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4일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점에서 열린 영화 <시간을 꿈꾸는소녀> 시사회에 다녀왔다. 무당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로, 흥미롭게 관람했다. 개봉(1월 11일)전이므로 줄거리 소개는 생략하며, 한국 영화와 무속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무속을 소재로 한 영화는 상당히 많은 편이다. 현재까지 확인된 가장 오래된 작품은 1933년작 <밝아가는 인생>이며, 이후 현재까지 꾸준히 무속을 소재로 한 영화가 제작되고 있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도 무속을 소재로 한 영화가 지속적으로 제작되었는데, <오구(2003년)>, <박수건달(2013년)>, <극비수사(2015년)>, <검은 사제들(2015년)>, <곡성(2016년)>, <신과 함께(2018년)>, <방법(2020년)>, <대무가(2022년)>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앞에서 제시한 영화에서 무속이 영화 서사 진행의 중심에 있으면서 한국인의 보편적 심성 혹은 세계관을 보여주는 문화자산으로 활용된 경우는 별로 없으며, 사건 전개 과정에서 서사의 개연성을 확보하거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한 소재로 채택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 영화와 달리, 다큐멘터리를 표방하며, 무속과 무당의 삶을 집중적으로 조망한 영화도 있다. 전국을 강신무권과 세습무권으로 나누어 무속의 전승 상황과 무속의 문화적 의의를 조망한 <영매(2002년)>, 이해경 만신을 다룬 <사이에서(2006년)>, 김금화 만신을 다룬 <만신(2014년)> 등이 대표적인데, 모두 독립영화로 제작된 점이 특징이다.
이 가운데 '산자와 죽은 자의 화해'라는 부제를 단 영화 <영매>는 박기복 감독이 1년 6개월 이상 전국 주요 굿판을 직접 찾아다니며 영상에 담은 작품으로, 무속에 담긴 문화적 의의와 가치를 감동적으로 담아낸 수작이라고 생각한다.
무속을 미신으로 폄하하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상생과 공동체적 세계관은 민족의 보편적 특질로 볼 수 있는 정신적 가치이며, 오랜 세월 치유의 역할을 감당한데다 그 자체가 퍼포먼스요 전통예술의 자양분 역할을 해온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무당은 어떤가. 그들은 전통사회에서 의사이자 심리 상담사이자 엔터테이너였다. 제정일치 사회에서는 사제가 곧 왕이었지만, 오랜 세월 천대받아온 그들의 삶은 특별하고 눈물겨운 데가 있다. '신기'를 지닌 무당이 얼마나 용하고 영험한가에 대한 세속적 기대감도 무당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을 보이는 중요한 요인이다.
영화에서 무당의 삶에 주목한 이유도 이런 맥락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무당에 초점을 맞춘 다큐멘터리 영화는 리얼리티와 휴머니즘에 바탕하면서 한 인간의 삶을 조망했다는 점에서, 공포감을 조성하거나 사건 해결을 위해 무당을 활용한 영화와 차별된다.
우리는 과학의 시대를 살고 있으나 여전히 초월적 힘에 의지하여 운명을 알고 싶어하거나 욕망하는 바를 성취하고 싶어하는데, 이는 인간의 본원적 모습일지도 모른다.
1월 11일 개봉 예정인 영화 <시간을 꿈꾸는 소녀>는 진작에 언론에 노출되어 주목받은 무녀 권수진의 삶을 담은 작품으로, 박혁지 감독의 장인정신과 집념이 돋보인 다큐멘터리 영화라고 생각한다.
다만 무속에서 무당이 되는 과정에서 문서 등을 학습하는 과정이 매우 중요한데, 사승관계나 학습에 관한 내용이 전혀 담겨 있지 않아서 아쉬웠다.
영화 안에 담긴 권수진의 굿은 충청권 지방을 중심으로 전승된 독경(설경)으로 보이는데, 신당과 몸주신이 있고 신기가 있는걸로 보아 귄수진은 강신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감독은, 무속이 지닌 이런 본질적인 측면보다는 무당의 인간적인 고뇌에 초점을 맞춘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영화는 스릴이나 극적 긴장감과는 거리가 멀지만, 신과 인간의 사이에서 괴로워하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면서도 올곧게 자기 삶을 찾아가려는 한 인간의 삶을 진솔하게 펼쳐낸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영화 <가재가 노래하는 곳> (0) | 2022.11.11 |
---|---|
영화 <스펜서>, 진정한 삶의 가치와 행복은? 나를 찾아가는 험난한 과정... (0) | 2022.03.25 |
영화 <컨빅션(Conviction)>, 진실을 밝히는 지난한 과정. 믿음과 절망 사이에서... (0) | 2021.12.15 |
<몽상가들>, 몽상과 현실 사이에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다 (2) | 2021.11.16 |
<마틸다: 황제의 연인(원제: Mathilde)>, 치명적인 팜므 파탈! (2) | 2021.1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