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그린 씨어터
○10월9일

극장에 들어서니, 사각 모양의 무대가 보인다.

이후 극의 전개과정에서 확인되는 것이지만, 사각무대는 의사 '다이사트'가 '알런'을 관찰하고 치료하는 공간, '알런'이 관객에게 둘러싸여 고립되고 해부당하는듯한 공간, '알런'이 말을 타고 일종의 제의를 치르는 공간 등으로 기능한다.

공연은 정신과 의사인 '다이사트'가 해설자로 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다이사트'는 기억을 재현하는 다층적 '액자식' 수법과 현재의 이야기 흐름 중간에 과거 사건이나 장면을 삽입하여 보여주는 기법인 '플래시백(flashback)'으로 서사를 끌어가며 관객에게 극중 상황을 설명한다. 나아가 '알런'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실존적 고민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다이사트' 는 주인공이나 다름없는 매우 중요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의 실질적 주인공인 '알런'은 17살 소년으로, '말굽 파개'로 여섯 마리 말들의 눈을 찌른 사건으로 인해 '다이사트'에게 진료를 받는 환자로 등장한다.
'다이사트'가 '알런'의 정신세계를 유추하고 왜 말의 눈을 찔렀는지 알아보기 위해 '알런'과 그의 부모에게 질문하는 과정에서 '알런'이 어떤 가정 환경에 놓여있는지 드러난다.
아버지 '프랑크'는 사회주의자이자 무신론자로, 억압적이고 권위적인 인물이다. 반면 엄마 '도라'는 강박증이 있을 정도로 신암심이 강한 인물로, '알런'이 어려서부터 신에 대한 강한 숭배와 신앙심을 갖게 된 것도 '도라'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알런'은 부모의 상반된 종교관으로 인해 갈등하며,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탈출구를 모색한다. '에쿠우스'가 바로 그것이다.
제목이기도 한 '에쿠우스'는 '말'을 의미하며, 이 작품에서 '말'이 갖는 상징적 의미와 비중은 매우 크다. '알런"은 가정에서 느꼈던 억압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말'에 대한 숭배를 중심으로 자신만의 신앙을 만든다. 신적 존재로 여긴 '말'에 예수의 이미지를 중첩시킨 '에쿠우스'는 알런에게 일종의 탈출구였다.
알런은 어린 시절의 승마 경험과 예수에 대한 종교적 열정을 떠올리면서 '말과 예수가 구세주의 쇠사슬과 말의 이빨 사이에 낀 재갈로 하나가 된다'고 생각한다. 고통받는 예수와 고통받는 에쿠우스를 동일시한 것이다.
그런데 '에쿠우스'는 알런에게 숭배의 대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 자리 잡은 원초적 생명을 상징하며, 이는 성적 이미지로 표출된다.
알런은 어린 시절 '트로이젠'이라는 말에서 시작하여 '너제트'를 몰래 탔던 경험을 통해, 흥분과 환희 나아가 성적 흥분을 느낀 적이 있다. 어린 시절 말타기를 통해 자유를 체험한 경험은 알런이 '말'과 성적 합일을 시도한 것과 긴밀한 연관이 있다.
'알런'이 '에쿠우스'와 하나가 되는 것은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한 욕망을 자유롭게 발산하며 더없이 행복한 희열을 구현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여섯 마리의 말로 분(扮)한 배우들의 에로틱한 신체미와 섹시한 말 울음 소리는 내적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를 갈구하는 알런의 몸짓을 극적으로 부각하는 데 일조한다. 조명과 배경음악도 함께...
'질메이슨'이라는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 있다. 그녀는 '알런'에게 호감을 보이며, 함께 성인 영화를 보러 가자고 제안하고 마구간으로 가서 성관계를 시도한다.
'질'이 제안한 두 가지 사안은 '알런"에게 엄청난 심리적 충격을 안겨주는 계기로 작용한다.
'질'과 함께 간 성인영화관에서 '알런'은 아버지 '프랑크'를 만난다. 아버지는 업무차 온 것뿐이라며 극구 변명하지만, 알런은 아버지가 자신과 다를바 없다며 '다 똑같다'고 울부짖는다. 인간이 겉으로는 도덕적으로 보여도 속물적 욕망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은 셈이다.
'질'과 함께 마구간으로 가서 성적 교감을 나누는 장면에서 알런의 내적 갈등은 극대화 된다. 알런에게 '마구간'은 신적 존재가 거주하는 신성한 공간이다. 그러한 공간에서 '질'과 나누는 성적 행위는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적나라하게 분출한 것이다.
