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9일 <썸씽 로튼(Something Rotten)>을 관람했다. 이 작품은 캐리와 웨인 커크패트릭 형제가 존 오패럴과 함께 미국에서 제작한 뮤지컬이다. 2015년 브로드웨이 James Theatre에서 초연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2019년 충무아트센터에서 공연되었다.
제목 썸씽 로튼(Something Rotten)은 "썪은 그 무엇"이라는 의미인데, <햄릿>1막 4장에 등장하는 명대사 "Something is rotten in the state of Denmark"에서 가져온 것이다. 작품 안에서는 바텀 형제가 만든 뮤지컬 가운데 썪은 달걀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는데, 그 이상의 증의적인 의미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은 오늘날 대중예술의 꽃으로 평가받는 '뮤지컬'이 탄생하게 된 과정을 다룬 것인데, 1595년 런던에서 섹익스피어와 경쟁하는 극작가 바텀 형제가 '뮤지컬'이라는 새로운 공연을 만든다는 내용의 코미디이다. 작품성(예술성)과 대중성 사이에서 고민하던 바텀 형제가 결국 대중성을 중시하며 뮤지컬을 무대에 올리게 되고, 신세계인 미국으로 건너가 꽃을 피우게 된다는 것이다.
뮤지컬로 뮤지컬의 매력을 그린 <썸씽 로튼>에서 활용된 주요 표현 수법은 패러디이다. <렌트>, <레 미제라블>, <시카고>, <위키드>, <에비타>,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애비뉴 Q>, <애니>, <부로드웨이 42번가> 등 기존 뮤지컬들을 언급하거나 한 장면을 패러디하는가 하면, 세익스피어의 희곡 <햄릿>< <로미오와 줄리엣> <베니스의 상인>, <한여름밤의 꿈>에 등장하는 인물과 특정 장면을 차용하여 서사를 전개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발표하는 작품마다 큰 성공을 거두며 국민 작가로 칭송받는 셰익스피어와 그의 그늘에 가려 고전하며 영세한 극단을 운영하고 있는 닉 바텀이 서사를 이끌어 가는 핵심 축이다. 닉 바텀은 당대의 국민작가 세익스피어를 미워하며 히트작을 내기 위해 고심한다. 닉 바텀은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를 찾아가 미래의 극장에서 관객들이 열광할 작품이 무엇인지 묻는데, 노스트라다무스는 '뮤지컬'이라고 답한다. 이는 뮤지컬이 태생적으로 대중들의 취향에 부합하는 공연양식임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셰익스피어는 역사적 실존 인물이 작품에 수용된 사례인데, 당대 최고의 국민작가로 바텀 형제와 갈등관계에 놓여 있다. 귀여우면서도 까불까불한 캐릭터로 그려졌으며, 웃음을 유발하기도 하면서 작품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바텀 형제의 공연이 실패로 끝난 상황에서 형 닉 바텀은 관객들의 인기를 끌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데 모든 관심을 집중하지만, 동생 나이젤 바텀은 청교도 집안의 포샤와 사랑에 빠지며 시와 예술을 사랑한다.
비아는 닉 바텀의 아내로, 당시 사회가 요구하던 고정적인 성 역할에서 벗어난 진취적인 모습을 보이는 캐릭터이다.
포샤는 보수적인 집안 출신이지만, 시와 예술을 사랑하고 언제나 당당한 캐릭터이다. 나이젤 바텀과 사랑하는 사이로, 자신이 추구하는 진지한 가치를 바텀과 공유하고자 한다.
노스트라다무스는 예언가의 대명사로 잘 알려진 역사적 실존 인물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다분히 해학적이고 유머러스한 캐릭터로 그려졌다. 그는 닉 바텀에게 앞으로 관객들이 환호할 장르는 뮤지컬이라고 예언하며, 세익스피어 명작은 <오믈릿>이라고 귀뜸해 준다. <햄릿>을 패러디한 것으로 보이는 <오믈릿>은 노스트라다무스의 2% 부족한 면을 보여주는 것이자, 진지함이나 정극과 대비되는 뮤지컬의 대중적 속성을 절묘하게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등장인물도 많고 여러 뮤지컬에서 장면을 가져오기도 해서 무언가 복잡한 느낌을 주지만, 서사도 절묘하고 넘버곡도 음악적 완성도가 있었다. <브로드웨이 42번가>의 탭댄스 장면 등 볼거리도 풍성했으며, <베니스의 상인>의 재판 장면을 패러디한 결말 부분은 묘미가 있었다. 그리고 재판 결과 뮤지컬이 신세계인 아메리카로 가게 되었다는 설정도, 유럽에서 성립된 뮤지컬이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상업적으로나 공연예술의 측면에서 성장하게 된 역사적 과정과 부합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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