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봉구민회관
○ 대한민국연극제서울대회참가작
○ 4월11일
연극 <안티고네>는 익히 아는 것처럼 소포클레스가 지은 대표적인 그리스 비극이다. 이번에 이 작품을 공연한 극단은 '이구아구'로, 지난해 관람한 연극 <변신>을 무대에 올렸던 바로 그 극단이다. 출연 배우 면면을 보니 익숙한 분들이 여럿 눈에 띠었다.
무대는 궁전을 상징하는 듯한 기둥이 양편에 세 개씩 설치되어 있었으며, 중앙에 약간 돌출된 사각형의 무대가 자리잡고 있었다.
공연이 시작되자, 해설자가 손에 책자를 들고 등장하여 안티고네에 관해 소개했다. 해설자는 마지막에 한번 더 듯장하여, 전체를 마무리하는 멘트를 했는데, 이런 방식을 취함으로써 극중 서사가 과거 역사에 속하는 사건임을 새삼 환기하며 작품에 대한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게 했다. 해설자는 극중 인물로도 참여하며, 극중 서사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며 과거와 현재가 단절된 것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주요 인물들 외에, '코러스'가 극의 진행 과정에서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등의 역할을 수행한 점도 인상적이었다. 본래 그리스 비극에서 '코러스'는 합창을 담당했는데, 이 공연에서 코러스는 합창과는 무관했다. 생각해 보니, 지난번 관람한 연극 <인간실격>에서도 코러스가 있었으며, 이들 또한 합창과 무관하게 극적 동작과 퍼포먼스 등으로 극의 진행과정에서 윤활유같은 역할을 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연극 현장에서 코러스의 의미가 변모되어 편의적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안티고네'는 오이디푸스의 딸로, 신화에서는 존재감이 거의 없다가 소포클레스 비극을 통해 주체적인 인물로 부각된 인물이다. 신화에서 영웅은 남성이었다. 그런데 소포클레스 작 연극 <안티고네>에서 안티고네는 분명한 자기 소신을 가지고 왕의 권력에 당당히 맞서는, 위엄과 품위를 지닌 여성 영웅으로 형상화 되었다. 반면, 테베 왕 크레온은 독재자의 면모를 지닌 부정적인 인물로 그려졌다.
안티고네는오빠 폴리네이케스의 시신 처리 문제를 두고 삼촌이자 테베 왕인 크레온과 팽팽하게 맞선다. 국가의 법을 강조하며 반역자를 매장할 수 없다는 크레온에 대항하여, 안티고네는 신들의 법을 내세워 오빠를 반드시 매장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안티고네는 자신의 신념을 고수하고 용기있게 신념을 실천한 끝에 죽음을 맞이한 비극적 인물임에도,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과는 성격을 달리한다.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은 신의 뜻을 넘어서려는 인간적 결함으로 인해 파멸되는 인물임에 비해, 안티고네는 신들의 법을 내세워 국가의 법을 강조한 왕의 권력에 맞섰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언니 '이즈메네'가 아름다운 여성성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현실을 긍정하고 수용하는 인물임에 반해, 안티고네는 외모도 언니보다 못하고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주체적인 인물이다. 안티고네는 권력에 대항하여 신들의 법을 내세워 사적 윤리와 가치를 지키며, 결국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을 보인다.
안티고네와 달리, 크레온은 명분에 충실한 국가지도자이자 새로운 사회공동체의 가치를 중시한 인물이다. 크레온은 폴리네이케스가 반역을 저지른 부도덕한 인물임을 강조하며, 안티고네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결국 안티고네의 죽음은 하이몬의 죽음을 가져오며, 하이몬의 죽음은 크레온의 아내 에우리디케의 죽음으로 이어짐으로써, 작품은 비극적 결말로 마무리된다.
이번 공연은 소포클레스 작 <안티고네>의 텍스트를 비교적 충실하게 무대에 재현했다. 그리고 연극에서 제기한 문제, 즉
현실이 자신의 가치관이나 신념에 부합하지 않을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지금 이 곳에서도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주고자 했다.
무언가 의도된 연출에 맞추어 사각형 무대를 오가는 듯한 배우의 동선 이동 장면 등 극에 완전히 몰입해서 관람하지 못한 지점이 없지 않았으나, 모처럼 고전 <안티고네>의 작품세계를 다시 한번 반추해 볼 수 있는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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