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
○ 2월14일


예술의 전당에서 연극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관람했다. 올 매진인데, OP석 1열 22번 좌석에서...
인터파크에는 이 작품을 '뮤지컬'로 분류했는데, 실제 공연을 보니 뮤지컬이라기보다는 연극에 훨씬 가까웠다. 라이브 반주와 집단적 합창 및 몇몇 노래가 불리고 약간의 율동이 있긴 했지만 서사를 견인하는 독립적 뮤지컬 넘버로 볼 수 있는 곡은 거의 없고, 대사 중심의 극적 짜임을 바탕으로 시각적 구현에 중점을 둔 무대였기 때문이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2001년 개봉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영화의 원제는 <千と千尋の神隠し>로, 직역하면 ‘센과 치히로의 신에 의한 숨김’ 혹은 ‘신에 의해 감추어진 사건’에 가깝다. ‘神隠し(가미카쿠시)’는 일본 민속에서 사람이 신이나 요괴에 의해 다른 세계로 끌려가는 사건을 뜻하는 용어로, 단순한 실종이 아니라 신적 개입이 전제된 사건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를 한국 제목으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라 한 것은 원제의 의미를 정확하게 담아낸 번역으로 보기는 어렵다. ‘행방불명’은 일상적 실종의 의미를 담고 있어, 신도적 세계관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神隠し’의 민속적·신화적 의미나 맥락을 온전히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센과 치히로’라는 병기의 의미가 상대적으로 약화되었다고 볼 수 있는 여지도 있다. 원제는 이름을 빼앗긴 존재(센)와 본래 이름(치히로)의 병치가 ‘神隠し’와 연결되어 정체성의 이중 구조를 강조하지만, 한국어 제목에서는 주인공의 ‘실종’이라는 ‘사건’으로서의 성격이 더 강하게 부각되기 때문이다. 아마도 ‘神隠し’에 정확하게 조응하는 번역어를 찾기 어려워서였겠지만, 어쨌든 우리에게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매우 익숙하게 각인되어 있다.

연극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일본 도호(Toho)의 오리지널 프로덕션이 제작한 작품으로, 연출은 영국인 '존 케어드'가 맡았다. 출연 배우가 모두 일본인이어서 일본어로 공연했으며, 한국어 자막이 무대 양 옆과 앞쪽에 설치된 스크린으로 제공되었다.
원작인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千と千尋の神隠し)>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관을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가미신앙을 바탕으로 한 애니미즘적 우주관, 생태주의적 문제의식 그리고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비판의식 등이 중층적으로 담겨 있다. 신과 인간, 자연과 자본주의 문명이 뒤얽힌 환상적 공간 속에서 벌어진 사건을 통해 현실 문제를 날카롭게 형상화한 것이다.
그런데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연극이 영화 내용을 충실히 수용하여 무대화했음을 단박에 알 수 있을 것이다. 대사는 물론이고 인물 캐릭터와 공간 설정 등 모든 면에서 영화의 그것을 온전히 무대화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연극에 담긴 현실 인식이나 주제 또한 미야자키 하야오가 영화를 통해 구현하고자 한 것과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만일 연극이 어떻게 원작을 변용하고 새로운 작품세계를 구축했는가 하는 점에 초점을 두고 관람했다면 실망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무대 언어로 변환된 영화를 한번 더 본 것이나 다름없다고 볼 수 있어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장 인물, 새·개구리·용·오물신 등 비인간적 존재를 형상화한 퍼펫(Puppet), 라이브 음악과 노래 그리고 다양한 무대 장치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구현된 작품 세계는 애니메이션과는 또 다른 차원의 현장감과 역동성을 느끼게 해주었다.
영화가 무대화되는 과정에서 수반된 연극 양식의 독자적인 표현 수법과 미학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이 공연은 영화가 지닌 환상성과 초월성을 시각적·양식적으로 정교하게 무대화했으며, 일본적 색채와 미학이 무대 전반에 적극적으로 반영되며 작품의 세계관적 특징과 주제의식을 선명하게 부각하는 데 일조했다.


