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셔터> 후기 : 공연과 일상을 결합한 방식이 주목을 끌다
11월 18일 '씨어터 앤 펍 맥거핀'에서 연극 <셔터>를 관람했다. '씨어터 앤 펍 맥거핀'은 음식을 먹으면서 공연을 볼 수 있는 공간으로, 지하철 2호선 합정역 2번 출구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 공연 시간에 맞추어 극장에 들어서니, 이미 일찍 온 사람들이 와인이나 맥주를 마시면서 공연을 기다리고 있었다. 공연과 일상이 결합된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공연 공간의 문제에 대해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연극 <셔터>-남편을 바꾸는 필름
<셔터>는 비록 보잘것 없어 보인다 해도 진짜 나를 사랑해주고 가족을 지키는 사람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메시지를 전해주는 작품이다.
'남편을 바꾸는 필름'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못난 남편을 못마땅해 하는 부인이 사진기 셔터를 누르면 남편이 화보 속 모델이나 송중기같이 멋진 남자로 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배우자에게 무언가 아쉽고 못마땅하고 부족함을 느끼는 경우, 내 남편(혹은 아내)이 송중기(혹은 송혜교)같이 잘생기고 매력이 많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연극 <셔터>는, 내놓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마음 한켠에 자리 잡고 있는 이런 류의 욕망을 포착하여 극화한 것이다.
아내 '인지'는 남편 '철수'가 9급 공무원에 만족해 하며 가족만을 챙기는 듯한 모습도 마음에 안들고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에 심하게 짜증을 낸다. 그런데 남편이 사온 순대 봉지에서 신기한 사진기를 발견하는데, 인물 사진을 보고 셔터를 누르면 사진 속의 인물이 남편으로 '짠~'하고 나타나는 것이다. 잡지 모델이나 송중기 같은 남성이 말이다.
'인지'는 잘생긴 남편과 로맨스를 꿈꾸지만, 그 남자는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우고 아내에게는 냉랭하게 대한다. 결국 '인지'는 가족을 아끼고 다른 마음도 먹지 않는 처음 남편이 진정한 사랑임을 깨닫게 된다.
잘 생기고 돈 많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녀석은 온전한 사랑을 주지도 않을 뿐더러 바람 피우기 일쑤라는 것인데,,, 하긴, 잘생긴 남성이나 미모가 빼어난 여성이 인물값 하는 건 동서고금이 일반이다.
문득 옛날 이야기 <두더지의 혼인>이 떠올랐다.
옛날 한 두더지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배우자를 구하려고 했다. 먼저 하느님을 가장 존귀하다고 생각한 두더지가 하느님께 나아가 간청하자, 하느님은 “내가 비록 만물을 다스리고 있으나 해와 달이 없으면 내 덕을 드러낼 수가 없다.”고 했다.
두더지는 해를 찾아가 간청했다. 해는, “내 비록 만물을 비추나, 나를 가리는 구름은 어쩔 수 없다.”고 하며 사양했다. 그래서 두더지는 구름을 찾아갔으나, 구름은 “내 비록 해와 달을 가릴 수 있으나 바람이 불면 흩어질 수밖에 없으니 바람이 나보다 훌륭하다.”고 했다.
두더지는 다시 바람을 찾아가 부탁했다. 그러나 바람은, “내가 구름을 흩어뜨릴 수 있는 것은 사실이나, 밭 가운데 있는 돌부처는 아무리 힘을 써도 움직일 수 없으니, 돌부처가 나보다 낫다.”고 대답했다.
두더지의 간청을 받은 돌부처는, “내 비록 바람을 꺾을 수 있다 하나, 두더지가 내 발 아래를 파헤치면 나는 넘어질 수 밖에 없다. 두더지야말로 나에게는 가장 위대하다.”고 했다. 두더지는 비로소 자신들이 천하에서 제일 훌륭한 존재임을 깨닫고 결국 두더지와 혼인했다.






공연과 일상을 결합한 컨셉
연극 <셔터>에 출연한 배우들 연기가 세련되고 능숙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극의 내용 또한 다소 진부한 면이 없지 않았지만, 부담 없이 관람할 수 있었다. 연극 못지 않게 흥미를 끈 것은 이 연극을 공연하고 있는 극장 '씨어터 앤 펍 맥거핀'이었다. 이 곳은 음식과 술을 마실수 있는 공간으로, 공연 전후에 음식과 술을 주문할 수 있고 공연 중에 섭취도 가능했다. 대부분의공연장에서는 사진을 찍지 못하도록 하며 심지어 커튼콜조차 사진을 찍지 못하도록 하는 곳도 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마음대로 공연 장면을 찍어도 괜찮았다.
술 한잔 하면서 공연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이런 정보를 모르고 혼자 갔기에, 조용히 공연만 보고 나왔다.
사실 음식 먹으면서 공연 보는 건 우리 전통문화에서 흔히 있었던 일이다. 과거 급제를 축하하는 자리, 대갓집 회갑 잔치 등에서 광대들이 판을 벌이는 일이 매우 흔했던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와 '요정집'이 주요 공연 공간의 하나로 자리 잡으면서, 식사도 하고 공연도 보는 일이 그다지 긍정적으로 비치지 않은 측면이 없지 않다.
일본 긴자 가부키 극장에서 가부키를 본적 있다. 미동도 하지 않고 공연보던 관객들이 인터미션 시간에 벤또 먹으면서 폭풍 수다를 떠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에도시대 서민들의 오락물로 향유되었던 가부키 문화가 이런 형태로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배우들 뿐만 아니라 관객도 지켜야할 에티켓이 있는건 사실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 공연문화를 보면, 지나치게 엄숙주의가 지배하고 있는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늘 있다.
우리나라에 추임새가 있듯이, 플라멩코에도 '할레오'라고 해서 관객들이 참여할수 있는 통로가 있다. 가부키 공연에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가 '하나 미치'라는 통로를 통해 무대로 나올 때, 객석에 있는 팬들이 그 배우의 이름을 연호하며 응원한다. 방식의 차이는 있겠지만, 무대와 객석의 소통을 중시하는 것은 보편적 현상으로 보인다.
서양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사실의 재현(모방 이론 )과 극적 환상을 중시한 이래, 그러한 시각이 공연의 주류적 관점으로 자리잡아 왔다. 그 와중에 브레히트의 서사극 이론이나 오픈 씨어터(Open Theater) 등 반아리스토텔레스 연극미학을 추구하는 실험들이 끊임없이 시도된 것은 결국 공연의 본질을 관객과의 소통에서 찾으려고 한 것이다.
오래전에 연극 <관객모독>을 흥미롭게 본 적이 있다. 생동감없는 무대를 문제 삼고 수동적인 관객을 모욕하면서, 배우와 관객의 바람직한 관계는 어떠해야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게 인상적이었다.
연극 <셔터>를 보러 간것이지만, 공연 공간의 문제, 관객과 무대의 관계문제 등을 더많이 생각하게 되는 자리였다. '씨어터 앤 펍 맥거핀'이 추구하는 컨셉은 그런 점에서 매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무엇보다도 작품의 예술적 완성도와 콘텐츠가 훌륭해야겠지만, 관객과의 소통을 중시하고 공연과 일상을 결합시킨 이런 컨셉이 좀더 확산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