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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산이 하늘을 향해 올라가다 멈춘 까닭은?

이야기 세계

by 간다르바 2021. 12. 5.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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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4일 진안에 일정이 있어 갔다가, 마이산을 들렀다. 예전에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이랑 함께 왔던 곳이라, 느낌이 각별했다. 시간이 넉넉하지는 않아서, 마이산 남쪽에 위치한 금당사와 탑사를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금당사 일주문. 일주문은 절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성'과 '속'의 경계를 나타내는데, 일주문 안으로 들어가니 금당사 가는 길 양쪽에 상가가 길게 늘어서 있다.

금당사에 들어가니 분위기가 고즈넉하다. 절 가운데 '극락보전'이 자리 잡고 있다.

석가여래를 모신 법당을 '대웅전', 관음보살을 모신 법당을 '보광전', 아미타불을 모십 법당을 '극락(보)전'이라 한다. '대웅전'에서 '대'는 크다는 뜻으로, 우리말로 '한'이라고 한다. 그래서 '대웅'은 '한웅', 곧 단군의 아버지인 '환웅'과 연결지어 보기도 한다. 불교가 토착신앙을 대체하는 과정에서 '환웅'이 '대웅'으로 변모되고 대웅전에 부처님을 모시게 되었다는 것이다.

극락보전


극락보전은 아미타불을 모신 법당인데, 아미타불은 죽은 자의 세계인 극락을 관장하는 분이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에 나오는 그 아미타불이다. 금당사 극락보전에 모셔진 아미타불은 전북도지정유형문화재 목조좌상으로 지정되어 있다.

가운데 있는 분이 '아미타불'. 양 옆에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좌정하고 있다.


금당사를 나와 탑사로 향했다. 오후 늦은 시간이라 사람도 별로 없는 한적한 길을 혼자 걸었다. 옛 추억을 떠올리며...

마이산 소개 글.



저만치 마이산과 탑사가 보인다.

탑사 전경. 뒤편에 마이산이 우뚝하게 솟아 있다.

마이산은 두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분위기가 독특하다. 마이산에 얽힌 전설이 있다.

마이산이 하늘을 향해 솟아 오르고 있었다. 그때 아이를 업고 길가에 나와 있던 한 여자가, "저기 산이 올라간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마이산은 더 이상 솟아 오르지 않고 그 자리에 멈추게 되었다.

이런 종류의 전설은 전국 곳곳에 전하고 있으며, 이를 <산 이동 설화>라고 한다. 대부분의 이야기에서, '산'은 '하늘'이 아니라 '서울'을 향해 가는 것으로 나온다 . 길가에 있던(혹은 빨래를 하던) 여성이 "저기 산이 간다"고 말함으로써, 산이 그 자리에 멈추게 되고 그래서 지금 그 산이 거기에 있다는 것이다. 이야기는 간략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단순하지 않다. 여기서 '산'은 남성을 상징하며, '서울' 혹은 '하늘'은 남성이 지향하는 목표나 가치를 의미한다. 서울은 세속의 중심으로, 남성에게는 출세의 공간이라 할 수 있다. '하늘'은 지상과 대비되는 공간으로, 고귀하고 높은 위상을 지니고 있다.

그러니까 <산 이동 설화>는 '산이 자신의 소망하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목표를 향해 나아갔으나, 여성으로 인해 산(남성)의 욕망이 좌절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남성이 추구한 것이 '사회적 가치'라면, 여성이 소중히 여기는 것은 '가족적 가치'이다. 사회적 가치와 가족적 가치가 충돌하는 과정에서, 남성의 욕망이 좌절하게 되는 것... 그것이 이 설화에 담겨 있는 의미이다.

이 이야기에서 여성은 부정적 형상으로 읽힌다. 그렇지만 한번 더 생각해 보면, 여성이 산을 멈추게 했다는 것은 일종의 세계 창조 행위이다. 즉 이 전설은 본래 여성의 신화적 능력을 보여주는 이야기로 볼 수 있다. 그러던 것이 후대로 오면서, 여성의 창조신적 면모는 사라지고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남성의 욕망을 좌절시키는 존재로 변모된 것이다.

탑사 우물. 이곳이 섬진강의 발원지라고 한다.

섬진강(蟾津江)은 길이가 약 223 Km로, 진안에서 발원하여 임실, 남원, 곡성, 구례, 하동을 거쳐 남해로 흐른다. 굽이굽이 흐르는 섬진강변은 풍광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며, 특히 '구례~하동' 구간은 이름난 드라이브 코스이기도 하다. 섬진강의 옛 이름은 '모래 가람' 혹은 다사강(多沙江)이었다. 모래가 워낙 유명했기 때문이란다.

고려말 왜구가 남해안으로 쳐들어 왔을 때의 일이다. 당시 두꺼비떼가 나타나 마구 울어댔는데, 왜구는 이를 무언가 불길한 징조로 여기고 두려워하며 퇴각했다고 한다. 이후로 강 이름을 '두꺼비 섬(蟾)'자를 써서 섬진강으로 했다는 전설이 전한다.

그래서인지 섬진강 하구 쪽에 섬거(蟾居) 마을이 있으며, 돌로 만든 두꺼비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설화에서 두꺼비가 신이한 능력을 지닌 존재로 나오는 경우는 제법 있다.

산신각.

산신각에 산신과 함께, 탑사를 세운 이갑룡 처사가 모셔져 있다.


절에 세워진 산신각은 토속 신앙이 불교에 수용된 사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절에 따라, 삼성각, 철성각 등의 이름으로 되어 있기도 하다. 산신각에 대해서는 별도로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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