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곧 12월 1일. 2021년도 이렇게 저물어 간다. 신축년을 되돌아 보면서, 소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희로애락을 함께 해 온 소는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될 매우 소중한 존재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농경사회가 시작되면서 소의 역할과 비중은 무척 커지게 되었다. 시조신화이자 수렵사회에서 농경사회로의 이행을 반영하고 있는 제주도 삼성신화에, 바다에서 떠 온 돌 상자 안에 세 처녀와 망아지, 송아지, 오곡 종자가 들어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오곡을 심고 망아지와 송아지를 길러 번창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소는 생산과 풍요의 상징으로도 여겨져 우마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는 <양주소놀이굿>이나 <평산소놀이굿>이 그 점을 잘 말해 주고 있다. <양주소놀이굿>은 경사굿에서 놀아지는데, 반드시 자손의 번성과 수명장수를 기원하는 '제석거리'에 이어 행해진다. 소놀이굿의 성격이 '제석거리'의 그것과 같은 맥락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념은 "묏자리가 소의 형국이면 그 자손이 부자가 된다"는 속담에도 반영되어 있다.
사람들은 소를 생구(生口)라고 불렀다. 함께 사는 사람을 식구(食口)라 하고, 한 집에 사는 하인이나 종을 생구라 했다. 그러니까 소를 인격적 존재로 인식하고 집안 사람처럼 대했다는 말이다.
설화에 전하는 소의 형상은 어리석은 존재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지만, 성실하고 꿋꿋하고 충직한 존재로 나타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소가 된 게으름뱅이>, <송아지로 다시 태어난 아이>, <소가 되어 속죄하는 이야기> 등은 이승에서 게으르거나 나쁜 행실을 한 사람이 죽어 소가 되어 회개한 후 새 사람으로 거듭나게 되었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 소는 결핍된 존재가 완전한 존재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거쳐야 할 통과의례로서의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성실하고 우직한 소의 이미지를 담고 있는 이야기로, <소 바꾸고 마누라까지 바꾼 사돈>이야기가 있다. 각기 황소와 암소를 키우는 사돈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우시장에서 사돈끼리 만났다. 황소를 키우던 사돈은 암소로 바꾸려던 참이고 암소를 키우던 사돈은 황소로 바꾸기 위해 우시장에 온 것이다. 그러자 두 사돈은 그럴 거 없이 서로 소를 바꾸면 될 것 아니냐고 하면서, 볼 일을 다 본 셈이니 술이나 한 잔 하자고 했다. 거나하게 취하도록 술을 마신 두 사람은 바꾼 소를 끌고 각기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소의 입장에서는 주인이 바뀐 줄을 어찌 알았겠는가? 본래 자기가 거처하던 집으로 갔던 것인데, 시골집이라 그런지 집의 모양이 대체로 비슷했던 모양이다. 술에 취한 사돈은 방에 들어가 누워 자고 있던 부인을 자신의 아내인 줄 알고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서야 집이 바뀐 줄을 알게 된 사돈이 크게 당황스러워 하며, "아이고, 우리 집 마누라는 어찌 되었는지 모르겠네." 했다는 것이다. 물론 웃자는 이야기지만, 여기서 소가 성실하고 우직한 존재라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경북 선산에는 <의우총(義牛塚) 이야기>가 전한다. 김기년이라는 사람이 암소를 한 마리 길렀다. 그 사람이 호환을 만났을 때 암소가 호랑이를 물리쳤다. 김기년은 상처가 깊어 결국 죽게 되었는데, 가족들에게 소의 의로움을 말하며 팔지도 말고 잡아먹지도 말 것이며 늙어 죽거들랑 자신의 묘 옆에 묻어달라고 유언했다. 주인이 숨을 거두자 소는 사흘간 먹지도 않고 울부짖다 마침내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흔히 예의 염치를 모르는 사람에게 '짐승만도 못하다'고 한다. 말 못하는 짐승도 이렇듯 의로운데, 어찌 사람으로으로서 그럴 수 있는가 하는 힐난이다. 이런 류의 이야기가 자칫 지배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염려도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는 오랜 세월 고락을 함께 해 온 소의 품성에 기반하여 생성된 이야기로 이해할 수 있다.
한 때 광우병 문제로 세상이 시끄러웠던 적이 있다. 자연의 순리에 따라 소를 대했다면 광우병이라는 말이 생겨나기나 했겠는가? 집단이든 개인이든 정도(正道)를 걷지 않고 잔꾀를 부리면 당장은 이득을 취할지 몰라도, 결국에는 명예와 인심을 모두 잃는 결과를 낳기 마련이다.
2021년 신축년도 이제 한달밖에 남지 않았다. '뚜벅뚜벅 황소걸음'이라는 말이 있듯이, 지금까지 그러했던 것처럼 앞으로도 소와 같은 우직함과 뚝심으로 세파를 잘 헤쳐나가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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