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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햄릿>

연극

by 무아(無我) 2025. 10. 14.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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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
○ 2024년 11월 2일



조승우의 <햄릿>을 관람했다. 예매 시작하자마자 티켓이 매진되어 포기했다가, 혹시나 하는 맘에 인터파크를 들락거리다가 어렵게 1매를 건졌다. 1층 B구역 3열 2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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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강필석의 <햄릿>(국립극장 해오름극장/홍익아트센터)과 이봉련의 <햄릿>(명동예술극장)도 관람했다. 그런데 강필석이나 이봉련과 견주어 볼때, 조승우의 '햄릿'은 단연 압권이었다. '비교 불가'라는 말이 더 적절할 것이다.

'햄릿'은 어떤 인물인가?

덴마크의 왕자로 왕위를 계승할 위치에 있었지만, 삼촌 클로디어스가 아버지를 살해하고 왕위에 올라 어머니와 재혼함으로써 햄릿의 운명은 완전히 뒤바뀌고 만다.

유령으로 나타난 아버지는 자신이 살해되었음을 알리며 부자지간의 정을 내세워 복수를 요청하면서, 스스로의 마음을 더럽히거나 어머니에 대해 계책을 꾸미지 말라는 당부를 덧붙인다. 복수는 정의의 실현이어야 하며, 복수에 사로잡힌 악마가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햄릿은 도덕적 방식으로 복수를 실행함으로써 정의를 구현해야 한다.

햄릿은 어머니 거트루드에 대해서도 역겨움과 냉소를 감추지 않는다. 아버지가 살해당하고 곧바로 클로디어스와 재혼한 욕정의 추악함에 환멸을 드러내며,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라거나 여자의 몸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진저리를 친다.

근친 살해와 근친 상간을 범하고 권력을 차지한 클로디어스는 악인(惡人)이며, 햄릿이 악인을 처단하는 것은 사적 복수를 넘어 부패한 국가의 공적 제도와 질서를 바로 세우는 정의로운 행위이다.  

그러나 햄릿은 아버지의 요청에 따른  복수를 곧바로 실행에 옮기지 않는다. 우선 클로디어스가 정말 아버지를 살해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아버지가 유령으로 나타나 자신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담은 극중극을 펼쳐보인다. "연극의 목적은 자연에다 거울을 비추는 일, 선은 선 그대로 악은 악 그대로 비춰내며 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데 있다"면서...

연극을 보던 클로디어스가 왕 독살 장면을 보고 당황해하며 자리를 떠나자,  햄릿은 숙부가 실제로 아버지를 살해했다고  확신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햄릿은 곧바로 클로디어스를  처단하지 않고  고뇌한다. 사사로운 명분에 의해서가 아니라, 공적이고 도덕적인 방식으로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가령 암살은 손쉬운 복수일 수 있지만, 공적이고 도덕적인 방법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래서 죄를 참회하며 기도하는 클로디우스를 살해할 수 있었음에도, 그대로 둔다.

지나치게 신중한 태도를 보이며 복수를 유예하다 결국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마는 햄릿의 이런 모습은 세익스피어의 또 다른 비극의 주인공인 리어, 오델로 그리고 맥베스가  성급한 판단과 행동으로 파멸하는 것과 대비되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대비적인 모습은 작품 내에서도 나타난다. 햄릿과 달리, 레어티즈와 포틴브라스는 살해 당한 아버지를 위해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복수를 결행하는 것이다. 특히 레어티즈는 아버지의 죽음과 동생 오필리아의 죽음에 직간접적인 책임이 있는 햄릿과    결투를 벌이다 함께 죽음을 맞이한다는 점에서, 햄릿의 비극성을 심화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햄릿이 이성적이고 대의명분을 중시하며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인 것은 사실이나, 실천력이 결여된 도덕군자의 모습으로 일관하는 것은 아니다. 지나치게 신중하거나 이성적인 모습을 보이다가도 격정적으로 감정을 토로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광대들과 이야기할 때의 표정은 능청스럽고 익살맞기조차 하다. 어머니에 대한 혐오가 여성 혐오로 확대되어, 오필리아를 사랑하면서도 거친 감정을 드러내며 학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플로니어스 살해 장면(의도적인 살인은 아니라 할지라도)과 마지막 장면에서 레어티즈와 검술  대결을 벌인 장면은 햄릿이 우유부단과는 거리가 먼, 용맹함과 단호함을 지닌 승부사이기도 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결말에 이르러 햄릿과 악을 상징하는 클로디어스의 대비는 더욱 선명하게 제시된다. 레어티즈에게 독이 묻은 검을 마련해 주는가 하면 술에 독을 타서 햄릿을 독살하려 한 클로디어스는 정의와는 거리가 먼, 비열하고 사악한 방법을 선택한 인물이다. 이에 비해 햄릿은 지극히 정당한 방법으로 레어티즈와의 검술 대결에 임하며, 클로디어스의 비열한 행태를 확인하고 칼로 그를 단죄한다.
아들 햄릿이 마실 수도 있었던 독배를 스스로 마심으로써 죽음을 맞이한 거트루드, 햄릿과의 결투에서 패해 죽음을 맞이한 레어티즈... 햄릿은 정당한 방법으로 정의를 실천하고, 합법적으로 통치할 인물에게 권력을 위임하고 죽음을 맞는다. 죽음을 담보로 사적인 복수 대신 대의와 공적 윤리를 실천한 셈이다.

흔히 저돌적인 '동키호테형' 에 대비되는 우유부단한 인간 유형을  '햄릿형'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는 작품에 형상화 된 '햄릿'의 한 단면에만 주목한 명명일 뿐, '햄릿'의 면모를 온전히 반영한 것이라 하기 어렵다.

조승우는 '햄릿'의 다면적인 캐릭터, 예컨대 인간의 본질과 자신의 운명에 고뇌하는 모습, 격하게 슬픔이나 분노를 드러내는 모습, 너스레 떨듯 능청스러운 표정 등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햄릿의 감정과 심리를 자연스러우면서도 생동감있게 보여주었다.

확실히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다. '조승우'와 동시대에 있다는 사실이 새삼 행복하다. 무대도 세련되게 설계되었다. 뒤로 갈수록 기울어진 세 개의 각진 기둥은 마치 비극을 향해 나아가는 햄릿의 운명을 상징하는듯 했다.
  
커튼콜 사진 못찍게 해서, 유튜브 홍보 동영상에서 몇 장면 캡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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