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0일 명동예술극장에서 연극 <세인트 조앤>을 관람했다.
연극<세인트 조앤>은 조지 버나드 쇼 원작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프랑스의 여성 영웅 '잔다르크'를 소재로 하여 이해관계와 욕망으로 인해 진실이 왜곡되고 한 인간이 비극적 최후를 맞이하게 된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무대는 단출했다. 대신 배우들이 그많은 대사를 소화하며 극을 이끌어갔는데, 단출한 무대 덕분에 극중 상황과 인물에 집중할 수 있었다.
프랑스와 영국의 백년전쟁을 시대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평범한 평민의 딸 조앤이 마녀로 몰려 화형 당하기까지의 과정을 긴박하게 펼처냈다. 그 과정에서 철저하게 이해관계와 욕망에 따라 움직인 왕, 귀족, 성직자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조앤이 신념에 찬 삶을 선택하며 프랑스를 영국의 침략에서 구할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하늘에서 들려오는 '하느님 음성'에 있었다.
조앤이 전장에 나서 적을 무찌르고 왕을 옹립함으로써 프랑스를 위기에서 구한 것은 프랑스 입장에서는 애국 그 자체였다. 그럼에도 귀족과 성직자는 조앤을 매우 불편하게 여겼다. 주교는 교회법을 따르지 않고 직접 하늘로부터 들려오는 음성을 들었다며 이를 죄악이라고 했다. 조앤이 직접 하느님과 소통하며 그 뜻을 따르는 것은 세속적 권력이기도 한 가톨릭 교회 입장에서는 불경한 것으로 간주된 것이다. 한편 자신들의 세력이 약화되는 데 불만을 품고 있던 귀족들은 왕과 국가를 지킨 조앤의 행동을 국가주의라며 비난했다. 결국 성직자들과 귀족들의 견제 그리고 왕위에 오른 샤를 7세의 무관심 속에 조앤은 파리 입성에 실패하고 전투에서 패하며, 영국군에게 포로가 되고 말았다.
이후 조앤은 법정에 서는데, 재판을 받는 과정은 그녀를 마녀로 낙인찍는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성직자와 법학자 그리고 왕정위원회 위원들은 마치 조앤을 위하는 척하며 감언이설을 늘어놓는데, 이 지점에서 조앤은 삶에 대한 애착을 보이며 그동안의 신념을 부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지극히 인간적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종신형이나 다름없는 판결을 내리자, 조앤은 정신을 가다듬고 자신의 신념을 고수하며 처절하게 맞선다.
안타깝게도 '교회와 법'의 이름으로 그녀를 옥죄어오는 현실의 거대한 권력 앞에서 조앤이 할 수 있는건 자기 신념을 지키며 하느님 곁으로 가는 것뿐이었다. 마녀로 낙인찍히고 화형 당하면서...
작품은 조앤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다. 25년의 세월이 흐른 1456년, 샤를 7세의 꿈에 조앤과 조앤의 죽음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등장하는 에필로그가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에필로그는 사족이 아닐까 싶었는데, 묘미도 있었다.
조앤의 죽음에 관여한 이들은 각자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성녀 조앤을 칭송했는데, 그 이유가 참으로 가관이었다. 그들의 모습을 웃음 띤 여유있는 표정으로 지켜보던 조앤이, "다시 살아서 다가가면 자신을 여자로 받아주겠느냐"고 하자, 이들은 하나같이 조앤을 외면하며 사라졌으니 말이다.
조앤이 성녀가 된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화형 당한 이후 세월이 흐른 뒤 조앤은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모든 혐의가 무죄라는 판결을 받고 복권되며, 조앤을 심판한 종교재판관들은 부패 혐의를 받았다. 그리고 조앤은 1909년 교황청으로부터 복자로 시복되고 1920년에는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연극에도 이러한 역사적 사실이 반영되어 있는데, 다만 죽음에 관여한 이들이 조앤을 세인트(성녀)로 칭송한 뒤 그녀를 외면한 에필로그로 결말을 맺음으로써, 인간은 철저하게 개인의 욕망이나 계급적(신분적) 이해 관계에 따라 움직인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 주었다. 무엇보다도 '교회와 법'의 이름으로 한 인간의 인권과 목숨을 유린한 거대한 현실 권력이 얼마나 무자비한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모처럼 좋은 공연을 만났다는 뿌듯함과 함께, 연극이 끝난 후 슬픔이 밀려왔다. 극중 인물 조앤이 당한 '마녀사냥'은 과거의 일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21세기에도 여전히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정의를 내세우지만 이면에는 추악한 욕망이 자리잡고 있으며, 초법적 발상으로 한 개인의 인권을 아무렇지 않게 짓밟는 폭력이 버젓이 일어나곤 한다.
"어리고 순진한 자들이 교회와 법 사이에서 박살 나곤 한다"는 주교의 말처럼, 순진함이 사악함을 이기지 못하는 것은 여전히 진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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