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일 한국문화의 집(KOUS)에서 김용우 콘서트 '이음'을 관람했다. 언제나처럼 그의 공연은 유쾌하고 기분이 좋다. 소리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유려한 말솜씨로 청중과 교감하며 신명나게 판을 짜 나갔다.
전통예술은 동시대인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소통의 예술’이 되었을 때 그 의의가 있다. 20세기까지만 해도 전통예술을 보존의 대상이라고 생각하거나 소수 매니아들의 전유물일 뿐 일반대중들이 함께 공감하기에는 무언가 거리감이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21세기에 들어와 이른바 '전통의 현대화 작업'이 이전 시대와 비할 수 없을만큼 활발하게 이루어지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금은 국악계 출신 스타도 많은 편이어서 송소희, 송가인, 이희문, 김준수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좀더 관심있는 사람들은 박애리(팝핀 현준과 결혼), 남상일, 이자람(예솔이로 알려진)도 알 것이다. 풍류대장과 같은 방송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스타로 발돋움하는 국악인들도 있다.
이런 현상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어서, 전통예술을 시대와 호흡하며 살아있는 예술로 가꾸어가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많은 예술가들의 피와 땀이 있었기에 가능해진 것이다.
김용우는 대중들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소리꾼이다. 무엇보다도 그는 끊임없이 전통소리를 연마하는 학습꾼이다. 그가 처음 배운 것은 피리이지만, 이후 관심의 영역을 넓히면서 가곡, 가사, 무악, 잡가, 경기소리, 서도소리, 남도들노래 등 전통가창예술을 다양하게 섭렵했다. 이양교, 조공례, 박병천, 오복녀, 이춘희 등과 같이 해당 분야의 최고 명창에게서 배운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김용배로부터 사물놀이도 익혔다.
주기적으로 콘서트를 열고 1996년 이후 지금까지 <지게소리>, <괴나리>, <모개비>, <질꼬냉이>, <노들강변>, <십이난간>, <이음>등 음반을 발표하면서 왕성한 활동을 보인 김용우는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일찍이 문화관광부 선정 "오늘의 젊은 예술가 상", KBS 국악대상 민요상 등 여러차례 굵직한 상을 받은바 있다.
우리음악은 지역에 따라 서로 구별되는 특질을 지니고 있어서 그 지역만이 지니고 있는 발성이나 음색이 있는데, ‘토리’가 바로 그것이다. 가령, 남도지역은 ‘육자배기 토리’, 경상도와 강원도 지역은 ‘메나리 토리’, 서울 경기 지역은 ‘경 토리’, 서도지역은 ‘수심가 토리’라고 일컫는다. 그렇기 때문에 육자배기 토리에 속하는 소리를 부르는 사람이 수심가 토리에 속하는 소리를 잘하기는 매우 어려우며, 그 반대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김용우는 정가와 민속악을 아우르고 경기소리, 서도소리, 남도소리를 모두 배우고 익혔다. 그의 성음은 극히 미려하고 단아한 ‘미성(美聲)’에 속한다. 목성음에 그늘이 지지 않았으면서도 세련되게 시김새를 구사하면서 전통소리의 맛을 잘 표현해 낸다. 어쩌면 그가 각 지역의 소리를 모두 소화해 내면서 그만의 소리세계를 정립해 나갈 수 있는 이유도 그의 타고난 성음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전통 소리를 배우고 익히는 데 머물지 않고 전통에 기반하면서 현대적 감각에 맞는 새로운 소리를 개발하기 위해 쉬지 않고 노력하고 있다. 전통에 현대의 옷을 입혀 대중들이 보다 손쉽고 재미있게 우리 소리의 맛과 멋을 맛볼 수 있게 하기 위한 그의 실천적 노력은 1993년 슬기둥(전통의 현대화를 표방하며 1985년 결성된 국악실내악단)멤버로 활동한 이래 이번 콘서트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김용우는 판을 끌어 나가는 데에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느린 곡과 빠른 곡을 적절하게 배치하여, 청중을 감상자의 위치에만 있게 했다가 무대와 하나가 되어 함께 노래 부르도록 분위기를 흥겹게 몰아가기도 한다. 말솜씨도 유려하여, 노래 중간 중간 청중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더없이 편안하며 감미롭기까지 하다.
