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일시 : 202년 11월 15일 ~11월 27일
ㅇ장소 : 물빛극장(지하철 4호선 혜화역 2번 출구에서 가깝다)
11월 15일 대학로 물빛극장에서 연극 <게릴라 씨어터>를 관람했다.
<게릴라 콘서트>는 브라질 아우구스또 보알의 '억압받는 자들을 위한 연극'에서 착상을 얻은 작품으로, '토론연극'의 형식을 취하며 연극이 삶과 의식을 바꾸고 나아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일찍이 독일의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연극이 민중을 계몽하고 현실변혁의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으며, 그 실천적인 작업으로 서사극 이론을 정립한바 있다. 아우구스또 보알은 '브라질의 브레히트'라 평가받는 인물로, 서사극에서 한발 더 나아가 관객과 배우, 무대와 현실 그리고 삶과 연극을 분리하지 않으려 했다.
무대는 모든 것들이 허용된다. 가령 "지금 정부군이 우리를 탄압한다"고 하면, 그 순간 무대는 탄압하고 탄압받는 공간이 된다. 그리고 관객(곧 배우)은 그 공간을 이용해 자신에게 가장 절실한 것과 억압된 내면을 표현함으로써, 지향점을 정확히 설정하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집단적이고 개인적인 성찰을 할 수 있다. 관객과 배우의 경계는 없다. 그리고 연극은 극적 환상(Dramatic illusion)과 카타르시스를 체험하는 공간이 아니라, 자신들이 처해 있는 문제적 현실에 정면으로 맞서고 자신들이 추구하는 세상을 만들 수 있는 도구가 되는 것이다. 연극 <게릴라 씨어터>는 아우구스토 보알이 추구하고 실천한, '억압받는 자들을 위한 연극'의 표현 수법을 그대로 수용했다고 할 수 있다.
게릴라는 전투와 전략전술에 능할것 같지만, 극중 인물들은 겁많고 순진하며, 어설프기조차하다. 비행기 한 번 본 적 없는 대장, 성질 못된 투덜이와 겁 많고 어리숙한 왕눈이, 사랑의 순정남 쌍커풀... 그런데 게릴라와 대치하는 정부군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사람 한 명 죽여보지 않은 수색대장, 징집되어 정부군이 된 주먹코, 금이빨 그리고 큰눈이가 그들이다. 왕눈이, 쌍커플, 이쁜이, 투덜이, 주먹코 등 신체나 성격의 특징을 이름으로 삼은 데서 알 수 있듯이, 등장인물은 개성적이라기 보다는 선남선녀요 필부필부로서의 전형성을 지닌 캐릭터로 형상화 되었다.
적과 대치한 절박한 상황에서 이들은 민중을 설득하고 자기정당성을 입증하기 스스로 배우가 되어 연극을 하는데, 연극은 게릴라와 정부군이 적대적인 관계가 아니라 동병상련의 처지임을 확인하는 지점으로 나아간다. 결국 게릴라든 정부군이든 서있는 자리만 다를 뿐 일상의 행복을 박탈당한 힘없는 인간군상이라는 점에서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며 결말을 맺는다.
무엇보다 연극은 재미있었다. 스피디한 전개와 탄탄한 구성, 허를 찌르는 반전이 있었다. 그리고 슬픔을 웃음으로 감싸 안아 표현함으로써 진한 페이소스를 자아냈다. 창작과 연출을 담당한 오세혁의 재기가 빛을 발했다고나 할까.
연극은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인 의미를 지니는 면도 있지만, '지금 여기'에서 그 작품이 어떤 맥락적 의미가 있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만일 군부독재정권을 적으로 규정하고 치열한 민주화항쟁을 벌였던 80년대에 이 작품이 공연되었다면, 아마 굉장히 심각하고 정치적인 함의를 지닌 불온한 연극으로 받아들여졌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아니, 알고 보면 적의 진영에 속한 인간들도 우리네와 똑같은 아픔과 슬픔을 지닌 존재라는 식의 결말을 보인 이 작품은 민주 진영으로부터 혹독한 비판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지나치게 안이하고 적을 타격할 수 있는 전투력을 고양하기는 커녕 무화시켰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정치적 민주화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는 21세기 '지금 여기'서 이 작품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어떤면에서는 IMP 이후 신자유주의의 영향으로 한국 사회에서 빈부격차는 더 벌어졌으며, 신분의 고착화도 심화되었다. 그럼에도 이제 집단의 공동선보다는 개인의 행복에 대한 관심이 비교할 수 없이 커졌다. 이런 시대상황에서 만일 <게릴라 씨어터>가 극의 갈등구조를 첨예하게 드러내고 적에 대한 치열한 대결의식을 드러냈다면? 나아가 적을 타도하고 게릴라가 승리하는 것으로 귀결지었다면? 그랬다면 그 천편일률의 진부함 그리고 낭만적이고 관념적인 민중 이해를 드러냈다며 관객의 외면을 받았을 것이다. 집단보다는 개인이 중요하고, 저마다 추구하는 가치와 의식의 편차가 매우 다양한 시대이므로 ...
7~80년대 마당극이 보인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전형성, 민중성, 현장성, 역동성을 중시하며, 선명한 갈등구조와 민중의 승리로 결말을 맺은 것이 그것이다.( 마당극 <소리굿 아구>가 민중의 패배로 결말을 맺었다는 점만으로도 주목받았던 시대였다.)
연극 <게릴라 씨어터>는 마당극이 지닌 역동성이나 현장성 등을 살리면서도 첨예한 갈등구조 대신 훈훈한 휴머니즘을 선택했다.
관람한 후 일종의 연극치료 체험을 한 기분이 든 것은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국가 권력의 횡포, 끝없는 자본의 욕망, 금수저 흙수저로 대표되는 빈부 격차의 심화 등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가 만만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현실과 맞서 내 삶을 가꾸어 나가며 행복을 지키는 것은 온전히 '내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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