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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주부 마을

이야기 세계

by 간다르바 2021. 9. 28.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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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5일 충남 태안군 남면 원청리에 있는 별주부 마을을 다녀왔다.

별주부마을과 그 주변


'별주부마을'은 ‘자라바위’를 증거물로 내세우며, <별주부전>의 발원지라고 주장하고 있다. 용왕을 구하려다 실패한 후 자결한 별주부가 죽어 바위가 되었다는 것이다.

<별주부전>은 <토끼전>이라고도 하며, 판소리에서는 <수궁가>라고 한다. <수궁가>는 전승 5가 가운데 유일한 우화(寓話)로, 인도 불전설화에 기반을 두고 형성된 작품이다. 석가의 전생 수행담인 자타카(Jataka)에 전하는 이야기에는 원숭이와 악어가 등장한다. 임신한 악어 부인이 남편에게 원숭이 심장이 먹고 싶다고 하자, 악어 남편은 원숭이에게 바나나 등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섬으로 데려가 주겠다고 유혹한다. 섬으로 가는 도중에 악어는 원숭이에게 심장이 필요하다고 하자, 원숭이는 심장을 나무 위에 두고 왔다고 하여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이야기다.

불전설화에 전하는 <원숭이와 악어 이야기>는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수용되는 과정에서 일정한 변용을 거치게 되는데, 우리나라 문헌에 보이는 최초의 기록은 <삼국사기>‘김유신전’에 전하는 <구토(龜兎)이야기>이다. 신라 김춘추가 고구려에 사신으로 갔다가 억류되었을 때 고구려 신하 선도해가 김춘추에게 들려준 것이라고 하는데, 선도해가 이 이야기를 들려준 이유는 자명하다. 김춘추가 그 뜻을 알아차리고 토끼의 지혜를 발휘하여 위기를 벗어났다고 전하니 말이다. 현재 전승되고 있는 판소리 <수궁가>는, 서사의 대체적인 틀은 <구토설화>의 그것을 이었으면서도, 다채로운 삽화와 인물들이 곁들여져 훨씬 풍부하고 깊이 있는 주제의식을 구현하고 있다.

<수궁가>는 <토끼전>, <별주부전>, <토별가> 등 다양한 제명으로 불리는 데서 알 수 있듯이, 기본적으로 토끼와 자라가 주인공인 작품이다. 즉, 이들의 지략 대결이 작품 전편을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의 대결이 촉발된 이유는 용왕이 위중한 병을 얻었는데, 토끼의 간이 있어야 치료가 가능한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토끼와 자라의 대결은 곧 토끼와 용왕의 대결이기도 하다.

자라인 별주부는 천신만고 끝에 토끼를 유인하여 수궁에 데려 오지만, 토끼는 기지를 발휘하여 사지에서 벗어나 육지로 되돌아간다. 그리고 토끼를 육지에 데려다 준 별주부는 토끼에게 조롱과 모욕만 당하고 아무 보람 없이 수궁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본에 따라서는 별주부가 좌절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자살하고 마는 경우도 있다. 가람 A본과 연경 A본에서는 소상강으로 피신한 별주부가 동정호로 귀양 온 신하로부터 용왕과 아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비에게 원정을 올린 후 자결한다. 그리고 국립도서관 B본에서는 별주부가 토끼를 잃은 후 면목이 없다는 글을 써서 바위에 붙인 후 자결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자라 바위


고전에 등장하는 인물을 현실에 실재하는 것으로 주장하는 사례는 지방자치제 시행 이후 특히 많아졌으며, 이는 지역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문화 상품화를 통해 지역 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춘향, 심청, 흥보, 홍길동, 변강쇠 등 이에 해당하는 사례는 매우 많으며, 별주부마을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그렇다면 <수궁가>의 별주부는 어떤 인물인가?

별주부(鱉主簿)는 <수궁가>에서 용왕이 중병에 걸리자 육지에 나가 토끼를 잡아 오는 임무를 수행한 자라를 가리키는데, ‘주부’는 조선 시대 각 아문의 문서와 부적(符籍)을 주관하던 종육품의 벼슬을 뜻한다. <수궁가>를 일명 <토끼전>이라고도 하지만, <토별가>․<별주부전>․<토별산수록> 등으로 일컫기도 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별주부는 토끼와 지략 대결을 펼치며 작품 중심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중이 매우 큰 존재이다.

