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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극 <귀토>, 고전의 재해석 - 창극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

국악

by 간다르바 2022. 9. 11.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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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3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창극 <귀토>를 관람했다.

작중인물의 입을 통해 제시된 제목 <귀토>는 중의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별주부 자라와 토끼의 대결이라는 의미와 땅으로 돌아간다는 의미가 그것이다. 귀(龜)는 거북으로, 자라를 뜻하는 별(鱉)과 구별된다. 그리고 귀토(歸土)는 흙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므로 '죽음'을 의미한다고 보는게 자연스럽다. 그러므로 배우가 제목에 관해 설명한 내용은 사전적인 의미에 부합하지 않는 작위적인 것이다.

사실 작품에 관한 사전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귀토>는 <歸兎>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용궁갔다 다시 육지로 돌아온 토끼라는 뜻이며, 이 작품이 토끼에 무게 중심을 두었을 것이라고 지레 짐작한 것이다.

판소리 <수궁가>의 핵심은 토끼(힘없는 약자)와 자라(용왕을 정점으로 한 지배층의 구성원)의 지략 대결 그리고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목숨을 담보로 한 토끼의 절묘한 대응에서 찾을 수 있다.

수궁이 지배층의 세계라면 육지는 피지배층의 세계이다. 수궁에서 권력의 정점에 용왕이 있으며, 별주부는 그 신하이다. 별주부는 위험을 무릎쓰고 토끼 간을 구하기 위해 육지로 나올 정도로 충직한 신하다. 그렇지만 경직된 윤리의식의 소유자로, 상황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탓에 결국 토끼에게 휘둘린 용왕으로부터 배척 당하는 수모를 겪는다.

육지는 피지배층의 세계이지만, 그 안에도 위계가 있다. 정점에 호랑이가 있고, 토끼는 약자 중의 약자로 살아간다. 추위, 배고픔, 불, 물, 사냥꾼, 매, 초동 목수 등 토끼가 감당해야 할 어려움이 여덟가지나 되니, 이것이 이른바 '팔란'이다. 여기에 삼재가 더해져 평생 '삼재팔란'의 위험 속에 살아가야 하는 게 토끼의 운명이다.
별주부가 토끼를 유인할때, 잔뜩 겁을 주기 위해 나열한 게 바로 '팔란'이다. 육지에 있으면 언젠간 죽을 목숨이니,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누 수궁으로 가자고 한 것이다.

'용궁갔다 왔다'는 말이 있듯이, 토끼는 천신만고끝에 육지로 살아 돌아온다. 그런데 별주부가 토끼에게 속은 것을 알게 된 시점에서 각편에 따라 결말 양상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별주부가 토끼에게 용왕 낫게 하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하자, 토끼는 용궁에 암자라가 많으니 삶아서 주면 낫든지 말든지 모른다면서 악담을 퍼붓기도 하고, 똥을 주어 보내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절망한 별주부가 바위에 몸을 던져 자결하는 경우도 있으며, 용왕이 옥황상제에게 미천한 토끼가 왕을 속였으니 다시 토끼를 잡아달라며 원정함으로써 옥황상제가 노토(늙은 토끼)를 보내 용왕 병을 낫게 하는 경우도 있다. 약자 토끼를 지지하느냐 기존의 질서를 중시하느냐에 따라 결말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렇다 해도 어느 경우든 토끼의 위기는 지속되는데, 그게 토끼의 운명이다. 인간이 쳐놓은 그물에 걸리는가 하면, 독수리에게 잡혀 죽을뻔한 위기에 처하는 것이다. 그때마다 토끼는 기지를 뱔휘하여 위기를 벗어나며, <수궁가>는 행복한 결말로 끝난다.

창극 <귀토>는 판소리 <수궁가>를 바탕으로 했으면서도, 원전의 해체 및 재구성을 통해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했다. 새로운 인물을 설정했는가 하면, 서사의 골격 자체를 바꾸어놓음으로써 원전과 구별되는 주제의식을 구현한 것이다.

