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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여명의 눈동자>

뮤지컬

by 무아(無我) 2026. 1. 29.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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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시 : 1월 25일
○ 장소 : 'Converse Stage Arena 여명'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는 일제 강점기 말기부터 해방 직후의 혼란 그리고 한국 전쟁에 이르는 근현대사의 격동기를 배경으로, 이데올로기가 개인의 삶과 공동체를 어떻게 파괴해 왔는지를 정면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여명의 눈동자>는 식민 통치, 위안부, 분단, 반공, 빨치산  등 격동의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념의 문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이념의 옳고 그름을 문제 삼기보다는,  이념이 역사와 현실을 규정할 때 인간은 어떤 위치에 놓이게 되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특정 진영을 옹호하지 않고, 오히려 이념이 인간의 삶을 파편화하고 파괴하는 양상을 그린 것이다.

그럼에도 광복 80주년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국립현충원 옆에 위치한 극장 ‘Converse Stage Arena여명’의 공간적 배경은 이 작품이 현재 시점에서  공연되는 이유가 민족주의적 정서나 국가 이데올로기와 무관하지 않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극장 ‘Converse Stage Arena 여명’은 오로지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 공연 목적으로 설치된 일종의 가설극장으로, 사면이 트여있는 열린 무대 형식을 취하고 있다. 800석 이상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어서 중극장과 대극장의 경계에 있는 규모임에도 360도로 둘러싼 돔형 구조로 되어 있어, 맨 뒷줄에 앉아서 관람했음에도 무대와 객석의 거리가 비교적 가깝게 느껴졌다. 가장 인상적인 점은 무대 바닥 전체를 활용한 LED 연출을 통해 전쟁터, 재판장, 제주 4·3의 현장을 감각적이고 실감나게 구현했다는 사실이다.


<여명의 눈동자>는 731부대, 위안부, 제주 4·3사건, 반민특위, 지리산 빨치산 토벌 등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이 서사의 중심에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윤여옥과 최대치 그리고 장하림을 축으로 하여 사건이 전개된다.

작품 속 인물들은 전장과 식민지의 현실에서 개인이 감당해야 할 시대적 비극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국권을 상실한 상황에서는 식민지 조선 민중이 겪어야 하는 아픔을 견뎌내며, 해방 이후 신탁통치와 분단 상황에서 민족이 분열하고 이념 대립은 극한으로 치닫는다.  
이들 인물들에게  이념은 신념이라기보다 생존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동하며, 세 인물의 삼각 구도는 각기 다른 선택과 길을 보여주지만, 그 결말은 결국  비극으로 귀결된다.

이는 특정한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시대 자체가 개인에게 강요한 운명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처음과 끝이 같은 장면으로 되돌아오는 수미상관 구조는 단순한 극적 반복이 아니라, <여명의 눈동자>가 말하고자 하는 역사 인식과 인간 비극을 가장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다.

첫 장면에서 여옥이 최대치를 찾아가다 총에 맞아 쓰러지고, 최대치가 그녀를 끌어안은 채 절규하며, 하림이 그 모습을 지켜보는 장면은 관객에게 아직 맥락이 주어지지 않은 채 하나의 ‘충격적인 이미지’로 제시된다. 이 장면은 이야기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로서 먼저 제시되며, 이후 전개되는 모든 서사는 이 비극적 결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되짚는 구조를 취한다.
마지막에 동일한 장면이 다시 제시되며 여옥이 지리산 빨치산이 된 최대치를 찾아가는 길은 사랑의 선택이면서 동시에 이념이 지배하는 공간으로 들어가는 행위다.

그 과정에서 여옥은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은 채 총탄에 쓰러지고, 최대치는 여옥의 죽음 이후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이 결말은 누군가의 승리나 패배를 의미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념의 대립 속에서는 인간적 선택이 끝내 파국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명확히 한다.

이러한 수미상관 구조가 지니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비극이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구조적 필연임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결말은 이미 주어져 있었고, 인물들은 그 결말을 향해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여명의 눈동자>는 수미상관 구조를 통해, 사랑 이야기의 비극적 완결을 넘어서 이념이 지배하는 시대에 인간적 관계가 어떤 결말로 귀결되는가를 잘 보여준다.

전반적으로 배우들의 열정과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느껴졌으나,  다분히 작위적인 연기도 없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뮤지컬임을 고려할 때 배우들의 연기에서 지나친 리얼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넘버곡이나 극적 내용이 비장미 위주로 흐른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느나, 긴장을 이완시키며 극의 균형미를 찾을 수 있는 웃음코드나 해학적 장면이 좀 더 보완되었다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그렇다 해도 세련된 무대 장치, 배우들의 열연, 수준급의 넘버곡으로 전설의 드라마를 뮤지컬화 했다는 점에서, 오래 기억에 남을 인상적인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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