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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미세스 마캠>

연극

by 무아(無我) 2025. 12. 2.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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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굿 씨어터
○12월 1일



모처럼  남녀간 사랑과 연애에 관한 풍속도를 유쾌하게 그린 연극 <미세스 마캠>을 관람했다. 작가는 영국의 유명한 희극 작가  '레이 쿠니'로, 1998년 이후 지금까지 대학로에서 오픈런으로 공연되는 연극 <라이어(원제 :  Run  for  your  wife)>도 그의 작품이다.


<미세스 마캠>의 원제는 <Move Over Mrs. Markham>으로,  우리말로  번역하면 '비켜 주세요, 마캠 부인'이라는 뜻이다.

'조안나 마캠'과 '필립 마캠'은 표면적으로는 아무런 갈등없이 결혼생활을 영위하는 모범적인 부부이다. 필립은 아동 도서 출판 사업을 운영하며, 경제적으로도 안정적인 중산층이다. 소파, 그림, 침대 등이 갖춰진 이들 부부의 아파트 내부 모습이 이를 잘 말해준다.

마캠 부부가 무탈하게 일상을 꾸려가는 아파트가 이 공연의 공간 배경인데, 사건이 전개되는 과정을 보노라면 왜 처음부터 끝까지 이 부부의 아파트가  공간배경이 될 수밖에 없는지 알게 된다.  

어느날 마캠 부부는 저녁 늦게  사업 관련 행사가 있어 집을 비울 예정이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안 부부의 주변 남녀 커플들이 빈 아파트를 애정행각의 공간으로 이용하려고 하면서, 의외의 사건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지고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상황이 전개되며 끊임없이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 이 작품의 묘미이다

마캠 부부 아파트 인테리어를 담당하는 디자이너 '알리'는 외국인 가정부 '실비'와 밀애를 즐기기로 약속한다.

이런 상황을 모르는 '조안나'는 남편의 사업 파트너 '헨리'의 아내이자 자신의 친구인  '린다'가 애인 '월터'와의 밀애를  위해 아파트를 "빌려달라"고 하자, 이를 수락한다.

그런데 '필립'의 사업 파트너 '헨리'가 '전화 교환수 애인'인 미스 윌킨슨을 만나기 위해 아파트를 사용하고 싶다고 하자,  필립은 이를 허락한다.

그러니까 세쌍의 남녀가 조안나와 필립이 집을 비우기만을 기다리는 형국이 된 것이다. 원제가
<Move Over Mrs. Markham>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실 이러한 극중 상황은 지금 시점에서는 현실성이 결여된 설정이라고 할 수 있다. 호텔, 모텔, 자동차, 극장, 깊은 산속 등 남녀가 밀애를 나눌 장소가 사방 널려 있는 오늘날, 밀애를 나눌 파트너가 없거나 철저한 윤리의식으로 무장된 사람이  아니고서야 옹색하게 남의 아파트를 이용하려는 부류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원작이 1970년대를 시대 배경으로 했다는 사실을 고려할때, 극중 인물로 전화 교환수가 등장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으나 그렇다 해도 옹색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이 공연은 여러 측면에서 현실성을 담보하고 있으며,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준다.

'알리'는 동성애자처럼 행동하지만 이성애자이다.  '실비'(원작에서는 독일인 출신)는 어눌한 한국말을 구사하는 외국인 가정부로,  아파트 인테리어 작업을 위해 몇달을 머물고 있는 알리와 눈이 맞아 밀애를 즐긴다. 두 사람은 틈만 나면 서로의 엉덩이를 치는데, 이는 슬랩스틱 코미디적 요소이자 유혹과 친밀감을 드러내는 성적 행동이다.

'린다'는 '헨리'가 다른 여자와 바람피기에 자신도 다른 남자를 만나는 것이라며,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한다. 우리 속담에 '홧김에 서방질한다'는 표현이 있는데, 린다가 이에 해당하는 인물인 셈이다.

