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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남자, 흥보

이야기 세계

by 간다르바 2021. 11. 5.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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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보가>의 주인공 흥보는 착한 심성의 소유자로, 심술이 가득한 형 놀보와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인물이다. 흥보가 얼마나 착한 남자인지 그 인물 됨됨이에 대해, 동초 김연수 명창은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중모리) 부모님께 효도허고 형제간으 우애허고, 일가친척 화목허기, 노인이 등짐 지면 자청허여 져다 주고, 길가에 빠진 물건 임자를 찾어 전해주고, 고단한 놈 봉변 보면 한사모피 말려주고, 타향에서 병든 사람 본가에다 소식 전코, 집을 잃고 우는 아이 저희 부모 찾아주기, 계칩불살(啓蟄不殺), 방장부절(方長不折), 지어 미물짐승까지 구원허기 힘을 쓰니, 부귀를 어찌 바랄손가

흥보는 유가적 윤리 덕목인 삼강오륜을 실천하는, 그야말로 한없이 어진 규범적 인물인 것이다. 흥보는 본래 양반 신분이었다. 부모의 후의로 형 놀보에 비해 교육도 더 받았다. 이러한 까닭에 흥보가 유가적 이념에 충실할 수 있었을 것이다. 놀보에게 내침을 당하기 전까지, 흥보는 경제적으로도 어려움이 없이 호의호식하며 지냈다.

하지만 흥보는 놀보 집에서 쫓겨나게 되면서 궁핍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흥보는 곤궁한 처지에도 불구하고 체면을 중시하여 양반으로서의 위엄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당장 지어 먹을 쌀이 없어 환자섬이라도 타 볼 요량으로 읍내에 나가는 흥보의 초라한 행색을 묘사하는 장면이 있다.

(자진모리) 철대 부러진 헌 파립, 조새 갓끈을 달아 써, 편자 떨어진 헌 망건, 갖풀 관자, 종이 당줄, 두 통 나게 졸라매고, 자락 떨어진 헌 중추막, 열 두 도막 이은 띠 흉복통 눌러 띠고. 세 살 부채를 손에다 들고, 복숭 씨로 선초 달아, 활활활활 부치면서, 죽어도 양반이라 여덟 팔자 걸음으로, 갈 지자 걸음으로, 이리 저리, 저리 이리, 이리 요리, 어식 비식

진양이 아닌 자진모리의 빠른 장단으로 흥보의 우스꽝스러운 외양이 극적으로 표현되고 있는데, 읍내에 도착한 흥보가 호방을 만나면 어떻게 인사를 해야 할지 걱정하는 데서 흥보의 내적 갈등이 다시 한번 골계적으로 부각되고 있다. 결국 흥보는 “하쇼를 하자니 나는 반남 박가 양반인듸 내가 아식 밑지것고, 하소를 하자니 저 사람들이 듣기 싫어할 것이요, 이 일을 어쩔꼬.” 고민하다가, 웃음을 섞어 대강 얼버무리며 호방과 인사를 나눈다. 양반의식을 잃지 않으려고 하면서도 경제적 처지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현실에 타협해야 하는 흥보의 가련한 처지가, 골계적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가난함 속에서도 흥보는 부부 금슬이 좋아서 자식을 여럿 두었기에, 생활은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박봉술 바디에는 아들만 구형제를 두었다고 되어 있는데, 동초제에서는 아들만 스물 아홉을 낳은 것으로 되어 있다.

갑실이, 을실이, 병실이, 정실이, 무실이, 기실이, 경실이, 신실이, 임실이, 계실이, 자실이, 축실이, 인실이, 묘실이, 진실이, 사실이, 오실이, 미실이, 신실이, 유실이, 술실이, 해실이, 아롱이, 다롱이, 껌둥이, 노랭이, 발발이, 살살이, 떨렁이...

이처럼 많은 자식을 둔 데다 무능하기까지 한 흥보가 놀보 집에서 쫓겨난 후 정착한 곳이 바로 성현동 복덕촌이다. 지명에서 짐작되듯이 성현동 복덕촌을 실재하는 공간으로 보기는 어려우며, 이상향으로서의 성격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하는 편이 온당하다.

1990년대 흥보와 놀보가 실존인물이라는 주장이 제기된 적이 있다. 판소리 <흥보가>에 보면, '흥보와 놀보가 경상 전라 두 얼품에 살았다'거나 '함양 운봉 두 얼품에 살았다'는 사설이 있는데, 이에 근거하여 함양과 운봉 사이에 위치해 있는 전북 남원시 인월면(당시 명칭은 '동면') 성산 마을과 아영면 성리마을이 각기 흥보마을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당시 경희대에서 흥부전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김창진 교수가 흥부마을 고증 연구 용역을 의뢰받고 보고서를 제출했는데, 김 교수는 흥보와 놀보가 태어난 곳은 인월면 성산 마을이고 흥보가 쫓겨나 정착한 곳은 아영면 성리 마을이라는 결론을 제시했다. 두 지역에 남아 있는 <흥보가>와 관련된 지명이나 <흥보가>의 근원설화라 할 수 있는 ‘박 첨지 설화’와 ‘춘보 설화’ 등을 근거로 절충적인 결론을 도출한 것이다. 특히 ‘성현동'과, '복덕촌'은 아영면 '성복골'’과 ‘복성리’를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하며 성리마을을 생거지라고 비정했다. 그런데 이 연구는 어느 한 마을의 손을 들어주기 힘든 딜레마 상황에서 진행되었으며, 논리의 비약과 추론이 심해서 학술적 정밀함은 갖추지 못했다고 본다.

