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롯데 씨어터
○9월 30일

<미세스 다웃파이어>는 로빈 윌리엄스가 주연한 영화(감독 : 크리스 콜럼버스. 1993년 개봉)
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영화는 앤 파인(Anne Fine)의 청소년 소설 <마담 다웃파이어>(1987년作 )를 각색한 것이다. 영화 <미세스 다웃파이어>는 2020년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제작되어 대중들의 인기를 얻었다.
한국에서 2022년부터 공연된 <미세스 다웃파이어>는 라이센스작으로, 논-레플리카(Non-Replica) 방식으로 제작된 것이다.
'논-레플리카' 방식은 원작의 핵심적인 내용을 유지하면서도 해당 국가의 정서나 문화적 특성에 맞게 연출, 무대 디자인, 의상, 대본 등을 자유롭게 수정하고 각색하는 것이 가능하다.

뮤지컬 <미세스 다웃파이어>는 원작에 바탕하면서도 한국적 정서를 반영한 웃음코드를 곳곳에 배치했다.
가령, 한 가지 예를 들어본다. 영화나 브로드웨이 뮤지컬에서 제목이자 작중 인물명인 '다웃파이어'(doubtfire)는 다니엘이 가정부를 지원하는 과정에서 신문기사 제목 "Police Doubt Fire Was Accidental"의 '다웃파이어'를 보고 급하게 둘러댄 이름이다. 갑작스럽게 지은 이름인 '다웃 파이어'는 의심스러운(Doubt)' 정체성을 가졌지만 '가족을 향한 뜨거운 열정(Fire)'을 가진 인물을 상징한다고 해석해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번 공연에서는 미란다가 다니엘에게 이름을 묻는 순간 두 남녀가 무대 뒤편을 지나가며 여자가 남자에게 "멋지면 다 오빠야"라고 말하고, 이를 들은 다니엘이 자신의 이름을 '다오빠'라고 답함으로써 '다웃파이어'가 된 것으로 나온다.
아재개그가 따로 없는 셈인데, 한국에서 '오빠'는 단순한 호칭 이상의 복합적인 관계와 감정을 지닌 표현이다. 친밀함, 사랑 그리고 의지하거나 보호받고 싶은 심리를 일정하게 내포한 호칭 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게다가 K-Pop이나 K-드라마 등의 영향으로 '오빠'는 전 세계적으로도 잘 알려진 한국어 단어가 되었으며, 해외 팬들 사이에서는 한국의 '멋진 남자' 혹은 '아이돌'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다웃파이어'를 '오빠'와 연결지은 것은 단순한 아재개그 감각을 넘어선 국제적인 센스가 발현된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뮤지컬 <다웃파이어>의 진수는 성별을 넘나들며 1인 2역을 수행하는 '다니엘&다웃파이어'의 다재다능한 연기에서 찾을 수 있다.
정성화는 '다니엘'과 '다웃파이어'를 오가는 고난도의 퀵 체인지를 무리없이 소화했으며,
탭댄스, 랩, 루프 스테이션을 활용한 비트박스 등 다양한 퍼포먼스를 멋지게 보여줌으로써 만능 배우로서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정성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큰 것은 사실이나, 세 자녀 리디아(김태희 扮), 크리스(최지훈 扮), 나탈리(차유은 분)의 깜찍한 연기, 다니엘의 형이자 게이인 프랭크(최호중 扮)와 그의 연인 안드레(서동진 扮)의 감칠맛 나는 연기도 무척 매력적이었다.
'다니엘'이 미세스 '다웃파이어'로 변신하는 '여장(女裝)'과 '퀵 체인지(Quick Change)' 장면은 볼거리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이 작품의 주제의식을 구현하는 핵심 요소로 작용했다.
성우인 '다니엘'은 유머감각이 넘치고 감성적인 인물로 정의를 중시하지만, 자기주장이 강하고 타협을 모르는 탓에 대책 없이 일자리를 박차고 나와 실직자가 된다. 그리고 집에서는 즉흥적으로 아들의 생일파티를 벌여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든다.
결국 아내 미란다로 부터 이혼 요구 받은 다니엘은 양육권도 빼앗기고 판사로 부터 일주일에 한번만 자식들을 만날 수 있다는 판결을 받는다.
철부지 남편이자 자식사랑은 각별하지만 서툴기만 한 아빠 '다니엘'... 다니엘이 가족 구성원의 심리를 이해하고 관계를 회복하는 것은 '여자 되기'를 통해서이다.
'다니엘'은 미세스 '다웃파이어'로서 집안일을 하고 아이들을 돌보면서, 아빠로서는 몰랐던 가족의 속마음을 알게 되고 스스로도 성장한다.
그 과정에서 무대는 미란다와 다니엘의 집을 번갈아가며 대비적으로 보여준다. 미란다의 집은 깔끔하고 냉장고에는 음식이 가득찬 반면, 혼자 사는 다니엘의 집은 초라하고 너저분하고 냉장고는 비어 있다.
다니엘이 아내와 자식들에게 다시 인정받는 것은 성우 재능을 발휘해서 다시 직업을 갖게 되고 요리를 잘하고 냉장고에 음식을 채워놓을 수 있게 되면서이다.
결국 미세스 다웃파이어의 정체가 탄로 나면서 소동이 벌어지지만, 가족간 사랑을 확인하고 관계를 회복하며 행복한 결말로 마무리된다. 사랑하면 다 괜찮다는 노래와 함께..
'여장(女裝)'은 자기 반성 및 가족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통한 소통 가능성을 실현시켜준 극적 장치이다. '여장'을 통해 '멋진 남편'이자 '좋은 아버지' 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는 설정은 일종의 '역할 바꾸기'라는 측면에서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다니엘'이 성우이고 형 '프랭크'가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등장하여 '다니엘'의 '여장'과 '분장'을 적극 돕는 등의 설정은 서사 전개의 현실성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해도 다니엘의 대응은 과도한 면이 없지 않다. 자식들을 지나치게 애정하고 집착하는 모습을 통해 지극한 부성애를 강조한 것은 가족해체가 얼마나 심각한지 아버지의 위상이 얼마나 추락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20세기 중반 이후 미국에서 이혼율이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전통적인 가족 관념에 균열이 생기고, 가족의 가치에 대한 재인식이 요구되는 시대배경과 긴밀한 연관이 있다. 물론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여성의 사회진출 증가와 맞물려 남녀의 성 역할 구분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기고 육아와 가사를 공동 부담하는 것이 대세가 된 상황에서, '아버지'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물음은 시대의 흐름에 조응한 매우 자연스러운 문제 제기라 할 수 있다.
뮤지컬 <미세스 다웃파이어>는 배우 연기력, 역동적이고 음악성이 돋보인 넘버곡, 집단 군무, 속도감 있는 무대 변화, 재치 있는 대사 덕분에, 뮤지컬이 지닌 환타지와 다채로운 퍼포먼스를 맘껏 즐긴 참으로 매력적인 공연이었다.
하지만 표면적으로는 이혼 가정의 사랑과 화해를 코믹하고 유쾌하게 그렸지만, 그 이면에는 젠더 역할에 대한 특정 시각이 자리잡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다.
전통적인 성 역할에 대한 고정 관념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시대에, '역할 바꾸기'에 버금가는 변화는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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