'헨리'는  아내 '린다'가 있음에도 한번도 본 적 없는 '전화 교환수'  미스 윌킨슨'과 만나 외도를 즐길 준비를 한다. 오늘날 sns를 통해 '플라스틱 러브'를  즐기는 세태와 다름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세 커플이 마캠 부부의 저녁 외출을 눈빠지게 기다리는 상황에서 예기치 못한 사소한 오해나 어긋남으로 인해  사건은 점점 복잡하고 정신없이 전개되기 시작한다.

한 인물이 다른 인물의 결정을 번복하게 하려거나 아파트로 돌아오는 것을 막으려 하지만, 그 이유를 말할 수 없는 순간이 연속적으로 이어진다. 또는 배우자가 옆방에 있는 동안 배우자가 모르게 계획이 세워지는 순간도 있다.

무대에 설치된 네 개의 문(현관문. 안방문. 부엌문. 화장실 문)은 이런 극적 전개에서 매우 요긴하게 기능한다. 배우들의 등퇴장 타이밍이 절묘하게 맞물려 작동하며,  빠른 속도로  문이 열리고 닫힌다.

소동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가운데, 마캠 부부를 제외한 모든 남녀는 육체적인 사랑인 섹스에 과도한 관심을 드러낸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정작 겉으로는 아무 문제 없어 보이는 마캠부부야 말로 실은 '쇼윈도우 부부'였음이 드러난다. 키스조차 안한 지 5년이 넘었다는 사실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게다가 상황이 꼬여, 필립은 아내 조안나가 알리와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고 오해하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후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은 한바탕 소동은 아직 결혼하지 않은  '미스 스마이가 등장하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그녀는 열 세마리의 개를 키울 정도로 개를 사랑하며, 유명한  개 중심의 아동 도서 시리즈 작가이다. 엄격한 청교도적 윤리관을 지닌 그녀는 기존 출판사가 음란물을 출판하려고 해서 새로운 출판사를 찾고 있다며, 섹스와  무관해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한다. 엄청난 부를 보장하는 작가를 맞이한 조안나는 어떻게 해서든 계약을 성사시키고자 노력하는데, 그 과정에서 또 한번 해프닝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혼란은 정점을 향해 나아간다.

일련의 사고, 착각, 공교로운 타이밍 그리고 마캠 출판사를 통해 자신의 책을 출판하고 싶어하는 순진하고 청교도적인 노처녀 '미스 스마이스'의 출현으로 상황은 좀 더 복잡하고 미궁에 빠지는듯 하지만, 잘 짜여진 극의 회로는 '행복한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계약은 원만하게 성사되며, 각 커플들은 제 자리를 찾아가고 마캠 부부  또한 정신과 육체가 결합된 사랑의 소중함을 되찾게 되는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섹스를 죄악시하는 엄격한 '미스 스마이스'가 계약에 응하게 된 요인으로 잘생긴 '헨리'에게 호감을 가진 것이 크게 작용했다는 점이다.

이 작품은 그 자체가 상황을 과장하고 슬랩스틱 코미디적 요소가 강하다. 이런 류의 공연은 배우들이 지나치게 오버하거나 호들갑만 떨뿐 호흡이 제대로 맞지 않으면 격이 떨어지고 유치해지기 십상이다.

그런데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였으며, 호흡도 꽤 매끄럽게 잘들어 맞았다. 동성애자인듯 이성애자의 캐릭터를 잘 살린 알리, 모범적이고 반듯하게 살아왔지만 다소 경직되고 그다지 눈치가 없는 필립, 어눌한 한국말을 구사하며 깨알 웃음을 자아낸 실비의 연기가 특히 인상적이었으며, 그밖에 모든 배우들이 각기 개성적인 캐릭터를 잘 살려 매력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관객 입장에서는 이들 인물들의 얽히고 설킨 애정 행각을 보면서, 정신없이 웃고 때론 어이없어 하면서도 인간의 본성과 욕망 그리고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일까 하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  유쾌한 공연이었다.

무대가 좀 더 세련되고 탄탄하게 준비되었다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많은 관객들이 함께 해서 다음 공연 때는 이런 아쉬운 점도 보완되면 더욱 완성도 높은 작품이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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