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글

단종이 잠들어 있는 장릉을 다녀오다

간다르바 2021. 12. 14.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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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1일 강원도 영월에 있는 단종 왕릉 장릉에 다녀왔다. 12살의 나이에 왕위에 오른 단종은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넘겨 주고 영월로 귀양 왔다가, 17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비운의 왕 단종 왕릉을 둘러보면서, 인간의 운명은 참으로 알 수 없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박충원을 기려 1973년 건립한 낙촌비각(駱村碑閣).

박충원은 중종 26년(1531년) 문과에 급제했으며, 사후 문경공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박충원은 중종 36년(1541년) 영월군수로 부임하여, 방치되어 있던 노산묘를 봉축하고 전물을 갖추어 제사지냈다. 박충원이 영월군수로 부임하고 단종 왕릉을 봉축하고 제를 드리게 된 사연이 이야기로 전한다.

종 사후 이상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는데, 영월에 부임하는 사또마다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죽어나갔다. 실록에는 영월 사또 3명이 잇달아 죽었다고 했으며, <육신록>에는 무려 여덟 명이 죽었다고 되어 있다. 그래서 아무도 영월사또로 오려고 하지 않았는데, 박충원이 발령을 자청했다. 그가 부임한 첫날 밤 꿈에, 단종이 용상에 오르는데 목에 활 시위가 둘러 있었고, 그 아래에 사육신이 시위하고 있었다. 박충원이 머리를 조아리자, 단종은 "내 시신을 엄흥도가 처리했으나 지형이 아주 습하고 소나무 뿌리가 침노하니, 개장하는 일을 태만히 하지 말라"고 했다. 이에 박충원이 시신을 수소문 하여 찾아 분묘를 수리하고 제문을 지어 제사지내 주었다는 것이다.

단종이 죽임을 당하던 날, 마을 사람 하나가 일이 있어 관에 들어가는데, 노산군(단종)이 백마를 타고 동쪽 계곡으로 달려 올라갔다. 그 백성이 “어디로 가시는 길입니까” 하고 물었더니, 노산군이 돌아다보며 말하기를, “태백산으로 놀러간다.” 했다. 백성이 절하며 보내고 관에 들어가니, 벌써 해를 당한 뒤였다는 이야기가 <영남야어(嶺南野語)>에 전한다. 

재실.

재실은 입구(口)자 모양으로 지어졌는데, 가운데 나무가 한 그루 있다. 입구(口)에 나무 목(木)이 있으면, 곤궁한 곤(困)자가 되어, 나무를 심지 않는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 재실에 있는 나무는 일제 강점기 때 심은 것이라 한다.

엄흥도 정려각. 영조 2년(1726년)에 건립되었다.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로 유배되었으며, 1457년 10월 24일 영월 관풍헌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세조실록에는 "단종이 금성대군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스스로 목매어서 졸하니 예로써 장사 지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단종의 죽음에 대해서는 다른 설도 있다. 사약을 받고 죽었다는 설, 함께 있던 노비에게 활시위로 목졸림을 당했다는 설 등이 그것이다.

단종이 죽임을 당하고 시신은 동강에 버려졌는데, 그 시신을 수습하여 장례를 치루어준 이가 바로 엄흥도이다. 당시 단종의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는 어명에도 불구하고, 영월 호장이었던 엄흥도는 가족과 함께 단종의 시신을 암장하여 충신으로 추앙받게 되었다.

재실 쪽에서 바라본 홍살문.


왕릉에 화재가 발생할 것에 대비하여 조성한 냇물.



장판옥은 다른 왕릉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장릉에만 존재하는 건축물이다.


억울하게 죽은 '무주고혼'들에게 먹을 것을 주는 배식단.


홍살문. 자연 지형에 맞게, 어로가 직진하다가 우측으로 가도록 되어 있다.

왕릉에 따라서는 '신도' 대신 '향로'라고 부르기도 한다.







언덕 위에 자리한 장릉.

단종 비각

영조 9년(1733년) 어명으로 단종대왕릉비와 비각이 건립되었다. 비석 앞면에는 '조선국단종대왕장릉'이 음각되어 있으며, 뒷면에는 단종의 생애가 기록되어 있다.

단종 왕릉.

십이지신석이 갖추어져 있지 않고, 무신석도 없다.

단종 릉에서 내려다 본 풍경.



단종역사관에 잠시 들렀다.




장릉을 둘러보고 관풍헌에 들렀다. 단종이 최후를 맞이한 곳...




관풍헌을 둘러보고 영모전에 왔다.

최영, 임경업, 명성왕후 등 역사적으로 억울하게 죽은 인물이 무속의 신으로 좌정한 예는 흔히 있는 일이다. 단종은 '단종대왕신'이라는 이름으로 신격화 되었는데, 그를 모셔 놓은 곳이 바로 영모전이다.

영모전 올라가는 길.


영모전. 내부는 볼 수 없다.


영모전 아래에 있는 단종 조형물.



영모전을 본 후 청령포로 향했다.


단종에게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는 소나무.




관음송.

단종이 한양을 바라보며 울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단종 왕릉, 관풍헌, 영모전, 청령포를 둘러보고, 평창에 있는 육백마지기에 잠시 들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