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장달오름
○3월14일
창극 <보허자>는 역사적 인물 안평대군과 세조(수양대군) 그리고 안견에 관한 서사를 극화한 작품이다. 여기에 안평대군의 딸 무심과 첩이었던 대어향이 얽혀들며 서사의 깊이를 더했다.
제목 <보허자(步虛子)>는 궁중 연례악으로 쓰인 관악합주곡을 가리킨 곡명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코러스 음악의 사설에서 "허허 보허 허허 능허~~"등으로 언급되었을뿐, '허공을 걷는자'라 하여 안평대군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사실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쓰려면 <步虛者>라고 하는게 정확한 표현이겠으나, 기존의 곡명을 가져와 중의적으로 사용했다.
안평대군은 세종의 셋째 아들이자 수양대군의 동생으로, 수양대군이 일으킨 계유정란 때 역모에 연루되어 강화도로 유배되었다가 교동에서 사약을 받고 36세 때 생을 마감한 비운의 주인공이다.
안평대군은 시서화에 두루 능했으며, 빼어난 예술적 재능을 지닌 인물로 명성이 드높았다. 자유로운 기질의 소유자였던 그는 문인들과 폭넓은 교유관계를 맺으며 당시 문화예술계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꿈에서 본 도원 장면을 화가 안견에게 이야기하여 그림으로 그리게 했으니, <몽유도원도>가 그것이다. 이번 공연에서 안견이 등장하고 <몽유도원도>가 서사 전개에서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안평대군이 거처했던 공간으로 무계정사(武溪精舍), 수성궁(壽城宮), 비해당(匪懈堂) 그리고 담당정(淡淡亭)' 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무계정사는 부암동에 있었으며, 수성궁은 인왕산 아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담담정은 마포 북쪽에 있는 누정이었다.
비해당은 안평대군이 세종대왕으로부터 하사받은 당호인 동시에 그가 몸담아 살던 거처를 의미한다. 세종은 '안평(安平)'지나치게 유약하다고 생각하여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라는 의미로 '비해당'이라는 당호를 하사했다고 한다. 창극에서 공간적 배경으로 제시된 수성궁, 비해당 등은 실제 안평대군이 거처했던 역사적 공간이기도 하다.
'대자암'은 세종의 동생인 성녕대군 이종이 13세에 요절하자, 태종이 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은 원찰이다. 참고로, 성녕대군은 후사가 없었기 때문에 안평대군이 그에게 입적되어 봉사손이 되었다. 고양 대자산에 있었다는 대자암은 당시 규모가 상당히 컸고, 소헌왕후, 세종, 문종을 위한 천도의례를 할 정도로 왕실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대자암이 안평대군과도 인연이 깊었다는 점이다. 이 사찰에 걸린 세 개의 편액(대자암, 해장전, 백화각)의 글씨를 안평대군이 직접 썼다는 기록도 있다.
대자암은 '몽유도원도'가 보관되었던 장소로 추정된 곳이기도 하다. 오늘날 '몽유도원도'는 일본 천리대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그 이동 경위가 명확하게 밝혀져 있지는 않다. 그런데 계유정난으로 안평대군이 사사되자 그의 소유물이 화를 입지 않도록 안전한 장소로 옮겼는데, 그 보관 장소가 '대자암'이었고 '몽유도원도'도 여기에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많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창극에서 대자암을 몽유도원도가 보관되어 있는 장소로 설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안평대군은 재주 있고 총명한 문사임에도 불구하고 역모에 연루되어 형인 수양대군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 때문인지 그를 소재로 한 소설이나 설화가 제법 전한다. 그 가운데 고전소설 <운영전>( <수성궁몽유록>이라고도 함)은 안평대군이 거처했던 '수성궁'에서 벌어진 궁녀 운영과 김진사의 애정담에 관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안평대군은 일체 여색을 탐하지 않고 매우 엄격한 법도로 궁녀들을 관장한 인물로 형상화 되었다.
그런데 <조선왕조실록>에서 산견되는 안평대군 관련 기록을 보면, 세간에 알려진 그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면모를 지닌 인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11살때 정씨와 혼인하여 2남 1녀를 두었다. 그런데 부인에게는 정을 주지 않고 기생과 사랑에 빠지는가 하면 양어머니와 상피 붙는 일도 있었다. 정치적 야심도 꽤 있었다. 한때 수양대군과 함께 불사(佛事)에 힘쓰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도 했으나, 계유정난 때 세조에 의해 유배되고 죽임까지 당하게 된 것은 세조가 그의 정치적 야심을 간파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창극 <보허자> 에 등장하는 안평대군의 딸 무심과 첩이었던 대어향은 실록에 기록된 단편적인 내용에서 착안점을 얻은 작가가 상상력을 더해 창조한 인물들이다. <조선왕조실록> 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전한다.
■'단종실록' 8권(단종 1년 10월 21일) : "의금부(義禁府)에서 아뢰기를, "이용의 첩과 이우직의 아내를 황보인 등의 처첩의 예에 의하여 외방의 관비(官婢)로 정하소서."하니, 그대로 따랐다."