용왕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특효약은 토끼의 간 밖에 없다는 도사의 진단이 내려진 후, 용왕은 누가 위험을 무릅쓰고 임무를 수행할 것인지 신하들에게 묻는다. 그러나 신하들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묵묵부답일 뿐 아무도 선뜻 나서는 자가 없다. 이에 왕이 자신을 살릴 충신이 없음을 탄식하며 몇몇 신하를 거론하는데, 그 때마다 다른 신하가 나서며 불가함을 아뢰는 상황이 반복된다. 이때 별주부가 등장하여 자신이 해당 임무를 수행하는 적임자라고 하며 육지에 나가 토끼를 잡아오겠노라고 한다. 별주부가 토끼를 잡아 오기 위해 육지로 가기 전에 어머니와 아내와 이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사설이 비장하면서도 해학적이다. 별주부 모친은 육지가 너무 위험하니 가지 말라고 호소한다. 별주부 마누라 또한 이별이 길어질 것을 염려하여 별주부에게 가지 말라고 만류한다. 별주부는 나라를 위하는 일이라고 하면서 모친을 위로하고, 마누라에게는 다음과 같이 신신당부하며 육지로 떠난다.

(아니리) -전략- 그 때에 주부 마누라가 있는듸, 이 놈이 어디로 장가를 들었는고 허니 소상강으로 장가를 들었것다. 택호를 부르며 나오는듸, “아이고 여보, 소상강 나리, 세상으를 간다 허니 , 당상의 백발 모친어찌 잊고 가랴시오?” “오냐. 네가 아이고 지고 운다마는, 내가 너를 못 잊고 가는 일이 하나 있다.” “아, 무슨 일을 그렇게 못 잊고 가세요?” “다른 게 아니라, 재 넘어 남생이란 놈이 제 조에 덧붙임 사촌간이라 하여 두고 볼곰볼곰 자주 돌아당기는 게 아마도 내 구망에 껄쩍지근혀. 그 놈 몸에는 거 노랑내가 나고, 내 몸에는 고순 내가 나니, 글로 징험해서 부대 조심허렷다 잉.” (박봉술 바디 <수궁가> 중에서)

충(忠 )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떠나는 상황에서도 부인이 행여 바람이 날까 염려하는 별주부의 행태는 인간세계의 그것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육지에 도착한 별주부는 토끼를 만나는 과정에서 우여곡절을 겪게 되는데, 호랑이에게 봉변을 당하여 목숨을 잃을 뻔한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토(兎)생원!” 하며 토끼를 부른다는 것이 수로 만리를 턱으로 밀며 오던 끝이라 턱이 굳어서 발음이 헛 나오는 바람에 “호(虎)생원!”하고 부르게 되어 위기를 자초하게 된 것이다. 약자들의 세계인 육지에서 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호랑이는 별주부를 발견하고 하느님 똥인 모양이라고 하며 집어 삼키려 한다. 깜짝 놀란 별주부가 엉겁결에 “내가 명색이 자래 새끼라고 하오.”라고 대답하자, 호랑이는 더욱 신이 나서 별주부를 잡아먹으려 든다. 그렇지만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에게 대드는 격으로, 별주부는 목을 길게 늘어 빼어 호랑이의 급소를 콱 물어버림으로써 위기를 벗어나는데, 이 과정이 또한 매우 해학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자진모리) “내의 내력 들어 봐라. 내의 내력을 들어 봐라. 우리 수국 퇴략하야 천여간 넘는 집을 내 솜씨로 올리다가, 처마 끝에 뚝 떨어져서 거의 죽게 되얐더니, 명의한틔 문의헌즉 호랭이 쓸개가 좋다기로, 도르랑 귀신 잡어 타고 호랭이 사냥을 나왔더니, 네가 진정 호랭이냐? 도르랑 귀신 거 있느냐? 비수검 드난 칼로 이 호랭이 배 갈라라!” 도르랑 도르랑 도르랑 허고 달려 들어 호랭이 다리를 아드득 물고 어찌 뺑뺑이를 돌아 놨던지, 호랭이 기가 맥혀, “아이고, 쓸개 주께 좀 노시오.” “잔소리 말고 쓸개만 내놔라, 이놈아.” “아이고, 여기를 놔야 쓸개를 드리지요.”