신들의 세계는 신사(神社)를 연상시키는 구조로 구성되었고, 무대 우측에 도리이를 배치함으로써 인간 세계와 신계의 경계 표식으로 삼았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작중 주요 공간인 온천장의 구현 방식이었다. 공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신들의 목욕 공간은 '회전무대'로 구성되었는데, 이는 가부키의 ‘마와리부타이(回り舞台)’를 차용한 장치로 생각된다. 장면 전환을 위해 무대가 회전하며, 장면을 끊기 없이 이어주는 일본의 오래된 연출 수법을 수용한 것이다.
다양한 퍼펫(Puppet)의 활용 또한 이 공연의 완성도를 높인 주요 요인이라 할 수 있다. 거대한 오물신, 용으로 변모하는 하쿠, 다수의 신적 존재들, 돼지로 변한 부모 그리고 '가오나시' (顔なし) 등은 배우의 신체만으로는 구현하기 어려운 형상들이다. 그런대 이들을 '웨어러블 퍼펫(wearable puppet)', '장대 조종방식의 퍼펫', '배우+구조물 결합형 오브제' 등 다양한 형태로 표현한 것이다.
특히 오물신은 내부에 여러 명의 조종자가 들어가거나 외부에서 조종하는 복합 구조의 인형으로 구현되어, 거대한 덩어리감과 점액질의 질감을 물질적으로 드러냈다. 이는 단순한 시각 효과를 넘어, ‘오염’이라는 개념을 물리적 무게로 체감하도록 형상화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가오나시' 역시 인형과 배우의 결합 형식으로 형상화 되었으며, 그가 음식을 삼킬수록 몸집이 확장되는 장면은 인형 구조의 확장을 통해 시각적으로 표현되었다. 이는 소비와 탐욕의 팽창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연극적 표현수법으로 볼 수 있다.
하쿠가 용으로 변하는 장면에서는 길게 이어진 용의 신체가 여러 조종자에 의해 파동처럼 움직이며 무대를 가로지르는 방식으로 표현되었다. 이는 일본 인형극 전통, 특히 분라쿠에서의 집단 조종 방식과 닮아 있다. 인형을 조종하는 배우가 완전히 은폐되지 않고 무대 위에 존재하는 점은, 노·가부키 전통에서의 '고켄(後見)'의 표현 수법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검은 의상을 입은 보조 배우들이 장치를 이동·조정하고 인형을 조종하는 등 '고켄(後見)’적 존재들이 무대 위에 도드라지게 활용된 점은 이 연극이 일본전통예능의 극작술을 적극 수용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의상과 가면 또한 일본적 양식미를 강하게 보여주었다. '유바바'의 과장된 분장과 실루엣은 가부키 화장을 연상시키고, '가오나시'의 단순하고 상징적인 탈은 노 가면의 절제된 조형성을 떠올리게 한다. 인물들은 사실적 재현이 아니라 철저히 양식화된 형상으로 제시되었으며, 이는 일본 예능의 특징인 상징성과 절제, 내면을 외형적 기호로 치환하는 방식을 분명히 보여준 것으로 볼 수 있다.
집단 합창 장면에서 사용된 리듬은 관객의 귀에 8박처럼 체감될 만큼 4+4 구조의 반복성이 두드러졌다. 이는 단순한 뮤지컬 합창이 아니라, 일본 제의 음악과 유사한 순환적 리듬 구조였다. 음악은 감정 고조의 장치라기보다 공간의 호흡을 형성하는 장치로 기능했다.
치히로의 부모가 신들의 음식을 탐하다 돼지로 변하는 장면은 일본적 설화 구조와 닿아 있다. 금기를 어긴 인간이 동물로 변하는 설정은 신도적 세계관과 결합해 윤리적 경고의 의미를 지닌다. 오물신의 정화 장면 역시 ‘부정의 정화’라는 신도적 관념을 시각화했다.
‘하쿠’와 ‘치히로’가 자신의 이름을 되찾고 자신이 있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은 이 작품의 핵심 주제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름을 되찾는다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을 되찾는 일이다. 타인에 의해 부여된 이름에서 벗어나 본래의 이름으로 돌아옴으로써, 두 인물은 비로소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한다. 하쿠는 본래 ‘코하쿠가와(琥珀川)’라는 강의 신이었다. 그는 인간 세계에서 강이 메워지면서 자신의 이름과 정체성을 잃고 유바바 밑에서 일하는 존재가 되었는데, 치히로가 그의 본래 이름을 기억해 내는 순간, 하쿠는 자신이 강의 신이었음을 자각하고 예속 상태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치히로는 부모와 함께 인간 세계로 돌아간다. 처음에는 두려움 많고 의존적인 아이였지만, 신들의 세계를 통과하며 타인의 이름을 기억하고 책임지는 법을 배운 존재로 성장한 것이다. 두 사람이 이름을 회복하고 자기 정체성을 되찾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그들의 '사랑의 힘'이었다.
앞에서 이야기한 바 있듯이, 이 공연은 영화의 서사 구조와 인물 관계를 거의 그대로 수용했기 때문에, 내용의 측면에서 새로움을 찾기는 어렵다. 영화의 세계를 극도로 충실하게 재현하는 데 올인했으며, 양식의 전변과정에서 새롭게 구축할 수 있는 해석 가능성을 보여주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않았다.
영화가 환상을 ‘이미지’로 구현한 영상 양식이었다면, 연극은 신화적 세계관과 환상을 구체적 형상과 몸짓과 음악으로 온전하게 구축한 무대 양식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다양한 요소들로 구성된 무대 양식은 일본 공연예술이 축적해온 미학적 특징과 세계관에 바탕한 문화적 자산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커튼콜을 포함하여 일체 사진을 찍을 수 없다고 해서, 유튜브 홍보 동영상 몇 장면을 캡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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