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대한민국연극제 서울대회 참가작
○은평문화회관
연극 <말을 버린 사내>는 1980년 사북 탄광노동자들의 투쟁을 다룬 작품이다.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나기 바로 직전에 벌어진 사북 탄광 노동자들 항쟁은 해방 후 최대 규모의 생존권 투쟁이자 신군부에 맞선 민주화운동으로 드러나는 역사적 사건임에도 그 실상이 널리 알려진 편은 아니다. 사북항쟁에 관해서는 다음 아카이브에 기록된 내용을 통해 좀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https://archives.kdemo.or.kr/collections/view/10000049
연극은 1980년 일어난 사북 항쟁에 기반한 서사를 담고 있다. 당시 계엄사령부 ‘사북 사건 합동수사단’은 200여 명의 광부와 주민들을 연행하여 가혹행위를 했다. 그리고 검찰은 31명을 구속 기소하고 50명을 불구속 기소하는 등 81명을 군법회의에 송치했다고 한다.
연극은 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다운 삶을 위해 국가권력에 맞선 탄광노동자들의 항쟁, 이들을 가혹하게 고문한 국가 권력의 폭력성과 야만성 그리고 그로 인해 망가진 노동자들의 삶과 죽음의 문제를 고통스럽게 무대 위에 재현했다. 동영상을 통해 사건의 역사성과 사실성을 부각하면서...
무대 위에 펼쳐진 '한 가족의 이야기'는 2010년 폐암 4기 시한부 '영식'이 사북역에서 객사하고, 그의 딸 '미옥'이 아버지의 죽음을 확인하고 장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시작된다. 딸 미옥에게 아버지 영식은 말도 없고 돈벌이도 시원찮고 술과 담배를 달고 사는 무능력한 존재였다. 그런 아버지 유류품 가운데 '이덕길'에게 용서를 구한다는 내용이 담긴 쪽지가 발견되면서, 미옥은 아버지가 생을 마감하는 시점에서 남긴 쪽지의 주인공을 찾아 나선다.
그 과정에서 미옥은 아버지가 실은 노래도 잘하고 유쾌한 사람이었다는 사실 나아가 왜 아버지가 실어증에 걸린 것처럼 '말'을 버리게 되었는지 알게 된다. 영식은 서울 사람으로 돈을 벌기 위해 탄광촌을 찾은 인물이다. 영식은 극의 전반부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대중가요를 부르며 노래 솜씨를 뽐냈는데, 그의 노래는 80년대 시대상을 보여주는 것이면서 마냥 무거울 수 있는 연극에 활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했다.
그런데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국가 권력이 노조원들에 행한 고문 장면이 상당히 길게 이어졌는데, 다양한 고문 수법을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어둡고 음침한 분위기에 암전때마다 무언가 찢기는듯한 배경음악이 더해져 이들 장면을 지켜보는 게 무척 힘들었다. 그 와중에 틀어준 대중가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는 참으로 애달프고 서러웠다.
결국 '이덕길'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작품은 결말을 향해 나아갔다. 그는 영식이 고문 당하는 과정에서 자백한 노조원이었다. 그러니까 영식은 자신도 모진 고문으로 극한의 고통을 겪었을 뿐만 아니라, 자백에 대한 죄책감으로 평생 괴로워하다가 육신의 병까지 얻고 객사하게 된 것이다.
제목 <말을 버린 사내>는 영식의 삶을 함축해서 보여준다. 유쾌하고 노래 잘하는 영식의 삶이 피폐해지고 육신의 병까지 얻어 죽음을 맞게 된 것은 양심과 죄책감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양심과 존엄을 지킬 때 '가치있는 삶'이 가능하다. 그동안 많은 역사적 사건 속에서 있었던 수많은 비극적 죽음도 인간의 양심과 존엄을 지켜내려 한 사회적 도덕 감정과 긴밀한 연관이 있을 것이다. 살아남은 자들이 가진 죄책감을 포함하여..
양심, 죄책감, 수치심, 치욕스러움 등은 고통과 좌절을 동반하지만, 이러한 고통은 인간의 살아있음과 존재의 근거가 될 수 있다. 그리고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은 인간다운 가치를 확산하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는데 더없이 소중하다. 그리고 연극을 포함한 공연예술 또한 그러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 여러모로 일조할 수 있다. <말을 버린 사내>도 그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다.
활주로 -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 Jamie G
https://www.youtube.com/watch?v=IjmTFHJtS9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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