흔히 김용우를 소개할 때 ‘소리꾼’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일반적으로 우리 음악에서는 ‘소리’와 ‘노래’를 구분한다. 민요나 판소리와 같은 민속악을 ‘소리’라고 하는 데 비해, 가곡이나 시조와 같이 정가에 속하는 음악을 ‘노래’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민요나 판소리를 부르는 이를 ‘소리꾼’이라 하고, 가곡을 부르는 이는 가객(歌客)이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적인 용례이다. 물론 명칭이나 용어는 그 내포와 외연이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소리꾼’이라 지칭한다고 해서 크게 어긋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김용우는 전래되는 민요, 가사, 잡가 등 전통가창예술 뿐만 아니라 한국적 정서가 담긴 선율로 창작한 국악작품을 콘서트 무대에 올림으로써, 우리 소리도 대중예술이 소통되는 공간에서 그와 같은 방식으로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점을 실천적으로 보여준 대표적인 소리꾼이다. 김용우는 의상에서부터 소품에 이르기까지 세세하게 신경을 쓰며 청중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무대에서는 우리 악기와 서양 악기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며 신명을 돋운다. 이러한 그의 콘서트 장면은 더 이상 그만의 전유물이 아니며 익숙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 되었다. 관점에 따라서는 김용우를 ‘소리꾼’이라고 해도 좋고 ‘대중가수’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는 옛 소리를 충실히 배우고 익혔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의미의 ‘소리꾼’과 상통한다. 또한 잡가나 판소리를 부르던 소리꾼들은 소리광대, 삼패, 사계축 등과 같은 하층전문 예인집단으로서 당대의 대중가수였다고 할 수도 있을 터, 그렇다면 김용우는 우리 시대의 대중가수라고도 할 수 있다. 다만 김용우가 부른 일련의 노래와 전통가창예술과의 거리 그리고 일반 대중가수들이 부르는 ‘대중가요’와의 거리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따져 볼 필요가 있다고 보는데, 이는 음악의 본질적 차이를 구명하는 문제와 맞물려 있기 때문에 쉽게 답하기는 어려운 과제이다.
분명한 사실은, 시대가 바뀌었고, 대중의 감수성이 바뀌었고, 문화의 전승 환경이 바뀌었고,이에 따라 예술인들의 존립 방식도 바뀌었다는 점이다. 전통사회에서 민요와 같은 생활예술은 ‘일과 노래’ 혹은 ‘삶과 노래’가 분리되지 않은 채 전승되었으며, 판소리와 같은 전문예술은 패트론의 후원에 힘입어 존립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는 일과 노래, 가창자와 향유자, 예술 생산과 소비의 분리가 심화되었다. 농경사회의 산물인 <논매기 소리>나 <모심기 소리>와 같은 노동요가 산업사회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생각해 보자. 농촌 지역에서 여전히 그 기능을 일정 부분 유지하면서 전승될 가능성도 없지는 않으나, 기능과 분리된 채 노래 자체의 흥겨움을 위해 부르는 유희요로 전환되거나 아니면 전문 창자에 의해 다듬어져서 무대소리로 불려질 가능성이 훨씬 크다. 그렇지 않으면 소멸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을 것이므로...
그래서 보존의 가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생적 전승기반이 취약한 문화예술에 대해서는 무형문화재제도를 통해 보호하는데, 제도적 장치에 의한 복원, 보존, 전승은 우리문화예술의 주요한 특질인 역동성, 현장성, 즉흥성, 신명성 등을 약화시키고 문화예술의 고착화, 양식화, 정형화를 가속화 시킨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전통이 아무리 가치 있는 것이라 해도 그것이 ‘소통’되지 않고 박제화 되었을 때, 그것은 현재적 의의를 상실한 죽은 예술이 될 것이다. 김용우가 행하고 있는 작업의 의의는 자기 방식으로 전통을 살리는 길을 끊임없이 모색하고 실천한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실험적인 작업이 대중들에게 호소력을 갖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전통에 대한 학습이 철저하게 뒷받침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음악의 본질 혹은 정체성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으며 우리 음악을 내용으로 하는 공연에 걸맞는 형식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은 계속될 수밖에 없는데, 김용우의 공연은 이러한 근본적인 고민을 진작부터 우리에게 제기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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