별주부가 필사적인 공격으로 호랑이를 제압한 것은 약자가 강자를 물리친 것이라는 점에서, 수궁에서 죽을 위기에 처했다가 지혜를 발휘하여 천신만고 끝에 살아 나온 토끼와 상통하는 점이 있다. 그러니까 별주부는 용왕의 신하로서 지배층의 일원이면서 한편으로는 토끼와 같은 범주에 놓여 있는 약자이기도 한 것이다.

위기에서 벗어난 별주부는 토끼를 만나 온갖 감언이설로 유혹한다. 호랑이와의 관계에서 약자의 위치에 있던 별주부는 토끼와의 관계에서 권력을 가진 강자의 위치로 전환된다. 그렇지만 토끼는 녹록한 존재가 아니다. 꾀가 많고 지혜롭기 때문에 쉽게 유혹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별주부는 어떻게 해서든지 토끼를 수궁으로 데려와야 하는 절체절명의 소임을 지니고 있다. 그야말로 토끼와 별주부의 지략 대결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별주부는 토끼가 처한 처지와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욕망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 육지에서 토끼가 겪어야 할 여덟 가지 위험 요소를 나열하여 겁을 주는가 하면, 수궁에서 누릴 수 있는 부귀 영화를 제시함으로써 토끼의 욕망을 자극한다. 별주부의 협박과 회유에 속아 토끼가 수궁으로 가기로 결심한 순간, 여우가 나타나 토끼의 선택이 매우 위험함을 지적하며 가지 말라고 설득한다. 귀가 얇은 토끼가 여우의 말을 듣고 수궁에 가지 않겠다고 하자, 별주부는, “네 이놈, 여호야. 네 사촌 수달피를 따라서 우리 수국에 들어왔기여, 타국 김생이라고 귀히 여겨서 호조판서 시켰더니, 호조돈 삼만냥을 못된 갑작골이 하야 없애 버렸기로 어전 곤장 삼십도에 문외 출송하였더니, 네 말이 탄로날까 싶어서 남조차 못 가게 심술을 부린단 말이냐, 이 때려죽일 놈아.”(박봉술 바디 <수궁가>)라고 대응하여 여우의 진정성을 무너뜨림으로써 상황을 반전시킨다. 토끼를 유혹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별주부의 지혜와 순발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결국 토끼와의 지략 대결에서 승리를 거둔다.

토기를 수궁에 데려옴으로써 별주부의 소임은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토끼가 기지로 용왕을 속이고 육지로 살아가게 되면서 별주부는 새로운 국면에 처하게 된다. 용왕의 신임을 얻기 위해 별주부와 토끼는 또 다시 지략 대결을 벌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중중모리) 별주부가 울며 여짜오되, 별주부가 울며 여짜오되, “토끼란 놈 본시 간사하오. 뱃속에 달린 간 아니 내고 보내면 초목금수라도 비소할 터이오. 맹획의 칠종칠금하던 제갈량의 재주 아닐진댄, 한 번 놓아서 보낸 토끼를 어찌 다시 구하리까? 당장으 배를 따 보아 간이 들었으면 좋거니와, 만일 간이 없고 보면 소신으 구족을 망하야 주옵고, 소신을 능지처참 허드래도 여한이 없사오니 당장에 배를 따 보옵소서.” 토끼란 놈 듣고 기가 맥혀, “이놈아, 별주부야. 너 날과 무슨 혐오 있나? 하걸이 학정으로 용방을 살해하고 미구에 망국이 되었기로, 너도 이놈 내 배를 갈라 간이 들었으면 좋거니와, 만일 간이 없고 보면, 불쌍한 내 것 목숨 너의 나라 원귀 되야, 너의 용왕 백년 살 듸 하로도 못 살 터이고, 너희 수국 만조백관을 한날 한시에 모도 다 몰살시키리라. 아나, 엿다, 배 갈라라. 아나, 엿다, 배 갈라라. 아아, 아나, 엿다, 배 갈라라. 똥 밖에는 든 것 없다. 내 배를 갈라 네 보아라.”

