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여섯번째희곡 열전
○선욱현전
○5월 15일


'선욱현전' 참여작 가운데 하나인 연극 <엄브렐러>는 '연극은 갈등구조에 바탕한 갈래'라는 통념적 인식과 거리가 있는 작품이다. 학창 시절 있었던 기다림의 기억을 소환하여, 순수한 영혼과 인간에 대한 믿음의 문제를 애틋하게 그렸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1978년 초등학교 5학년 시절 비가 내리는 어느 날, 처마 아래서 은자는 우산을 빌려간 낯선 오빠가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이 '기다림'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모티프이다.

무대에는 동심을 나타내는 문구와 장식이 있을뿐 무척 단출하며, 4명의 여자 배우들이 1인 2역 혹은 다역을 맡아 극을 이끌어 간다. 해설자 역할을 담당하는 배우가 관객에게 자신들의 상황을 전달하는가 하면 극중 상황에 관객을 참여시키는 방식으로 무대와 객석의 거리를 좁힌다.
오빠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은자는 무대 한쪽에 조명으로 설정된 네모난 공간 안에 머물러 있으며, 기다림의 시간이 지속되는 동안 배우들은 다채로운 삽화들을 통해 그 시절의 동심의 세계를 보여준다.
그런데 4명의 여자배우들 호흡이 참으로 잘맞는다. 표현력도 좋아서 남장 역할도 맛깔나게 소화하고, 춤이며 고무줄 놀이 등 다양한 볼거리를 보여주는 솜씨가 꽤 볼만하다.
낯선 오빠에게 우산을 선뜻 건네는 은자의 행위는 인간에 대한 신뢰와 순수한 동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오빠는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으로 내내 기다리는 것이다. 우산을 잃어버린 일로 인해 엄마에게 혼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도 물론 있다.
오빠는 모르는 오빠에게 왜 우산을 줬냐고 화를 낸다. 그러나 은자는 기다린다. 돌아온다고 한 오빠의 말을 믿기 때문이다. 행여 자신이 처마밑을 떠났을때 오빠가 돌아오면 어쩌나 염려 하면서..
결말에 이르러 오빠는 사실 그 우산은 구멍이 나서 버려도 되는 것이었다는 엄마의 말을 전한다.
오빠가 전한 엄마의 이 말은 일종의 반전으로, 이는 우산의 물질적 가치보다 기다림의 정신적 가치가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은자가 지킨 것은 우산이 아니라 믿음 자체였음을 보여주며...엄마의 말과 더불어 은자가 떠난 그 처마에 누군가 놓고 간 우산을 경비아저씨가 치우는 장면은 은자의 믿음이 헛되지 않았음을 명료하게 확인시켜준 것이다.
결말에 제시된 일기 낭독도 매우 의미있는 장면이다. 초등학생 특유의 담담한 문체로 사건을 기술하던 은자는 마지막에 이렇게 다짐한다. "내가 먼저 가버려서 오빠가 왔을 때 없었던 것은 아닐까. 다음번엔 조금 더 오래 기다려야겠다."
야단을 맞고 눈물을 흘렸지만, 은자는 기다림 자체를 후회하지 않는다. 더 오래 기다리지 못한 것을 아쉬워할 뿐이다. 어른의 눈으로 보면 비합리적이다. 그러나 그 비합리성이야말로 영혼의 순수성을 확인시켜준 징표이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고 겨울이 왔다. 1년, 또 1년. 아이들은 졸업하고 취업하고 결혼하여 어른이 되었다. 1978년 처마 아래에서 비를 맞으며 우산을 기다리던 은자가 어른이 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더 이상 낯선 오빠의 말을 믿지 입게 되장에서이기 십상이다. 그렇지만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그 시절 처마밑에서 마냥 기다렸던 그 순수의 영혼이 얼마나 속화 되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극중 세계에 몰입했다가 현실로 되돌아오면서, 우리도 한때 그 순수의 기다림이 있었는데 언제 어디서 잃어버렸을까 되돌아본다.




| 연극 <황금용> (0) | 2026.07.20 |
|---|---|
| 연극 <작은 할머니 - 그여자의 소설> (0) | 2026.07.12 |
| 연극 <나는 왜 없지 않고 있는가?> (0) | 2026.05.07 |
| 연극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0) | 2026.02.16 |
| 연극 <미세스 마캠> (1) | 2025.1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