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클림트> - 그 영혼의 시간 속으로 동행하다
- 장소: 서울숲 갤러리아포레G층
- 공연기간: 2021.10.12 ~2022.03.01
- 공연시간: 100분

1월 2일 뮤지컬 <클림트>를 관람했다. 몇년 전 오스트리아 벨베데레 미술관에서 클림트의 그림 <키스>를 본 적이 있다. 그리고 클림트를 <키스>의 작가로만 알고 있었을 뿐, 그의 삶이나 작품 세계 등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뮤지컬을 통해 예술가로서 클림트의 삶의 한 단면과 그가 추구했던 예술세계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서울숲 갤러리아포레는 전문적인 공연장이 아니어서인지, 음향시설이나 무대 장치 등에 아쉬움이 없지는 않았다. 빔프로젝트를 활용하여 입체감을 구현하고자 했으나, 공간 변화도 거의 없이 다분히 평면적으로 극이 진행되었다.
그렇지만 기대 이상으로 작품의 완성도가 있어서, 공연 내내 작중 상황에 몰입하며 감상했다.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는 살아움직였으며, 잘짜여진 서사와 갈등구조 속에서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배우들의 연기력이나 음악성 또한 일정한 수준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빈 분리파, 상징주의 , 아르누보, 여성, 에로티시즘... 클림트에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말들이다. 클림트가 반아카데미적 사조와 분리파에 속하게 된 것은 그가 창의성을 중시한 치열한 작가정신의 소유자임을 보여준다.
클림트는 우뚝한 화가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맞게 되는데, 오스트리아 빈 대학의 대강당에 철학, 의학, 법학에 관한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이 그것이다. 기존의 권위를 존중하면서 대학측이 원하는 방향으로 그림을 그릴 수도 있는 상황에서, 클림트는 투철한 작가정신을 발휘하며 대학과 학문의 성취를 조롱하는 그림을 그린다.
철학은 한 번도 제대로 통찰한 적이 없다. 그래서 철학은 정의할 수 없다.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 그것이 바로 의학의 한계이다. 법은 지배권력의 통제 하에서 구현되므로 힘의 논리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때 언론인 기자 크라우스는 클림트가 부각되는 것을 못마땅해하며 어떻게 해서든지 그를 사회적으로 추락시키려고 한다. 클림트가 자신의 딸을 시험에서 떨어뜨렸다는 이유에서이다. 사적인 감정을 공적인 영역에 끌어들여 클림트를 괴롭히는 크라우스는 악인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내며 작품이 끝나는 순간까지 극적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클림트와 뗄 수 없는 꼬리표인 '여성'과 '에로티시즘' 또한 작품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클림트의 여인으로 에밀리와 아델레가 등장하는데, 이들은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인물들이다. 생전에 클림트는 결혼을 하지 않았으나, 여러 여성과 연애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식이 셋이었으며, 클림트 사후 클림트의 여인으로 14명이 나섰다는 이야기도 있다.
클림트는 작업실에서 그림 그리는 일에만 몰두할 정도로 치열하게 살았다고 하나, 세간에서 클림트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뮤지컬에서는 클림트의 유일한 애인으로 알려진 에밀리와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달라는 귀부인 아델레가 등장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두 여성 모두 클림트를 사랑하고 지지한다는 점이다. 에밀리는 클림트에게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으며, 아델레는 클림트에게 끝까지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한다. 클림트 또한 두 여성을 진심으로 대하며 각별한 관계를 이어간다.
클림트의 친구이자 함께 그림을 그리는 프란츠는 크라우스의 은밀한 제안을 수용하며 클림트를 파멸시키고자 하나, 극심한 내적 갈등 끝에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화가로서 부와 명예를 얻고자 하는 세속적 욕망에 충실하면서도 인간적인 고뇌를 끝내 떨치지 못하고 비극적 결말을 선택한 것이다.
클림트의 제자 쉴레 또한 역사적 실존인물로, 극중에서 스승 클림트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끝까지 지키는 의리 있는 제자로 그려졌다. 크라우스가 자신의 인터뷰 내용을 왜곡하여 클림트에게 타격을 준 행위에 대해서도 분노를 드러내며 항의할 정도로, 쉴레는 괜찮은 캐릭터였다.
작가로서 기존 질서와 제도권에 대항하여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를 실천하고자 한 클림트의 치열한 삶과 고뇌 그리고 사랑... 클림트를 존경하며 끝까지 응원한 에밀리와 아델레...진실을 곡해하면서까지 클림트를 파멸시키려고 안간힘 쓴 크라우스의 파렴치함...
모처럼, 시대정신을 호흡하며 치열하게 살았던 '한 인간의 영혼의 시간 속으로' 동행한 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