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돌극장
○5월 3일


연극 <나는 왜 없지 않고 있는가?>를 관람했다. 관람 전에 제목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짚이는 바가 있었다. 철학자 라이프니츠가 말한 '왜 아무것도 없지 않고 무언가가 있는가?'라는 물음과 매우 닮아 있어서이다. 맥락과 논의 층위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라이프니츠의 말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모두 존재 이유가 있다’는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연극은 ‘극중극’ 형식을 통해 삶과 죽음, 과거와 현재, 허구와 실재 사이의 경계를 허물며 결국 '나는 왜 이 세상에 존재하는가'라는 실존적 질문을 제기한 작품으로, 3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1막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둔 한 철거촌의 애환과 감동을 간직한 주인공 '삼영'의 이야기가 '극중극' 형식으로 펼쳐진다. 극장에 들어서자 마치 낭독극인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문구가 무대에 제시되어 있었는데, 사실 이는 1막이 '극중극'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삼영'이 몹쓸 짓을 당하자 마을 사람들이 삼영에게 보신탕을 먹이기 위해 티격태격 옥신각신하는 장면이 제법 길게 이어지는데, 여기서 '보신탕'은 중요한 극적 의미를 함축한 소재이다. 88년도에 이른바 선진국들이 보신탕 먹는 한국인은 야만인이라는 식의 비난을 하자, 우리나라에서 보신탕을 금지한 적이 있다. 이에 대해 보신탕은 우리의 전통적인 식문화인데, 이를 문제삼는 것은 문화제국주의의 횡포라는 반론이 제기되었더랬다. '극중극'은 당시의 시대상황을 일정하게 반영하면서, '삼영'의 건강을 염려한 마을 사람들의 지극한 배려와 공동체적 연대를 '보신탕'이라는 소박한 음식 한 그릇에 담아냈다.
이 연극에서 1막 '극중극'은 이후 전개되는 극적 서사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삼영을 연기한 배우가 삼영의 딸 지수라는 점, 당시 삼영은 보신탕을 해준 사람 가운데 한 명인 순박한 남정네와 연애에 빠져 결혼하게 되고 딸 지수를 낳게 되었다는 점, 삼영에게는 고단하고 모진 시절이었지만 훗날 그녀가 회고하는 생의 가장 빛나는 시간이었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2막은 '극중극'이 끝나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1막 공연을 끝낸 배우들은 자신들의 연극 속에서 '삼영' 역으로 출연한 배우 지수의 실제 어머니가 삼영이었으며, 연극은 그 어머니의 실제 과거 이야기였음을 알게 된다. 허구인 줄 알았던 무대가 현실의 삶으로 직결되는 이 전환의 순간은, 극 전체에서 가장 충격적이고도 섬세한 장치다.
그리고 3막에서 지수는 현재 투병 중인 엄아(연극 속 삼영)를 만난다. 젊은 엄마를 연기했던 딸 지수와 실제 엄마의 만남 속에 과거(극중극)가 소환되며 지수와 엄마의 해묵은 갈등이 풀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1막과 2막 그리고 3막은 긴밀한 유기적 연관을 지니며 짜임새 있게 전개되는데, 가장 핵심은 3막이라고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극중극' 형식과 마을 사람들은 엄마 삼영과 딸 지수의 사연을 들려주기 위한 보조적, 부차적 역할을 하는 장치요 요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극 배우 지망생이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인 딸 지수는 모처럼 엄마에게 맛있는 음식을 사드리려 하고, 시한부 삶을 살고 있는 엄마는 딸의 형편을 헤아려 완강히 거부한다. 모녀가 티격태격하는 이 일상적인 장면 속에서, 두 사람 사이에 쌓여온 가족사의 응어리와 해묵은 감정선이 서서히 전면으로 떠오른다.
그리고 자칫 무겁고 가라앉은 분위기가 지속될 수 있는 상황에서 깨알 웃음을 자아내는 요소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엄마를 사랑하는 남정네가 딸 승혜와 함께 등장하여 감초같은 웃음을 자아내는 장면이다. 그런데 그 남정네는 1막의 '나씨'와 동일한 배우인데, 이는 엄마와 결혼한 사람, 즉 지수의 아빠가 바로 그 나씨였음을 암시한다.
암 투병중인 엄마가 무심한듯한 표정으로 본인이 딸보다 이쁘다는 의미의 말을 반복하는 모습도 허를 찌르는 웃음을 자아내는 데 일조했다.
엄마와 딸이 주고 받는 대화에서 '가짜 같은 진짜'와 '진짜 같은 가짜'라는 표현이 여러 차례 되풀이된다. 연극보다 더 연극적인 삶이 전자라면, 실제 삶을 토대로 꾸며진 무대 위의 허구가 후자이다. 그리고 ‘연극’과 ‘삶’의 관계는 삶과 죽음의 관계로까지 확장된다. 죽음은 삶의 끝이면서, 동시에 삶이 '가짜 같은 진짜'임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순간이기도 하다.
죽음을 목전에 둔 엄마는 딸을 위해 따뜻한 밥과 국을 차려주는데, 이 장면은 1막의 '보신탕'과 긴밀히 호응한다. 1막에서 마을 사람들이 삼영에게 보신탕 한 그릇을 내밀었던 것처럼, 3막에서 어머니는 딸에게 밥 한 상을 차려준다. 먹이는 행위, 즉 타자의 몸과 삶을 염려하는 가장 원초적인 사랑의 형식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라 할 수 있다. 그렇게 엄마는 돌아오지 않는 길로 떠나고, 딸은 어머니가 차려준 따뜻한 밥과 국을 먹으며 두 사람이 나누었던 대화와 삶의 의미를 홀로 반추한다.
'나는 왜 없지 않고 있는가.' 이 질문은 단순히 생의 존재 이유를 묻는 것이 아니다. 지수는 엄마의 죽음 앞에서, 그리고 엄마의 삶을 무대 위에서 연기했던 기억 앞에서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묻는다. 나는 왜 하필 이 엄마의 딸로 태어났는가, 나는 왜 엄마의 젊은 날을 내 몸으로 연기해야 했는가, 나는 엄마의 삶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었는가. 딸은 엄마의 젊은 날을 연기하며 엄마에게 깊이 다가가지만, 엄마와의 사이에 놓인 갈등과 번민이 단박에 해소되는건 아니다. 딸에게 엄마는 여전히 자 알 수 없는 존재이며, 엄마에게 딸 또한 그러하다.
연극은 '딸 속에 엄마가 있고 엄마 속에 딸이 있다'는 설정을 통해, '나'와 '타자'는 분리되지 않는 운명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완전한 이해에 닿지 못하면서도 끝없이 다가가려는 그 몸짓 속에서 비로소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음을 설득력 있게 풀어갔다.
‘연극’과 ‘현실’의 관계나 시한부 삶을 목전에 둔 엄마와 딸 등의 상황 설정은 그리 새로운 요소로 보기 어려운 점이 있다. 그럼에도 이 연극은 감동적이고 깊은 울림을 준다. 이 연극은 삶의 의미에 관한 철학적 사유를 관념이 아닌 가장 구체적이고 온기 있는 서사, 즉 ‘어머니가 차려준 밥 한 그릇’으로 구현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모든 배우들이 열연했지만, 엄마 역의 장하란 배우가 특히 돋보였다.장하란 배우의 표정과 말투는 엄마 ‘삼영’의 내면을 완벽히 소화해서 보여주었다. 어느 시점부터 나도 모르게 얼굴이 젖어 들었다. 그녀가 날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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