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0일 대학로 한양 레퍼토리씨어터에서 연극 <건달은 개뿔>을 관람했다. 이 작품은 제5회 일번출구연극제의 일환으로 공연한 것인데, 이미 지난해에도 무대에 올려져 주목 받은 바 있다.
제목이 말해주듯, 이 작품의 핵심 소재는 '건달'이다. 건달은 내 닉네임과도 관련이 있다. 간다르바는 인도 불교 음악의 신으로, 하늘을 날아다니고 향기를 먹고산다고 한다. 신라 향가 <혜성가>에 '건달바'가 등장하는데, 이는 간다르바를 음차한 것이고 건달은 여기서 유래한 것으로 알고 있다. 애초에는 멋이 있고 긍정적인 뜻을 지녔는데, 어느 시점부터인가 주먹깨나 쓰고 그닥 하는 일 없이 놀고먹는 부류를 지칭하는 말로 변용된 것이다.
'건달'은 영화뿐만 아니라 일찍부터 문학예술에서 즐겨 다룬 소재 가운데 하나이다. 이는 아마도 '건달'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만한 매력적인 요소를 지닌 면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말투나 행동 양태가 독특할 뿐만 아니라, 거칠면서도 순진한 데가 있고, 힘 깨나 쓰면서도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는 꼼짝 못하고, 강퍅한 세태에서 보기 드문 의리를 보이기도 하는(이 또한 예날 얘긴지도 모르겠지만),,, 그리고 허세를 부리면서도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그 솔직함과 무모함에서 보통 사람들은 대리 만족을 느끼기도 한다.
이 연극은 건달들의 세계를 통해 인간의 욕망의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필름 누와르'에서 볼 법한 익숙한 서사를 바탕으로 했음에도, 배우들의 숙련된 무술 연기(싸움 장면 연기)와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공연 내내 작품에 몰입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다섯 명의 건달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각각의 이야기는 별개가 아니라 긴밀한 유기적 연관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이야기 전개 방식이 영화 <라쇼몽>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워낙 오래전에 본 영화긴 한데, 동일한 사건을 서로 다른 인물의 시점에서 그려냄으로써 인간의 내면에 있는 진실과 이해관계 문제를 드러낸 수법이 상당히 흥미로웠던 기억이 있다.
이 연극에 펼쳐진 다섯 건달의 이야기를 다 보고 나면, 전체가 하나의 사건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비극적 최후를 맞이하며 죽음을 앞두고 마음에 담아두었던 생각을 독백처럼 내뱉는데, 그 말들은 모두 어느 정도 울림이 있었다. 인간의 진실과 욕망의 문제를 생각하게 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그 이면에는 이해관계가 놓여있는 경우가 십중팔구이다. 본인의 이익을 위한 것이면서 정의를 내세우는 사례도 많이 보아왔다. 건달은 별종이고 보통의 인간 부류와 다르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들이야말로 인간의 본원적 욕망에 충실한 존재이다. 그들은 '사회 정의' 대신 '의리'를 내세우며, 강자 앞에서는 납작 엎드리고 약자에게는 군림한다. 어떻게 해야 살아남는지 생득적으로 깨달은 부류처럼 보인다.
연극 말미에서, 나레이터 역을 맡은 배우가 "폭력은 동물의 방법이며 비폭력은 인간의 방법"이라고 했다. 과연 그런가. 이는 당위의 논리일 뿐 인간의 세계에도 폭력은 난무한다. 주먹만 쓰는 것이 폭력인가? 교묘한 언어 폭력, 합법을 가장한 강자들의 폭력, 자본의 폭력은 폭력이 아닌가. 이른바 가진 자나 강자만이 폭력을 쓰는 건 아니다. 자칭 '을'의 위치에서 행하는 집단 폭력도 있다. 그럴듯한 대의명분을 내세우면서 자신들의 욕망을 충족하는 비열함과 사악함은 곳곳에 있다.
사실 이 연극은 지나치게 친절하다. 나레이터가 극의 순서와 내용과 전달하려는 메시지까지 설명한다. 그런데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관객의 입장에서는 나레이터가 말한 메시지와 실제 극을 통해 구현된 주제 의식 사이에는 괴리가 있다.
"건달은 개뿔"? 어찌 건달만 개뿔이겠는가. "정치는 개뿔", "선심은 개뿔", "마초는 개뿔", "페미는 개뿔",,,,허세 부리고, 폼 잡고, 달콤한 말로 현혹하고, 약한 척하며 뒤통수 치고, 세상은 온통 '개뿔' 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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