결과적으로 김교수의 결론에 대해 두 마을 모두 불만스러워 했으나, 이후 지금까지 성산마을은 '출생지', 성리마을은 '생거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흥보와 놀보가 실존인물임을 주장하는 이면에는 이를 관광상품화 하려는 지역민의 이해관계가 자리 잡고 있다. 객관적으로 볼 때, 두 사람은 허구적 인물이다. 놀보를 소개하는 글에서 말했듯이, '놀보'와 '흥보'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이다. 가장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성은 '박'씨인데, 이본에 따라 '연'씨, '장'씨 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게다가 1833년에 필사된 이본으로 알려진 <흥보만보록>에는 공간적 배경이 평양 서촌(현 평양 순안구역)으로 되어 있다. <흥보만보록>은 흥보와 놀보를 평양 출신 평민으로 설정한 점, 흥보가 무과에 급제해 덕수 장씨의 시조가 되었다는 점, 놀보를 악인으로 설정하지 않았다는 점 등에서 현전 창본뿐만 아니라 여타 이본과 구별된다. 이처럼 창본이나 이본에 따라 공간 배경뿐만 아니라 흥보와 놀보의 성씨, 신분 등이 다르다는 사실은 이들이 역사적 실존인물이 아님을 방증한다.

쫓겨난 흥보는 성현동 복덕촌에 정착한 이후 어떤 삶을 살았는가. 이 곳에서 흥보는 생계를 도모하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여 보지만, 좀처럼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데 흥보의 이러한 가난이 전적으로 개인의 무능함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그의 가난은 사회적 가난의 성격이 강하다. 왜냐하면, 흥보는 나름대로 가난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했기 때문이다. ‘매품 파는 대목’은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한 흥보의 노력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매품을 팔기로 약속한 후 선불로 돈 닷냥을 받고 마냥 좋아할 정도로, 흥보의 욕망은 소박하다.

(중모리) 저 아전 거동을 보아라. 궤문을 떨컹 열고 돈 닷 냥을 내어주니, 흥보가 받아 들고, 다녀오리다. 평안히 다녀오오. 박흥보 좋아라고, 질청 밖을 썩 나서서, 얼시구나 좋구나 돈 봐라 돈, 돈 봐라 돈 돈돈 돈돈 돈 봐라 돈. 이 돈을 눈에 대고 보면 삼강오륜이 다 보이고, 조끔 이따 나는 지화를 손에다 쥐고 보면 삼강오륜이 끊어지니, 보이난 게 돈 밖에 또 있느냐? 돈 돈봐라, 돈 돈. 떡국집으로 들어를 가서, 떡국 한 푼 어치를 사서 먹고, 막걸리 집으로 들어를 가서, 막걸리 두 푼 어치를 사서 먹고, 어깨를 늘이우고, 죽통을 뺏Em리고, 대장부 한 걸음에 엽전 설흔닷 냥이 들어를 간다.

모름지기 '군자는 무항산(無恒産)이라도 유항심(有恒心)이지만, 소인은 무항산(無恒産)이면 무항심(無恒心)'이라고 했다. '항산'은 매달 꼬박꼬박 월급을 받듯이 일정한 생산이 있는 걸 말하며, '항심'은 '언제나 한결같은 마음'을 의미한다.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대부분의 필부필부(匹夫匹婦)들은 '항산(恒産)'이 있어야 '항심(恒心)'이 있는 법인데, 흥보는 ‘돈’과 ‘삼강오륜’의 상관 관계를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결국 흥보는 제비가 가져다 준 보은표 박씨에서 나온 재물 덕분에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현실성을 중시하는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환상적인 방식에 의한 문제 해결을 부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렇게만 볼 것은 아니다. 판소리에서 보이는 환상적, 낭만적 방식에 의한 문제 해결 방식은 판소리 향유층의 꿈과 원망을 반영한 결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착한 사람을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한다. 흥보가 바로 그런 인물이다. 이처럼 착한 흥보가 끝내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면, 세상에 천리(天理)나 정의가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제비의 보은표 박씨의 도움으로 흥보가 부자가 된 것은 판소리 향유층의 이러한 인식의 산물이다.

