진실을 상징한다. 그러니까 모기 세 마리의 여정은 한 사람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우의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이 작품이 천착한 주제는 관습과 선택의 문제이다. 전통과 관습은 삶의 안정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되지만,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대상이기도 하다.

공연 관람 전 잠깐 전기광 예술감독과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그 자리에서 예술감독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등장하는 낙타, 사자, 아이가 작품의 모티프라고 했다. 사실 예술감독의 이 멘트는 공연 관람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실제로 연극은 곤충들의 세계를 통해 시종일관 "넌 해야만 한다"와 "난 원한다"의 갈등, 그리고 새로운 가치와 기존 가치의 충돌을 보여 준다.

가장 먼저 모기를 가로막는 것은 파리들이다. 세 마리 파리는 모기를 걱정한다며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진다', '가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등의 말을 늘어놓는다. 그러나 모기는 썩어빠진 가치라면 백날이 걸려도 바꿔야 한다고,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면 태어난 의미가 없다고 맞선다. 프라이가 되느니 계란으로서 바위에 부딪히겠다는 대사에는 모기의 결연한 기개가 담겨 있다. 쓰레기통 뷔페에 만족하며 별은 하늘에 둘 때 아름답다고 말하는 파리와, 손이 녹아내리더라도 별을 향해 손을 뻗겠다는 모기의 대비도 선명하게 제시된다.

이어 등장한 개미는 스스로를 '본좌'라 부르며 거대한 보따리를 내민다. 이 보따리만 있으면 두려움 없이 안정적으로 살 수 있고, 공기와 햇빛과 물까지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개미는 보따리에서 인간 문명의 물건들을 하나씩 꺼내 보이며 과장된 너스레로 웃음을 유발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기는 그 보따리를 "똥덩어리"라 일축한다. 개미가 날지 못하는 것은 날개가 없어서가 아니라 바로 그 보따리 때문이라며, 소유가 도리어 정신의 날개를 꺾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는 말을 덧붙인 모기는 덕분에 자신의 꿈이 더 선명해졌다며 개미를 떠나보낸다.

거미는 모기들을 가두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줄을 칠 뿐이니, 피하든 뚫든 알아서 하라고 말한다. 이어 들려주는 진드기 우화는 이 작품의 핵심을 압축적으로 보여 준다. 빨간 진드기가 다스리는 평화로운 통 속 세상에 다리는 짧지만 발이 빠른 초록 진드기가 나타난다. 모두가 초록 진드기를 흉내 내다 세상이 무너질 지경에 이르자, 우두머리의 결단으로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는 이야기이다. 거미는 모기들이 바로 그 초록 진드기라고 경고하며, 선조의 선조로부터 이어진 이 줄이야말로 완벽하다고 말한다. 이는 대대로 이어져 온 질서를 절대적인 것으로 여기는 관습의 목소리를 대변한 것이다.

모기는 진드기 하나하나가 존중받지 못하는 세상이라면 그 평화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되묻는다. 그리고 대부분의 모기가 허무하게 사는 것은 거미의 줄 때문만이 아니라 각자가 개별적인 자기로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관습을 탓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개인의 책임을 제기한 것이다.

작품이 지향하는 바는 명확하다. 모기는 모든 논쟁에서 승리하며, 파리와 개미와 거미는 모기의 지향을 돋보이게 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존재들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작품이 제기한 문제에 대해 정답까지 제시한 것은 아니다. 모기들이 좇아야 할 '피'가 무엇인지, 그 '피'를 좇은 대가가 무엇인지는 각자가 판단해야 할 몫으로 남는다. '피'를 향해 날아오른 모기들이 결국 죽음을 맞는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 준다.

원론적으로 우의적인 연극은 비유와 상징으로 의미를 전달하기 때문에 직설적인 화법과는 일정한 거리가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모기가 여타 곤충들과 논쟁하는 과정에서 격언과 경구를 인용하며 자신들의 가치관과 삶의 지향을 강조하는 등, 교술적이고 다분히 계몽적인 요소가 없지 않았다. 자칫 난해하고 교훈적인 작품이라는 인상을 줄 수도 있었지만, 익살스러운 표현과 몸짓이 이러한 여지를 최소화하고 연극적 재미를 더하는 데 일조했다.