■'단종실록' 9권(단종 1년 12월 2일) : 호조(戶曹)에 전지하기를,
"난신 김종서(金宗瑞)의 집을 일찍이 청성위(靑城尉) 심안의에게 내려 주었는데, 이제 김종서와 김승규의 집을 충훈사(忠勳司)에 주고, 민신의 집을 심안의에게 내려 주라. 그리고 또 '이용'의 큰 집 [大家]을 문종의 후궁에게 내려 주고, 이양의 집을 경숙 옹주에게 내려 주고, 조석강의 집을 신빈에게 내려 주고, 황귀존의 집을 혜빈(惠嬪)에게 내려 주고, 조수량의 집을 시녀 춘월에게 내려 주고, 조극관의 집을 시녀 소근에게 내려 주고, 윤처공의 집을 시녀 충개에게 내려 주고, 안완경의 집을 내시 복회에게 내려 주고, 허후의 집을 함귀에게 내려 주고, 윤위의 집을 박귀동에게 내려 주고, 지화의 집을 수산에게 내려 주고, 이우직(李友直)의 집을 계수에게 내려 주고, 이승윤의 집을 군자에게 내려 주고, 이보인의 집을 막동에게 내려 주고, 하석의 집을 중이에게 내려 주고, 박이령의 집을 조득림에게 내려 주고, 황보인의 새 집을 임어을운에게 내려 주고, 이현로의 집을 명통사에 내려 주고, 용의 첩 대어향(對御香)의 집을 금화 도감(禁火都監)에 내려 주고, 황보인의 집을 수강궁(壽康宮)이 이접소(移接所)로하라." 하였다.
'이용(李瑢)'은 안평대군의 본명이며, 이우직(李友直)은 안평대군 장남이다. 차남 이우량은 계유정란 직전 세상을 떠났으며, 장남이 아버지와 함께 사사된 것이다. 그리고 안평대군과 더불어 그의 첩 대어향(對御香) 또한 관비가 되었음을 알 수 있으나, 구체적인 삶의 궤적은 알려져 있지 않다. 안평대군의 딸에 관한 기록은 포함되어 있지 않은데, 창극에서 안평대군 딸로 등장한 '무심'은 장남 이우직의 딸로 안평대군의 손녀이다.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소재로 했다고 해서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창작해야 한 필요는 없다. 작가의 상상력으로 얼마든지 새로운 작품세계를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역사적 사실과 견주며 작품을 감상할때 깊이 있고 폭넓게 작품을 이해하게 되는 지점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창극 <보허자>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두가지이다. 먼저 갈등구조와 주제 문제....형제이자 정적이었던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은 기질이나 품성, 정치적 지향 등 여러 면에서 대비되는 면이 있어서, 사회역사적인 맥락에서 이들의 관계를 극적 갈등구조로 풀어낼 수 있는 여지가 많다. 그러나 작가 배삼식은 의도적으로 이런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어쩌면 진부하고 그렇고 그런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작가는 역사사회적 맥락이 아니라 인간의 실존적 유한함 혹은 무상함 등에 초점을 맞추어 서사를 풀어 나갔다. 그 과정에서 딸과 첩과 안견은 안평대군의 삶의 족적을 탐색하며 그의 존재 의미를 드러내는 역할을 담당했다.
언제부턴가 창극에서 도창을 두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이 공연에서 도창이 등장하여 극의 전개에 일조한 점도 주목할만하다. 도창자가 대자암 스님이라고 했는데, 단순히 해설이나 장면전환 등의 역할을 담당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극중 인물들을 위무하고 해원하는 역할까지 수행한 구원자적 인물로서의 이미지가 느껴졌다.
'나그네'는 안평 자신이자 '허공을 걷는자'로 표상된 안평의 이미지를 적확하게 구현한 캐릭터로, 실질적인 주인공으로 형상화 되었다. 작가는 안평대군의 무덤조차 남아있지 않은 현실에서 계유정난 당시 안평대군이 살아있었을 가능성을 전제한 것인지 모르겠다. 반면 수양대군은 혼령으로 표상되며 안평의 행동 반경을 일정하게 제약하는 존재로 형상화되었다. 수양이 혼령으로 등장한 것은 이 작품이 이미 죽음을 맞이한 존재들의 혼을 위무하는 '진혼'의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암시한 설정으로 생각된다. 수양대군은 안평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밖에 없었음을 토로하고 안평은 자신의 길을 갈 수밖에 없었음을 밝히며, 극은 허무의식과 무상감에 기반한 인간의 보편적이고 실존적인 비극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창극에서 서사가 내용이라면 음악은 형식이다. 내용이 형식을 규정한다면, 형식은 내용을 구체적 형상으로 드러내 보여준다. 창극 <보허자>는 서사성과 극성(劇性)을 중시한 기존의 창극과 달리, 서정성과 시적 분위기를 중시했다. 전반적으로 비애와 허무의 정서가 작품 전반을 지배했다. 끝 부분에서 코러스로 부른 망자의 넋을 위로하는듯한 불가조의 노래는 그러한 분위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린 압권이었다.
창극은 규범적인 형식 요건을 지닌 전형화된 장르라기보다는 여전히 새로운 실험 속에서 자기 정체성을 정립해 나가는 현재진행형의 장르이다. 이런 점에서 <보허자>는 기존의 음악어법과는 변별되는 표현 수법으로 서정적이면서 시적인 갈래로도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창극의 표현력을 확장했다고나 할까. 개인적으로 창극이 지닌 치열한 극성과 서사성을 중시하는 입장에서 아쉬움이 없지 않았으나, 새로운 길을 찾아나서는 실험정신을 소중하게 여기며 창극이 앞으로 보여줄 다양한 시도에 기대를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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