별주부와 토끼는 고사 성어를 동원하며 궁즉통(窮則通)의 정신으로 각기 모든 것을 걸고 정당성을 주장했는데, 이번에는 토끼가 승자가 되었다. 자신의 말이 틀렸으면 구족을 멸해도 좋다는 별주부의 주장과 그렇게 의심스러우면 배를 갈라 보라는 토끼의 주장이 맞선 가운데, 용왕이 토끼의 손을 들어주었기 때문이다. 용왕의 신하 별주부는 왕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그야말로 목숨 걸고 토끼를 잡아왔던 것인데, 주군인 용왕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자신의 진정성과 한결같은 충성심을 인정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결국 별주부는 자신이 주체가 되어 상대와 맞선 상황에서는 호랑이와 토끼를 이길 수 있었지만, 신하로서 주군의 신임을 얻는 데는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별주부는 끝까지 신하로서의 소임을 다한다. 어리석지만 주군인 용왕의 명령을 받들어 토끼를 육지에 태워다 주는 것이다. 육지에 도착해서 별주부가 토끼에게 사정을 하자, 토끼는 별주부에게 욕을 한바탕 해대고 이렇게 말한다.

(아니리) “네 이놈, 네 소탕머리를 이놈 생각하면, 네 복판을 저 내민 돌팍 위에다 올려 놓고, 우루루루루 쫓아가서 콱 밟어 가지고 옹그짐 뿌시러진 소리가 나게 해서 보낼 일이로되, 네가 나를 업고 수국 만리 먼먼 길에까지 들어갔다 나온 공을 생각해서 살려는 보내지마는, 네 이놈, 차후에는 그런 보초없는 버릇은 놔라 잉. 하마터면 내가 너 때문에 수국에 가서 오살할 뻔 당했다. 니녀르 자슥아. 그러나 내가 수국에 가서 잠깐 근경을 보니, 네가 용왕한테 충성이 지극허던구나. 내가 약을 한 가지 일러줄 터이니 갖고 이대로 해라 잉. 너그 수국에 암자래 많더구나, 요놈. 하루 일천오백마리씩 석달 열흘만 댈여 멕이고, 복쟁이 가루를 천석을 만들어서 오대대를 크게 지어라. 지어 가지고, 용왕 입에다 전지를 딱 들이대고, 안 먹을라고 해도 어쨌든지 다 멕여라. 그러면 죽든지 살든지 판단이 나 버릴 것이다. 네 이놈, 속 채리고 어서 들어가. 나도 갈 데로 가니까 어서 가란 말이야.” 별주부 곰곰 생각을 해 보니, 저놈헌틔 속절없이 돌렸구나. 하릴없어 수궁으로 들어가 버리고.-후략-(박봉술 바디 <수궁가> 중에서)

별주부는 충(忠)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한 인물이다. 그렇지만 별주부가 온갖 위험을 감내하면서 살리고자 했던 용왕은 어리석고 무능한 위정자로, 토끼의 구변에 휘둘려 별주부의 충성심을 무위(無爲)로 돌리고 말았다. 목표를 이루고자 하는 끈질김과 자신이 처한 문제적 상황을 극복하는 능력이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별주부는 무능한 권력 혹은 희망이 없는 지배 질서를 변혁시키려고 하기는 커녕, 회의하거나 반성하는 자세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해관계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며 손쉽게 삶의 태도를 바꾸는 일이 비일비재한 현실에서,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꿋꿋하게 외길을 가는 모습이 아름답게 보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객관적 현실의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자기 세계에만 갇혀 있다면, 세상과의 소통은 불가능하며 스스로의 삶을 파멸로 이끌기 쉽다. 더구나 그러한 존재가 권력 집단에 속해 있을 경우, 자신의 파멸에 그치지 않고 그 범위가 더욱 확대될 것임에 틀림없다.



* '별주부 마을' 외에, 몽산포, 황도, 청포대, 운여해변 등을 둘러 보았는데, 서해안의 풍광이 참으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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