다리가 부러진 제비를 불쌍히 여겨 정성껏 치료해 주는 흥보의 착한 심성이 복을 받게 된 가장 근본적인 요인으로 작용했지만, 이에 앞서 도승이 흥보에게 좋은 집터를 잡아 주어 복 받았다고 하는 풍수담이 개입되어 있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명당을 통한 발복(發福)’은 설화에서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을 정도로 폭넓게 전승되고 있는 민간신앙인데, <흥보가>에 수용된 풍수담은 장차 부자가 될 흥보의 앞날을 예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보은박에서 나온 세 가지가 바로 의식주라는 점이다. 첫째 박에서는 돈과 쌀이 나오고, 둘째 박에서는 온갖 비단이 나오며, 셋째 박에서는 집이 나오는 것이다. 이는 흥보의 욕망이 사치와는 거리가 먼,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동안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굶주리던 흥보네는 식구 당 한 섬씩 밥을 지어 먹는 대목이 있는데, 표현이 매우 해학적이다. 그 가운데 ‘흥보가 밥먹는 데’를 보면 이러하다.

(휘모리) 흥보가 밥 먹는다. 흥보가 밥 먹는다. 흥보가 밥을 먹는다. 뚝, 딱, 뚝, 딱. 뚝딱 뚝딱 뚝딱 뚝딱. 뭉쳐 가지고, “올라 가거라.” 딱. 흥보가 밥 먹는다. 흥보가 밥을 먹는다. 뚝딱 뚝딱 뚝딱 뚝딱. 뭉쳐 가지고, “올라 가거라.” 딱, 딱. 던져 놓고, 받아 먹고, 던져 놓고, 받아 먹고, 던져 놓고, 받아 먹고. “아이고, 밥을 어찌 많이 먹어 놨던지, 흥보가 밥을 먹다 죽는다. 아.” 흥보 마누라 기가 맥혀, “아이고, 영감, 정신 차리오. 아이고, 우리 영감, 돌아가시네. 밥 먹다가 죽다니. 밥 없어서 배고파 죽것더니, 인제는 밥을 많이 먹어도 돌아가시네. 아이고, 정신 채려.” “아아아!”

여기에 더해, 흥보 자식들이 물정 모르고 산 만큼 솟아 오른 흥보의 배를 지그시 누르자, “똥줄기가 무지갯살같이 그저 운봉 연재로 막 그냥 넘어 오니까, 농군들이 논에서 일을 허다가, 누런 무지개가 올라가니까, 황룡이 올라간다 하고 절을 하고, 그 해 풍년이 들었다”는 재담이 곁들여 지는 경우도 있다.

흥보가 규범적이고 착한 심성을 지닌 ‘바른 생활 사나이’임에는 틀림 없지만, 그 또한 당대의 현실적 조건 속에서 사유하고 행동하는 지극히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남성으로서의 면모도 지니고 있다. 무엇보다도 아내를 대하는 그의 태도는 무척 권위적이다.

마누라 시켜 밥 얻어 오게 하고 고추장을 얻어 오지 않았다고 담뱃대로 때리는가 하면, 자식들의 성화에 울음보를 터뜨린 아내에게 “시끄러, 집안에서 예편네가 앙앙 울면 재수가 있어야지”(박봉술 바디 <흥보가>)라고 하면서 윽박지르는 면모를 보이는 데서 그러한 모습이 잘 나타난다. 신재효 본과 김연수 바디에서는, 박에서 돈과 쌀과 비단이 나와 의식주가 해결된 후 양귀비가 등장한다. 이는 부귀를 얻은 후에 색(色)을 취하고자 하는 남성의 욕망이 투사된 결과로 보이는데, 흥보 또한 그러한 남성의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흥보가>의 주제의식은 권선징악(勸善懲惡), 복선화음(福善禍淫), 개과천선(改過遷善)이라는 전통적인 가치와 맞닿아 있으며, 형제간의 우애를 되찾았다는 것으로 작품이 마무리되기 때문에 <흥보가>의 주제를 ‘우애’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렇지만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본다면, 이 작품은 단순히 ‘우애’만을 강조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물질적 가치와 심성의 문제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부러진 제비 다리까지 고쳐줄 정도로 마음씨 착한 흥보는 복을 받고,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독차지 하고 흥보를 내쫓은 놀보는 결국 벌을 받게 되었으니 말이다.

한때 착하지만 무능한 흥보보다 인색하지만 부자인 놀보를 예찬하는 시각이 있기도 했다. 195~60년대 경제개발에 대한 관심이 극대화되던 시대분위기 속에서 '놀보예찬론'이 확대되었고, 오늘날까지 그러한 시각이 일부 지속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지만 흥보가 보여준 착한 심성을 ‘흥보정신’이라고 한다면, ‘흥보정신’이야말로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하고 무한 경쟁이 지배하는 우리 시대에 더욱 빛나는 덕목이 아닐까?

돈이면 모든 걸 얻을 수 있다고 믿는 현실에서 이러한 주장이 공허할 수는 있겠지만, 무한 경쟁 시대에 과연 무엇이 진정한 행복인가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필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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