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 비극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에우리피데스 作 <타우리케의 이피게네이아>
그리스 비극은 신화에 기반하되 전승 신화를 그대로 수용한 것이 아니라 일정한 변용과정을 거쳐 재창조한 작품이다. 이는 그리스 비극이 신화와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지만 신화 그 자체는 아니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전승 신화의 핵심 화소를 유지하되 당대 시대상황과 작가의식이 반영되어 새로운 작품으로 거듭난 셈인데, 그리스 비극에서 보이는 이러한 양상은 그리스 시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까지 이어지며 지속적으로 전변되어 오고 있다. 가령, 괴테나 라신의 <이피게네이아>도 '이피게네이아' 신화의 전승 맥락 속에서 전변된 예이다.
'신비평주의자'들은 작품을 작가, 역사, 사회적 배경과 같은 외부적인 요소와 분리된 자율적인 총체로 보고, 텍스트 자체에 대한 내재적인 분석을 통해 그 의미와 가치를 구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다분히 극단적이다. '작품'과 '작가의 삶'과 '역사적 상황' 등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동시대 작품이 아닌, 이른바 '고전' 을 제대로 감상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대의 역사적 상황이나 작가에 대한 정보 등에 관한 배경 지식이 특히 더 필요하다.
한때 '고전'을 전공하면 '고전'한다는 우스개소리를 하곤 했다. 인접학문이나 알아야 할 배경 지식이 많은 탓에 괴로움이 없지 않지만, 탐구하는 재미가 쏠쏠한 측면도 있다.
원론적으로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그리스 비극 텍스트 자체만 읽어도 어느정도 즐길 수 있고 해당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간취해 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비극으로 정립되기 이전 신화의 전승 양상을 파악하고 그리스 폴리스 시대의 역사적 상황에 관한 지식을 습득한다면, 작품을 좀 더 심도 있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다 해도 여전히 만만치 않은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그리스 비극의 근간이 되는 '신화'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볼 것인가, 해당 신화가 그리스 비극에서는 어떻게 변용되고 재창조되어 새로운 의미망을 구축했는가 하는 문제와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신화는 우주, 자연, 인간, 문명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이며, 비유와 상징의 언어로 되어 있어 그 의미를 파악해 내기가 쉽지 않다. 때론 역사와도 긴밀한 연관이 있어서, 어떤 관점에서 어떤 의미 층위를 읽어내느냐에 따라, 동일 작품에 대해서도 다양한 해석 시각이 제출될 수 있다.
그리스 비극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인간의 존재론적 관점, 역사적 관점, 제의적 관점 등 여러 시각 가운데 어떤 관점을 택하느냐에 따라 의미 해석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번에 그리스 3대 비극 작가의 작품을 모조리 읽어보겠노라며 4권의 전집을 구입했는데, 현재 6작품밖에 읽지 못했다.

<타우리케의 이피게네이아>는 우리에게 그리 익숙한 작품은 아니지만, 비극 양식의 변화와 새로운 장르 개척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 그리고 과연 이 작품을 비극으로 볼 수 있는가 하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를 중심으로 이 작품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Deus ex Machina)'는 "기계 장치로 내려오는 신(God from the machine)"을 의미하는 라틴어로, 극의 논리적 전개와 무관하게 초월적인 존재가 갑작스럽게 등장하여 해결 불가능해 보이는 갈등을 해소하고 극을 종결시키는 극적 기법을 말한다.
실제로 그리스 비극 공연에서 기계장치를 이용하여 신이 무대로 내려오는 장치가 있었으며, 에우리피데스가 이 장치를 애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스 문학 전통에서 신이 인간사에 개입해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는 이미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딧세이아>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일리아스>에서는 아가멤논에 분노한 아킬레우스가 칼을 뽑으려고 하자 아테나 여신이 나타나 그의 머리카락을 잡아서 그가 이성을 회복하게 한다. <오딧세이아>에서는 아테나 여신이 등장해 오디세우스가 모든 적을 해치우는 것을 도와 내전을 끝낸다.
