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전쯤 플라멩코 공연을 처음 보았을 때, 그 안에 담긴 '한'과 '신명' 그리고 그들 방식의 '추임새'를 보며 전율을 느낀 적이 있다. 그리고 우리 문화와 닮은 데가 무척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후 플라멩코에 매력을 느껴 짧은 기간이나마 배워보기도 하고, 여러 차례 공연을 관람했다. 2000년대 이후 판소리와 플라멩코의 콜라보레이션 공연도 꾸준히 시도되고 있다.
판소리와 플라멩코는 각기 한국과 스페인을 대표하는 전통공연예술로,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준의 예술성을 인정받아 한국의 판소리는 2003년 그리고 스페인의 플라멩코는 2011년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바 있다. 두 예술 갈래 사이에 역사적 전개과정 속에서 영향을 주고 받은 흔적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갈래는 공연예술적 측면에서 서로 견주어 볼만한 요소들을 많이 지니고 있다. 코로나 상황 직전까지만 해도 판소리와 플라멩코가 한 자리에서 공연되는 사례가 비교적 빈번하게 시도되었다.
판소리는 광대의 예술이고, 플라멩코는 집시의 예술이다. 광대와 집시는 안정된 정착민의 삶과는 거리가 먼, 유랑민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두 예술 갈래 사이에 공통 분모가 있다면 그것은 일차적으로 전승 주체가 지니고 있는 이러한 공통점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리라 생각한다. 전승 주체가 지니고 있는 경제적․신분적 특징 외에, 두 공연예술은 민속예술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도 공통점이 있다. 민속예술로서의 구비전승적 특질로 인해, 플라멩코는 악보보다는 구전을 통해 전승되는 비중이 크고 중요하다. 이는 구전심수(口傳心授)로 전승되는 판소리의 그것과 매우 닮아 있는 것이다.
판소리와 플라멩코는 일정한 역사적 전변 과정을 거쳐 오늘날과 같은 양식적 정립에 이르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플라멩코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발달한 공연예술로, 15세기 중엽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으로 흘러들어온 집시들의 문화와 이 지역을 점령했던 아랍계인 모르족의 문화를 기반으로 하여 형성되고 발전해 왔다. 유랑민으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던 집시가 스페인에 정착하면서, 스페인 고유의 민속예술에 그들의 독특한 멋과 양식을 더하여 독자적인 예술 양식을 정립해 나갔던 것이다. 19세기 초까지 플라멩코는 주로 집시들에 의해 전승되었다. 오늘날에는 기타 반주가 매우 일반적인 형식으로 자리잡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기타를 사용하는 것이 그리 일반적이지는 않았다. 대신 손뼉이나 손가락 울리기, 매김 소리 등을 동반하면서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는 방식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이러한 방식은 기타 반주가 일반화된 오늘날에도 지속되고 있으며, 플라멩코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는 주요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19세기 후반 이후, 집시들의 전유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플라멩코는 이전과 구별되는 새로운 양식적 정립을 보이면서 이른바 월드뮤직으로 거듭 나게 되었다. 1890년 파리박람회에서 플라멩코가 공연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끌게 되었는데, 이를 계기로 드뷔시는 ‘이베리아’라는 곡을 만들었다고 전한다. 20세기에 활동했던 유명한 기타 연주자 파코 데 루치아(1947~2014)는 플라멩코가 월드뮤직으로 발전해 나가는 데 있어 크게 기여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오늘날의 플라멩코의 연주 방식 또한 과거와 다른 점이 많다. cajon(북처럼 생긴 눕혀놓고 올라앉아 연주하는 타악기), 통기타, 전자기타, 신디사이저(전자합성음 건반악기)나 드럼 등 다양한 악기가 동반된다는 점도 과거와 구별되는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판소리는 17세기 중․후반 무렵에 서민층을 기반으로 하여 성립했다고 보는 것이 통설이다. 초기 판소리가 어떤 형태였는지에 대해 정확히 말하기는 어려우나, 여러 우희 종목 가운데 하나로 연행되다가 후대로 오면서 독자적인 공연 양식으로 정립된 것으로 보인다. 처음에는 재담이 비교적 큰 비중을 차지했으며, 장단도 오늘날과는 달리 비교적 단출한 형태로 존재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다가 후대로 오면서 더늠의 축적을 통한 사설의 풍부화와 다양한 음악 어법의 개발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가운데 음악적 요소의 비중이 점차 확대되어 왔다. ‘판소리는 성음놀음’이라는 말도 그러한 사정을 반영한 표현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소리꾼이 고수의 북 반주에 맞추어 긴 이야기를 장단과 선율에 얹어 부르는 공연 방식은 별다른 변화 없이 지속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에도 전통 판소리 공연에서는 이러한 방식이 이어지고 있는데, 창작판소리 혹은 새로운 무대를 지향하는 경우 북 외에도 다양한 악기 반주가 동반되거나 극적 표현의 비중이 크게 부각되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플라멩코는 기타 반주와 노래 그리고 춤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이 세 구성요소의 결합 방식에 따라 공연 양식이 구분된다. 칸테(노래)와 바일레(춤)와 토케(기타의 반주)가 어우러져 공연될 때도 있지만, 노래·기타 없이 단지 리듬만으로 춤을 추는 수도 있다. 춤 자체가 음악성을 갖추고 있는 것도 특징이며, 춤을 추면서 피토스(손가락으로 소리내기)·팔마스(손뼉치며 박자 맞추기)·사파테아도(발구르기로 장단 맞추기) 등을 하기도 한다. 각 양식의 연주자를 가리키는 용어도 Tocaor(기타 연주자), Cantaor(남성가수), Cantaora(여성가수), Bailaor(남성무용수), Bailaora(여성무용수) 등으로 세분되어 있다.