토부(<수궁가>의 주인공)와 토모(새롭게 설정된 존재)가 독수리와 사냥개에게 물려 죽고 그 자식인 토자와 토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본격적으로 작품이 전개되는데, 그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문제가 바로 '삼재팔란'이다.
토자는 부모의 죽음을 목격하며 육지에 거주하는 한 삼재팔란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는다. 판소리 <수궁가>에서는 별주부가 토끼를 유인하기 위해 협박하는 수단으로 활용한 것인데, 창극 <귀토>에서는 토끼 스스로 삼재팔란을 거론함으로써 자신들이 처한 현실을 정확히 자각하는 것으로 형상화 한 것이다.

육지에서는 불행한 운명을 피할 수 없다고 깨달은 토자가 새로운 세계를 꿈꾸게 되고 마침내 자발적으로 용궁을 찾아가는 것도 윈전을 비틀어 새롭게 설정한 것이다.

창극 <귀토>가 원전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한 핵심적인 양상은 용궁에 들어간 토자와 토녀가 위기에서 벗어나 다시 육지로 살아오는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미 토부에게 속은 바 있는 용왕은 토자가 어떤 변명을 할지 다 알고 있기에, 토자가 위기에서 벗어날 방도는 없어 보였다. 그 때 평소 용왕이 제거되는 것만이 수궁이 행복해진다고 믿는 주꾸미가 토끼에게 살아갈 방도를 알려준다. 내부고발자인 주꾸미는 수궁에서 고통받는 약자들과 연대하여 용왕을 물리칠 수 있다고 했는데 ,육지와 수궁의 약자가 연대하여 절대권력을 물리치는 혁명을 도모한 것이다.

꾸미는 지배층의 세계인 수궁 또한 약육강식의 수직적 지배 질서가 엄존하는 곳이며, 토끼와 마찬가지로 삼재팔란을 겪는 부류가 다수 존재하고 있음을 간파하고 있었다. 그래서 민심을 내세워 용왕으로 상징되는 절대권력을 무너뜨릴 수 있음을 확신했다.

이제 토끼의 차례. 용왕 앞에서 자신이 겪어야 하는 팔란을 하나 하나 늘어놓는데, 이에 공감하며 토끼에 동조하는 이가 자꾸 늘어나면서 마침내 용왕은 사면초가에 빠진다. 그리고 토끼를 죽게 해야 할 전기뱀장어가 태세를 전환하여 용왕을 감전시킴으로써 상황은 극적으로 반전된다. 토끼와 수궁의 민초들이 승리한 것이다. 죽은 줄 알았던 용왕이 깨어나 민초들 앞에 무릎 꿇고 참회하는 장면에는 행복한 결말을 지향하는 한국인의 보편적 심성 혹은 세계관이 담겨 있다.

이번 작품에서도 고선웅 연출가는 빼어난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무엇보다도 시대정신을 반영한 고전의 변용이나 재창조 작업의 완성도가 상당히 높았다. 군더더기 없는 대사와 서사 전개 그리고 극적 상황에 부합하는 소리 대목이 더해진 것도, 몰입도를 높이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이야기 등의 삽화를 통해 재미를 더하기도 했는데, 자칫 극적 긴장과 몰입을 느슨하게 할 수도 있어서 아슬아슬한 면이 없지는 않았다.

토자의 김준수, 별주부의 유태평양 등 국립창극단 배우들의 열연은 작품을 더욱 빛나게 했다. 경사진 무대가 주는 입체감과 적재적소에 활용한 영상, 매끄러운 장면 전환 등도 나무랄 데가 없었다. 강약을 적절히 조절하며 이면에 맞게 반주한 관현악 연주도 인상적이었다.

김성녀 예술감독 이후 국립창극단 작품세계가 다양해지고 표현수법이 세련된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유수정 예술감독 체제에서도 그러한 기조가 유지되면서 작품성과 대중성을 담보한 공연이 무대에 오르고 있다. 창극의 미래를 위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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