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극장 해오름
○ 국립창극단
○ 9월4일

판소리 <심청가>는 그동안 창극, 악극, 연극, 뮤지컬, 영화, 발레 등 다양한 장르로 변주되며 새로운 작품으로 거듭났다. 동일한 갈래로 반복해서 공연된 경우도 있는데, 창극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심청가>에는 현실세계와 환상의 세계가 공존한다. 심청이 어려서 엄마를 잃고 앞 못보는 아버지를 위해 동냥을 다닌다거나 남경장사 선인에게 팔려가는 일련의 상황은 조선 후기 가난한 서민의 고난에 찬 삶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반면, 심청이 인당수에 빠졌다가 환생하여 송 천자 황후가 되고, 심봉사가 눈을 떠 광명을 되찾는다는 설정은 서민들의 꿈을 반영한 환상의 세계에 해당한다.
심청이 ‘인당수’에 빠지는 것은 현실세계에서는 죽음을 의미하지만, 심청이 새로운 존재로 거듭 난다는 점에서 '재생'과 '정화'라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심봉사가 거주하던 황주 '도화동'이나 장승상댁 부인이 거주한 '무릉촌' 또한 이상향을 상징한다.
황후가 된 후 심청이 맹인잔치를 배설하고 앞 못 보는 아버지가 눈을 뜨며 광명을 되찾은 것은 목숨까지 희생한 심청의 철저한 자기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나아가 만좌맹인이 눈을 뜨며 집단적으로 광명을 되찾는 것은 심청의 희생이 집단의 구원을 이루는 데까지 나아갔음을 뜻한다.
'심청'은 가난으로 고통받는 딸이자 죽음에서 환생하여 황후가 되고 광명을 되찾아 주었다는 점에서, 신화의 문맥과 현실 문맥 혹은 역사의 문맥을 두루 지닌 인물로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심청의 어떤 측면에 주목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변주와 새로운 작품세계의 구축이 가능하게 된다.

이번 국립창극단 창극 <심청>은 처음부터 끝까지 원작의 서사와 주요 소리 대목을 비교적 충실하게 차용하면서도, 고전 <심청가>가 지닌 환상적 요소를 완전히 소거하고 철저하게 현실 문맥에서 인물과 사건을 그려나갔다.
시대 배경을 현대로 설정하고 현실 맥락에서 작품을 해석하며, 전통적인 해석 시각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주제를 제시한 것이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원작의 서사나 소리 대목과 해당 장면을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극적 장면으로 연출한 무대가 언밸런스하면서도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며 전개되었다. 가령 이런 식이다. 심청이 인당수에 빠지는 대목'에서 해당 소리 대목을 그대로 부르면서, 극적으로는 심청이 바다에 빠진다기 보다는 성적으로 유린 당하고 학대 당하는 구렁텅이로 빠져드는 형상을 연출한 것이다.
공연은 객석 양 통로 사이로 수많은 어린 심청이들이 무대앞까지 등장했다가 퇴장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주인공 심청이 서사를 끌어가면서도 어린 심청 다수를 무대에 서게 함으로써, 심청의 삶과 고난이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집단적 문제임을 명시적으로 제시했다.
심청은 가난한 현실에서 동냥을 다니며 아버지를 봉양해야 했으며,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하고 뭇 남성들로 부터 폭력을 당하는 인물로 그려졌다.
가장 가까운 가족인 아버지 '심봉사'는 심청을 질곡에 빠뜨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으며, 뺑덕 어미는 곽씨 부인이 세상을 떠난 직후부터 무대에 등장하여 심봉사를 옭아매고 재산을 축내는 일에 골몰함으로써 심청의 고난을 심화하는 데 일조했다.
'장승상댁 부인'은 인자함은 온데 간데 없고 말로는 심청을 딸처럼 여긴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냉혈한의 이미지를 보이며 심청을 착취하는 듯한 인물로 그려졌다.
남경장사 선인들은 심청을 속박하며 마치 성적 유린을 하고 착취하는 듯한 인물들로 형상되었으며, 심청이 인당수에 빠진 것은 곧 고통의 구렁텅이에 빠진 것을 뜻했다.