플라멩코의 이러한 공연예술적 특징은 판소리와 여러 면에서 대비되는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판소리에는 춤과 기타가 동반되지 않는다. 물론 작중 인물의 특성에 따라 매우 제한적으로 소리꾼이 춤을 추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플라멩코에서 춤이 독자적인 요소로 기능하기도 한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그 비중이 미미하다. 판소리는 기본적으로 노래가 중심이며 이야기와 더불어 부분적으로 연극적인 표현이 가미된 공연예술이다.
플라멩코의 대표적인 갈래로, Soleares, Cantinas, Bulerias, Siguiliya, Tangos, Tientos, Malaguena, Fandango 등이 있다. 이들 각 장르는 노래로 구분되며, 느낌 또한 다르다. 가령, 칸테 혼도 또는 칸테 그란데(폴로·솔레아레스 등)는 길고 무거운 내용으로 되어 있으며, 칸테 치꼬(알레그리아스·불레리아스 등)는 신나는 분위기로 쾌활·경쾌하다. 그리고 칸테 인 테르메디오(티엔토·말라게냐 등), 칸테 히타노·칸테 안달루스 등은 중간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플라멩코의 이러한 갈래 구분에 상응하는 현상은 판소리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판소리는 한 작품 안에서도 슬픔과 기쁨이 교직․공존한다. 소리꾼에 따라 전체적으로 애절하고 슬픈 느낌을 더 잘 표현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이른바 유파, 즉 제(制)에 따라 구별된다. 이러한 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작품의 길이와 갈래의 속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판소리는 작품의 길이가 길며, 내용에 따라 극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한 작품 안에서도 슬픔과 기쁨이 공존할 수 있다. 이에 비해 플라멩코는 비교적 길이가 짧으며 서정성이 강하기 때문에, 전체적인 분위기에 따라 작품의 구분이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플라멩코에는 플라멩코 기타 반주가 따르며, 바일레 플라멩코에는 캐스터네츠가 많이 쓰인다. 기타 연주와 노래 그리고 춤으로 구성되는 플라멩코의 경우, 노래 가사인 letra, 기타 연주 Falseta, Silencio, Tremolo 그리고 춤 Escobilla는 상호 유기적 연관을 지니고 있다. 가령, 노래를 할 때는 춤을 조용히 추며, 노래 가사가 끝나면 격정적인 춤을 추는 식으로 짜여져 있는 것이다. 기타 반주가 시작되면 칸타오르는 그에 맞추어 청을 잡는다. 무용수는 박자를 타며 강한 동작은 하지 않고 걷기 시작한다. 깐따오르가 한구절을 부르고 숨을 돌리는 잠깐의 찰나에 무용수와 기타는 강한 테크닉을 구사한다. 노래가 1절에서 2절 정도 끝나면 기타의 솔로 연주가 이어진다. 이때 기타리스트는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발휘하며, 깐떼는 일정한 리듬을 박수로 치며 추임새를 넣어주고 무용수는 아름다운 선율에 어울리는 춤을 춘다. 무용수는 자신만의 시간이 주어지면 자신의 기량을 발휘하여 춤을 추며, 깐떼는 추임새를 하고 일정한 리듬의 박수를 치며 무용수를 돕는다. 그리고 기타 연주자는 무용수의 발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연주를 이어간다.
판소리와 플라멩코의 가장 큰 변별적 특징 가운데 하나는, 판소리는 연극성과 서사성이 강한 데 비해 플라멩코는 서정성이 강하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판소리는 아니리와 창이 교체 반복되면서 진행되는 데 비해, 플라멩코에서는 ‘아니리’에 해당하는 구성 요소가 없다. 판소리는 최대 8시간 동안 공연할 수 있지만, 플라멩코는 10분 내외에 걸쳐 노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플라멩코에서 보이는 일반적인 주제는 사랑, 죽음, 운명, 도덕, 종교, 사회적 지위, 유머, 인간, 명예, 성신(星辰) 그리고 초자연적 힘 등에 관한 것이다. 플라멩코 가사는 정형화되어 있기 보다는 어느 정도의 즉흥적인 요소가 있으며, 칸타오르(노래하는 사람)의 삶 혹은 경험과 관련이 있는 내용이 포함되기도 한다. 판소리에서도 즉흥적 요소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나 매우 제한적이며, 작품 또한 전승되어 오는 것이기 때문에 특정 소리꾼의 삶이나 경험과 직접 관련 있는 내용은 포함하고 있지 않다.