속담을 늘어놓는 파리들 앞에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기르트", "빈센트 반 고기"를 들먹이며 예술을 논하는 모기들의 말장난이나, 피를 너무 마셔 이상해졌다는 옛 모기 이야기를 들려주는 파리들의 과장된 몸짓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배우들은 각자 맡은 곤충의 특징을 묘미 있게 형상화하며,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이 작품에는 곤충들 외에 '유령'이 등장한다.
유령은 초반부터 흰옷을 입고 말없이 곤충들 사이를 오가며 무언가를 쉼 없이 적는다. 그래서 처음에는 작중 세계를 주관하는 '작가'를 형상화한 존재인가 보다 했다.

그런데 그가 적는 것은 분리수거할 재활용품 목록이다. 그는 이 '예쁜 쓰레기'들을 녹여 또 하나의 예술 작품을 만든다고 말한다. 모기가 이 땅에 온 순간부터 사라질 때까지 적어 왔고, 앞으로도 적을 것이라고 한다. 누가 그러라고 시켰느냐는 물음에는 그랬던 것 같다고 얼버무리고, 왜 하느냐는 물음에는 자기도 모르겠다고 답한다. 명령에도 저항에도 매이지 않은 채, 그저 낡은 것을 녹여 새것을 빚어낼 뿐이다. 모기들이 파리, 개미, 거미와 투쟁하는 동안, 유령은 그 너머의 자리에서 삶 전체를 지켜보고 있는 셈이다.

그런 그가 죽음을 맞은 모기들을 차례로 맞이한다. 한 모기는 죽는다는 것이 생각보다 아름답다고 말한다. "조금 더 멋지게 활공할 걸" 하고 아쉬워하는 모기에게 유령은 "넌 너로서 충분히 잘 날아간 거야"라고 말한다.

이렇듯 연극은 결말에 이르면서 위험을 무릅쓰고 날아오른 작은 존재의 삶을 지지하고 온전히 긍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홀로 남은 모기가 '고독을 즐기는 모기는 있어도 외로움을 즐기는 모기는 없다'고 읊조리면서도, 보따리를 그냥 주겠다는 개미의 마지막 유혹마저 뿌리치고 날아오르는 장면이 이를 잘 보여 준다.

모기들이 다음 세대도 또 다른 피와 마주하며 계속 피를 원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듯, 이 비행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쓰레기가 녹아 다시 작품이 되듯, 같은 삶이 거듭되어도 모기는 기꺼이 다시 날아오를 것이다.

자신을 아는 것이 가장 어렵다는 탈레스의 말처럼, 이 연극이 궁극적으로 던지는 물음도 결국 '나는 누구인가'로 귀결된다. 마지막 장면에 제시된 네 가지 물음,  "모기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무엇을 행해야 하는가", "무엇을 희망해야 하는가", "모기란 무엇인가"는 칸트가 철학의 근본 물음으로 꼽은 네 질문을 변용한 것이다.

이는 작품의 주제의식을 직설적으로 제시한 것이나 다름없지만, 이에 대해 답을 구하는 일은 오롯이 관객의 몫이다.

<모기전쟁>은 사전 정보 없이도 충분히 즐길 수 있지만, 우의적인 외피 안에 담긴 깊은 의미를 온전히 간취해 내기가 쉽지만은 않은 연극이다. 그럼에도 극장을 나선 뒤에도 자꾸 공연 장면을 떠올리게 되고, 작품이 말하고자 한 바를 곰곰이 되짚으며 자신을 성찰하게 된다. 나를 살게 하는 '피'는 무엇인가...

거미와 개미

                

모기들

      

이날 공연에서는 황정후, 이강, 김수정이 세 마리 모기 '후기'와 '강기' 그리고 '정기'를 맡았다. 고해솔, 박준일, 김현주가 '해파리'와 '박파리' 그리고 '주파리'를 연기했고, 이승재가 '개미'를, 강민서가 '거미'를 맡았다. 유령은 안호주가 담당했다.
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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