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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말리>

뮤지컬

by 무아(無我) 2026. 2. 14.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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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시 : 2월 12일
○ 장소 : 백암아트홀

백암아트홀



뮤지컬 <말리>는 누군가의 기대 속에서 ‘잘해야 하는 사람’으로 살아온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닫아 둔 마음의 상자가 열리는 순간, 말리의 이야기는 곧 우리의 이야기로 다가온다.  단순한 성장 서사를 넘어, 상처 입은 자아가 스스로를 회복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렸기 때문일 것이다.
  


극은 현재 미국에서 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 18세 엘리의 일상으로 시작한다. 한때 대한민국의 사랑을 받던 아역 스타였던 말리-그러나 지금의 엘리는 그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다. 학교에서는 따돌림을 당하고, 또래들과 어울리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무기력하게 보낸다. 왜 가족이 미국으로 이주했는지도,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도 알지 못한 채 말이다.

18번째 생일, 엘리는 다락방에서 어린 시절의 물건들을 발견한다. 그리고 가장 아끼던 토끼 인형 ‘레비’가 말을 걸어오면서 이야기는 전환점을 맞는다. 파편처럼 흩어진 기억들이 이어지고, 극은 한국에서 활동하던 아역 배우 말리의 시간으로 이동한다.

엘리는 레비의 몸을 매개로 11세의 자신과 마주한다. 화려한 조명 속에서 박수를 받던 어린 말리의 삶은 실은 어른들의 기대와 통제 속에서 짜인 일상이었다. 이 만남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가 조우하는 구조로 짜여져 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18세와 11세의 말리를 한 무대 위에 병치시킨 설정이다. 두 시기의 말리는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자, 분열된 자아의 양면이다. 인형 레비는 판타지적 매개체이면서도 기억의 형상화, 혹은 또 다른 자아의 목소리처럼 기능한다. 과거의 상처를 외면해 온 엘리는 어린 말리를 통해 잊고 있던 고통과 가족의 불화를 마주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과하며, 비로소 부모의 선택과 희생을 이해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재구성한다.

극의 후반부, 엘리가 현재로 돌아와 한국으로의 혼자 여행을 결심하는 장면은 ‘누군가의 기대 속의 나’가 아닌 ‘스스로 선택하는 나’로의 전환을 상징한다. 특히  ‘잘해야 하는 아이’로 살아온 시간들을 꼭두각시를 연상시키는 춤동작으로 표현한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사실 서사는 매우 단순하다. 그러나 전달력 있는 넘버곡과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환타스틱한 극적 설정 그리고 배우들의 열연이 빛을 발하며 뮤지컬로서의 매력을 배가시켰다.

이 작품에 담긴 메시지는 명확한 편이다. 우리는 착한 아이, 성실한 학생, 책임감 있는 어른이라는 역할 속에서 살아가지만, 그럴수록 온전히 ‘진짜 나’의 삶을 살아가기는 쉽지 않 다. <말리>는 새로운 사람이 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잃어버린 나를 다시 만나러 가는 여정이다.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 대신 상처와 실패를 포함한 현재의 나를 인정하는 것, 그것이 이 작품이 말하는 성장이다.

말리의 여정을 통해,  어쩌면 우리 역시 여전히 ‘나로서 머물 수 있는 자리’를 찾아가는 중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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