이 장면에서 '질'은 전라에 가까운 연기를 보여줌으로써, 신성성과 대비되는 인간의 세속적 욕망을 극적으로 부각했다.
이런 상황에서 '알런'은 결정적인 순간에 '말'들이 자신을 지켜본다는 환각과 말울음 소리가 들리는 듯한 환청으로 인해 '질'과 성적으로 합일되지 못하고, 신적 존재에 대한 배신감과 죄책감으로
괴로워한다. 그리고 마침내 광기를 뿜어내며 흉기로 여섯마리 말들의 눈을 찌른다.
'알런'이 말들의 눈을 찌르는 행위는 인간적 욕망을 감시하고 방해하는 신적 존재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의지를 실현하고자 한 시도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자신만의 신을 만들고 그 안에 갇혀 있다가 뒤늦게 인간적 욕망을 긍정하며 폭력적 광기를 드러내는 것은 왜곡된 현실인식이며, 정신과 의사 '다이사트'가 '알런'을 환자로 받아들여 치료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사실은 '알런'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다이사트'가 외려 환자 '알런'을 부러워하고 열정과 활력을 잃어버린 자신의 삶에 대해 회의를 드러낸다는 점이다.
'다이사트'는 부인과 6년동안 키스도 하지 않았으며, 부부 관계를 하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안정적이지만 무기력한 자신의 삶에 비해, '알런'은 원초적 욕망과 생명력이 충만한 젊음 그 자체이다.
그렇다면 '알런'을 치료하는 것은 곧 알런의 열정과 에너지를 거세하는 일이나 다름없는바, 의사 '다이사트'는 자신이 처한 딜레마 상황에서 느끼는 내적 갈등을 토로하며 극은 막을 내린다.
'알런' 역의 이충곤과 '질'역의 김성진은 이번 공연에서 처음 본 배우인데, 무척 매력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표정이나 몸짓, 딕션 등 어느 것 하나 나무랄 데가 없었다. 여섯마리의 말로 분한 배우들도 모두 탄탄한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가장 아쉬운 배역은 '다이사트'의 장두이 배우였다. 관록이 빛나는 노장이어서 기대하는 바가 있었으나, 장두이는 시종 독백체로 일관했으며 냉철하면서도 내적 고민에 사로잡힌 의사 '다이사트'의 캐릭터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이 작품에서 '다이사트'는 사건 전달자 역할을 하며 기억을 재현하는 방식으로 극을 이끌어 가기 때문에, 독백체의 대사가 상황에 어울리는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극중 인물로서 리얼리티를 확보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도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고 일관된 톤을 유지함으로써, 관객의 몰입감을 깨뜨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렇다 해도 한국 초연 5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인 만큼, <에쿠우스>의 진면목을 다시 한번 감상하는 자리로 손색이 없었다. 2022년 충무아트센터에서 관람한 <에쿠우스>와 비교했을때, 무대 장치나 말의 분장 등이 대동소이했다. 모두 이한승이 연출을 담당했으므로, 두 작품이 거의 같은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7마리의 말이 등장했던 지난 공연과 달리 이번에는 6마리의 말이 등장했는데, 이러한 차이가 작품의 의미에 변화를 가져온 것은 아니다.
인간은 참으로 복잡한 존재이다. 원시상태에서 벗어나 역사가 누적되면서, 그 복잡함은 갈수록 심화되는 것처럼 보인다. '윤리'와 '욕망'의 갈등이 대표적이다. '윤리'는 이른바 인간다운 삶과 가치'를 지켜주지만, 어느 지점에서는 인간의 본성을 억압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욕망'은 인간의 본성에 충실한 속성을 지니고 있지만, 제어하지 않은 '욕망'은 혼돈과 무질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 연극은 인간의 본성과 억압, 윤리와 욕망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제기한 작품이다. 3년전 관람했지만, 이번 공연을 보면서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하는 문제에 대해 다시 한번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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