판소리는 한 사람의 소리꾼이 고수의 북 반주에 맞추어 소리하는 데 비해, 플라멩코는 보컬, 기타 연주자, 무용수가 어우러져 공연할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한 차이라 할 수 있다.
반면에, 판소리와 플라멩코의 가장 중요한 공통점 가운데 하나는 무대와 객석의 교감 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판소리의 ‘추임새’와 플라멩코의 ‘할레오’가 바로 그것이다. 판소리에서 추임새는 무대와 객석의 소통을 보여주는 문화적 현상으로서의 의미가 매우 크다. 판소리에서 사용되는 대표적인 추임새로, “얼씨구”, “으이”, “좋다”, “아먼”, “잘한다”, “그러지” 등이 있다. 추임새를 할 수 있는 위치는 암묵적으로 정해져 있다. 판소리 사설의 내용 혹은 소리판 현장의 분위기에 맞게 추임새를 구사하는 것도 필요하다. 소리가 슬플 때는 추임새도 이에 맞춰 슬픈 어조로. 즐거운 대목에서는 힘차고 흥겨운 어조로 추임새를 하는 것이 이면에 맞기 때문이다.
추임새를 한국에서만 보이는 고유한 문화라고 이해하는 시각이 더러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그 단적인 예로, 플라멩코의 Jaleo(할레오)가 있기 때문이다. Jaleo(할레오)는 플라멩코의 추임새라 할 수 있다. ‘올레 (Ole)’(잘한다, 좋다.), ‘에소 에스(Eso es)’(그거야~~, 그렇지~~), ‘무이비엔(Mui bien)’(정말 좋아요, 아주 훌륭해요, 최고예요.) 등이 대표적이다. 노래 혹은 춤에 대한 정서적 반응이라는 점에서, Jaleo(할레오)는 판소리의 추임새와 정확하게 조응된다.
판소리에서 극적 표현 또한 중요한데, 이를 발림 혹은 너름새라고 한다. 일찍이 김세종 명창은 발림의 중요성에 대해서 구체적인 예를 들어가며 강조한 바 있다. “판소리 발림을 극적인 내용과 같게 해야 하며, 얼굴 표정과 몸의 모든 동작이 극적인 내용 및 음악과 맞아야 한다. 예를 들면, 우는 장면도 상황에 따라 달리 해야 하며, “‘죽장(竹杖) 짚고 망혜(芒鞋) 신고 천리강산 들어가니’를 부를 때에는 앉았다가 쪼그리고 쪼그렸다가 서서히 몸을 일으키면서 손으로 한쪽을 지시하며 천리 만리로 들어가는 동작을 형용해야 하는 것이다.”고 지적했던 것이다. 플라멩코는 서정성이 매우 강한 양식이어서 판소리에 비해 극적인 표현 영역이 넓다고 보기는 어려우나, 상황에 맞게 표정을 짓는 등 일정한 극적 표현 방식이 수반되기도 한다. ‘늙은 얼굴’이라는 의미로 표정을 가리키는 ‘까라비에하(Caravieja)’가 대표적이다.
판소리는 다양한 목 성음을 통해 사설의 상황을 표현하며, 지나치게 맑거나 탁하지 않은 성음인 ‘수리성’을 최고의 목으로 간주한다. 플라멩코 성음 또한 판소리와 매우 흡사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른바 듣기 좋고 아름다운 노래를 지향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며, 거친 성음에 가까운 특성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성음이 곱거나 예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성이나 두성을 사용하지 않는 점, 떠는 음이 많으며 한 음절을 길게 뻗어서 시김새 같은 장식음을 만드는 등 특유의 꺾는 창법을 구사하는 경우가 확인되는 점 등도 판소리와 상통하는 특징이다.
플라멩코 노래를 ‘칸테 혼도(Cante Jondo)’라 하는데, 칸테 혼도(Cante jondo)는 ‘깊은 노래’라는 의미이다. 기타 반주로 인생의 심각한 감정을 노래하고, 몹시 어둡고 깊은 슬픔을 표현하기 때문에, 이러한 명명이 생겨나게 된 것으로 보인다. 플라멩코는 삶의 애환을 절규하듯 애절하게 표현한다. 그렇다고 해서 슬픈 느낌의 노래만 있는것은 아니다. 사랑의 슬픔이나 고뇌를 표현한 cante jondo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경쾌하고 유쾌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칸테 치코(cante chico)도 있다. 플라멩코에 의해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나 연주자 무용수 그리고 관객에게 일어날 수 있는 영혼의 폭발을 경험하는 것을 ‘두엔데(Duende)’라고 하는데, 이는 판소리에서도 체험할 수 있는 정서적 공감의 측면이라는 점에서 주목할만한 특질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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