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6일 충무 아트홀에서 뮤지컬 <헤드윅>을 관람했다.
남성 배우가 성전환 수술을 한 여성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데다 거의 혼자서 공연을 끌고 가야 하기 때문에, 아무나 '헤드윅' 역을 감당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역대 헤드윅 역을 맡은 배우들의 면면을 보면 하나같이 뛰어난 기량을 지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번 공연에서는 조승우, 오만석, 이규형, 고은성, 렌이 헤드윅 역을 맡았는데, 그 가운데 고은성이 출연한 공연을 관람했다. 고은성은 잘 생겼을 뿐만 아니라, 가창력도 매우 돋보였다. 몸매도 날씬해서, 여성 뺨치는 매력을 뽐냈다.
<헤드윅>(원제 : Hedwig and the Angry Inch)은 두 사람의 배우가 이끌어 가는 뮤지컬이다. '헤드윅'과 '이츠학'이 주인공인데, 헤드윅의 역할이 압도적으로 많다. 극중 공간은 뉴욕 타임스퀘어 옆에 위치한 밀레니엄 극장이며, 극중 상황은 이곳에서 헤드윅이 콘서트를 진행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리고 무대에 하드락 밴드가 배치되어 있어 연주를 담당하고, 애니메이션을 무대 배경으로 활용했다.
헤드윅은 관객에게 말을 건네거나 박수를 유도하는 등 즉흥성과 현장성을 살리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였는데, 이는 콘서트 컨셉을 활용한 작품의 특성에 비추어 볼 때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오히려 이런 부분이 좀 더 적극적으로 부각되면 좋았을 텐데, 코로나 상황에서 관객들의 적극적인 호응을 유도하기 어려운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헤드윅은 콘서트를 이끌어 가면서 노래를 부르고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도 들려준다. 그 과정에서 헤드윅의 성장과정이 어떠했는지, 고민이 무엇인지, 결국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지 드러난다.
<헤드윅>의 스토리 전개는 이러하다.
1988년 동독 베를린 장벽이 세워질 때, 동 베를린에서 한셀은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다. 그의 유일한 즐거움은 좁은 아파트에서 미군 방송을 통해 듣는 락 음악이다. 대학에서 쫓겨나고 암울한 인생을 살던 한셀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동베를린에 파견된 미군 루터가 성전환수술을 조건으로 결혼을 제의한 것이다. 한셀은 엄마의 이름인 헤드윅으로 이름을 바꾸고 성전환 수술을 하게 되는데, 수술의 실패로 그의 성기엔 여자의 그것 대신 일 인치의 살덩어리만 남게 된다.
미국으로 건너온 헤드윅은 루터에게 버림받고, 정션 시티의 트레일러 하우스에서 연명하며 지낸다. 그러던 중 헤드윅은 자신의 첫 사랑 음악을 통해 새 출발을 꿈꾼다. 그녀는 화장을 하고, 가발을 쓰고, 락 밴드 앵그리 인치를 만들어 변두리의 바와 패스트 푸드 레스토랑을 전전하며 노래를 부른다.
헤드윅은 16세의 소년 토미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락 음악을 가르쳐 준다. 그런데 일 인치의 살덩이의 존재를 알게 된 토미는 헤드윅을 배신하고 그녀가 만든 곡들을 훔쳐 세계적인 락스타로 성공한다.
깊은 상처를 받은 헤드윅은 크로아티아 투어 중 최후의 유태인 드랙퀸 '이츠학'을 만나, 그가 다시는 여장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이츠학을 미국으로 데려온다. 이츠학은 헤드윅의 남편이자 앵그리인치 밴드의 백보컬을 담당한다.
그러던 어느 날, 길에서 우연히 토미를 만난 헤드윅은 배신의 상처와 증오의 감정을 접어둔 채, 재회의 기쁨을 나눈다. 그런데 이들이 운전하던 차가 스쿨버스를 들이 받으면서 큰 사고가 나고, 이 사고를 통해 비로소 헤드윅의 기구한 사연이 알려진다.
결말에 이르러, 헤드윅은 애지중지하던 가발을 벗어던질 뿐만 아니라 팬티만 입은 채 모든 옷을 벗고 무대에 선다. 그리고 앞으로 어디에도 얽애이지 않고 자신이 삶의 주체가 되어 자유롭게 살아가겠노라고 다짐한다.
헤드윅이 공연 내내 관객들에게 자신에게만 집중해 달라고 요구하며 이츠학을 무시하려 들거나 타임스퀘어에서 공연하는 토미를 질투하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모습 등은 그가 어려서 부터 겪은 상처가 워낙 깊었음을 말해준다.
헤드윅이 들려준 삶의 이야기는 처절한 것이었음에도, 공감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헤드윅이 어린 시절 아버지로 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점도 그렇거니와, 미군 루터의 제안으로 성전환 수술을 선택한 것이 참으로 낯설었다. 아버지가 친딸을 성폭력하는 사례는 더러 뉴스에 소개되기도 했지만, 아들이 아버지로 부터 성폭력 당했다는 경우는 들은 적이 없었다. 게다가 자유를 얻기 위해서라는 명분 때문이긴 했지만, 루터의 요구로 성전환 수술을 선택한 한셀의 행동 또한 공감하기 어려웠다. 이는 아마도 문화적 차이로 인한 이질감과 시대적 공간적 배경이 다른 데서 오는 낯설음 때문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결말에 이르러 헤드윅이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내보이며, 남자 혹은 여자가 아닌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겠노라고 선언하는 모습은 매우 강렬하고 감동적이었다. 그가 가발과 옷을 벗어버린 것은 자유로운 삶에 대한 열망과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극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자유로운 삶을 꿈꾸지만, 이 세상에 어느 누구도 전적으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또한 아름답게 한 평생 살아가면 좋겠지만, 운명은 알 수 없는 것이어서 어떤 곡절을 겪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 인생이다. 어느 경우든, 설령 극한의 고통 속에 놓여 있다 할지라도, 자신이 삶의 주체가 되었을 때 비로소 가치 있는 진정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헤드윅> Number
1. Tear Me Down
2. The Origin Of Love
3. Sugar Daddy
4. Angry Inch
5. Wig In A Box
6. Wicked Little Town
7. The Long Grift
8. Hedwig's Lament
9. Exquisite Corpse
10. Wicked Little Town(Reprise)
11. Midnight Ra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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