에우리피데스가 애용한 극작술인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이러한 호메로스의 전통을 이은 것이라 할 수 있다. 호메로스 신들을 작품에 등장시키는 것을 꺼려하던 당시 분위기와는 달리, 에우리피데스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빈번하게 활용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방식으로 결말을 맺는 것은 플롯의 개연성에 따른 사건 전개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지나치게 작위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에우리피데스의 <타우리케의 이피케니아>에서 '이피게네이아'와 '오레스테스' 남매는 여사제의 권한을 이용해 타우리스 왕 토아스를 속이고 아르테미스 신상과 함께 탈출을 시도하나, 왕이 이를 눈치채고 추격하며 탈출이 거의 좌절되는 마지막 순간 '아테나'신이 등장하여 이들을 구한다.
아테나 여신은 분노하여 추격하는 토아스 왕에게 직접 나타나 더 이상 추격하지 말라고 명령하며, 남매의 탈출을 돕는다. 토아스에게 '이피게네이아'와 '오레스테스'가 신들의 뜻에 따라 행동했음을 설명하고, 신전의 여사제와 신상을 빼앗긴 것에 대한 보복을 중단시키며 평화적인 해결을 강제한 것이다.
남매에게는 앞으로의 여정과 최종 목적지를 구체적으로 지시한다. '오레스테스'는 복수의 여신들의 분노를 피해서 타우리스에 와서 '이피게네이아'를 아르고스로 데려가고, 그의 고통을 끝내기 위해서는 아르테미스 여신상은 아테네로 가져가야 한다는 것이다.
논리적인 전개나 인간적인 노력으로 풀 수 없는 문제를 신의 개입으로 해결한 것인데, 결국 오레스테스 남매가 비극적 운명에서 벗어나며 표면적으로 행복한 결말로 끝맺은 것도 '데우스 엑스 마키나' 덕분인 셈이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아이러니컬하고 역설적인 극작술로, 인간의 운명이 여전히 신의 섭리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인간 존재의 비극성을 심화하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에우리피데스가 택한 신들의 개입을 통한 문제 해결 방식이 다분히 자의적이거나 비논리적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방식을 애용했다는 이유로 <타우리케의 이피게네이아>를 비극이 아닌 '모험극'이나 '멜로드라마'로 보기도 한다.
그렇다면 에우리피데스가 소크라테스적 이성과 합리성을 중시했음에도 불구하고,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 방식을 애용한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아이스퀼로스나 소포클레스가 신적 개입을 엄숙하고 필연적인 운명의 발현으로 묘사한 것에 비추어 볼 때, 에우리피데스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다분히 억지스럽고 갑작스러운 데가 있다. 아테나가 오직 명령으로 복잡한 갈등을 정리한 것처럼, 신의 개입이 극의 논리적 필연성이 아닌 외부의 강제적인 힘으로 느껴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결국 비논리적으로 강요된 신의 뜻은 역설적으로 신의 권위에 대한 회의감을 유발하는 결과를 낳는다.
극의 논리적인 전개나 인간의 이성적인 노력(소크라테스적 합리성)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억압적인 외부의 힘, 즉 신적 섭리의 자의성을 표현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합리적인 인간 세상 위에는 여전히 부조리하고 초월적인 권위가 존재함을 보여준다.
이렇게 볼 때, 에우리피데스는 합리적 사유를 바탕으로 신화 속 신들의 자의성을 비판하고 인간의 무력함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효과적인 극적 장치로 사용했다고 할 수 있다. (에우리피데스가 당시 대중적인 관심과 흥미를 끌기 위해 이 수법을 애용했다는 주장도 있다.)
<타우리케의 이피게네이아>를 비극이면서도 희극의 성격을 함께 지닌 희비극이라고 하거나 멜로드라마나 모험극으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복잡하게 얽힌 사건을 빠르게 정리하고 등장인물들을 위험에서 구출하여 행복한 결말을 가져온 것으로 볼 수도 있기에 가능한 해석 시각이다.
그러니까 에우리피데스의 <타우리케의 이피게네이아>의 양식적 특질과 주제의식을 탐구하는 데 있어,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는 극적 장치를 어떻게 이해하는가 하는 문제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어떤 시각으로 접근하느냐에 따라 해석의 층위도 달라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대부분의 고전이 그러하듯이, 우리는 그리스 비극을 '열린 텍스트'로 바라볼 필요도 있을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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