사실 심청을 철저하게 현실문맥에서 해석한 시각은 기왕의 작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최인훈의 희곡 <달아 달아 밝은 달아>(1978)에서, 심청은 홍등가에 몸이 팔린 유곽의 여성으로 그려졌다. 낭만적, 환상적 낙관주의 대신 냉정하고 차가운 현실 논리에 입각하여 심청이 재탄생한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근래에 발간된 황석영의 소설 <심청>(2003)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소설에서 심청은 가난 때문에 중국으로 팔려가며 연화(蓮花)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 근대 전환기에 중국 - 대만 - 류쿠를 떠돌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가는 심청, 아니 렌카(蓮花)는 비록 몸을 팔고 온갖 곡절을 겪지만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인물로 형상화되었다.
창극 <심청>은 최인훈의 희곡이나 황석영의 소설과 궤를 같이 하면서도, 성적인 측면을 크게 부각하기 보다는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학대 당하는 우리 시대 하층 여성의 비애와 고난에 찬 삶을 핍진하게 그렸다.
인당수에 빠지는 대목을 결말에 다시 배치한 점 그리고 만좌맹인 눈뜨는 대목과 심청의 죽음을 통한 다중의 각성을 연결시킨 결말은 이 작품이 기존의 심청과 차별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에 해당한다.
결말에 앞서 '실수로 인한 자백'이라는 소제목이 붙은 장면에서 심봉사는 눈을 뜨게 되는데, 이어진 결말에서 눈을 뜬 심봉사가 마주 한 현실은 심청이 피칠갑을 한 채 인당수에 빠져 죽는 장면이었다.
'심청이 인당수 빠지는 대목'과 함께 심청은 트랩 아래로 사라지고, 죽은 어린 소녀들이 무대위에 서있는 상황에서 또 한 소녀가 불빛이 깜빡이는 전봇대에 올라가 불을 밝히고 아래로 추락하여 쓰러진다.
심봉사가 추락한 소녀를 끌어안고 살리려고 하는 동안, 인당수에 빠져 죽은 심청은 담배를 한대 피우고는 무대를 나서 극장 밖으로 나가는 것으로 공연은 끝이 났다.
심청이 무대를 떠나 현실 공간으로 나아간 것은 죽음 이후에나 비로소 심청의 영혼이 자유를 찾았음을 상징한 것일까.
그리고 전봇대에 올라가 불을 밝히고 추락한 소녀는 심청과 동일시된 인물로, 죽음을 감수하면서까지 불을 밝힌 행위는 수많은 '심청이들'의 희생적 삶이 세상을 각성시키고 변화시킨다는 의미로 읽혔다.
<심청가>의 주제를 '효'의 가치나 '구원과 희생의 관점'에서 파악한 전통적인 시각을 전복하고, 창극 <심청>은 가까운 이들에게 조차 버림받고 가난으로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우리 시대 수많은 심청이들의 이야기를 보여주었다.
형식면에서 창극 <심청>은 오페라와 매우 유사해 보였다. 배우들의 극적 동작보다 아리아에 무게 중심을 둔 오페라처럼, 배우들의 극적 동작은 최소화하고 소리 대목 중심으로 극을 전개했기 때문이다. 이는 아마도 연출과 극본을 맡은 '요나 김'이 독일에서 활동해 온 이력과 밀접한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한다.
현대사회를 시대배경으로 하면서 흑백 텔레비전이나 침대 등을 통해 심봉사의 경제적 처지가 바뀌었음을 보여준 것은 연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표현 수법이다.
카메라 기법을 차용하여 극적 장면을 시각적으로 부각한 것은 기존 창극에서는 볼 수 없었으나, 연극에서는 심심치 않게 사용하는 수법이다.
이렇게 볼 때 창극 <심청>은 형식 면에서 오페라나 현대연극의 표현수법을 활용하면서, 내용 면에서 전통 서사의 틀과 소리 대목을 그대로 가져오면서도 인물과 사건의 현대적 변용을 통해 전통적인 주제의식을 전복시키고 동시대성을 담보한 주제의식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고전은 시대를 넘어선 이월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고전이다. 창극 <심청>은 동시대성을 지닌 새로운 작품 세계를 통해, '심청'이 왜 '고전'인지를 새삼 또 다시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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