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속강(俗講) '땅설법' 학술대회 다녀오다
10월 13일 삼척 안정사에서 열린 '땅설법의 공연예술적 가치' 학술대회에 다녀왔다.



개인적으로 불교민속에 관심이 많아, 기회 있을 때마다 현장을 답사하곤 했다. 일본에서 수륙재에 관한 글을 발표한 적도 있다. 그런데 '땅설법'이라는 용어는 생소했다.
‘땅설법’은 ‘삼회향놀이’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이에 관해 처음 학술적으로 발표한 글은 1976년 최정여 교수의 ‘사원잡희(寺院雜戱) 삼회향(三回向, 속칭 땅설법)’이라는 논문이다. 본격적인 학술논문으로 보기 어려운 점이 있지만, 이 글에서 최정여 교수는 1963년 8월초에 서울 서대문구 인왕사 주지였던 정순정 화상에게서 삼회향놀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으며, 그 스님은 개성 완복사에서 있을 때 장모(張某) 화상으로부터 전수 받았다고 소개했다.
‘땅설법’이라는 용어가 학계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2018년경부터이다. 그리고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땅설법’이 지니고 있는 공연예술적 성격과 특징 그리고 가치가 비교적 깊이 있게 밝혀졌다고 할 수 있다. 학술 행사는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다.
□ 1부 발표 : 땅설법의 공연예술적 가치
○ 김형근, 안정사 땅설법의 공연예술 양상과 창작연희로의 활용 모색
○ 허용호, 안정사 땅설법의 인형극과 그림자극 연구
○ 윤동환, 안정사 농사놀이와 강원도 농악 농사풀이비교 연구
○ 신희라, 안정사 땅설법의 삽입가요 수용양상-<안락국태자경>을 중심으로
□ 2부 제안 : 땅설법의 가치 확산 아이디어
○ 함한희, 김도현, 박인수
□ 3부 : 전승자와의 열린 대화
○ 땅설법 법주 다여스님 및 안정사 신도(진행 : 김형근)
1부에서 4명의 연구자는 공연예술적 측면에서 땅설법의 특징과 가치를 구명했다. 현재 다여스님이 전승하고 있는‘땅설법’은 인형극, 그림자극, 삽입가요 등을 포괄하고 있으며, 그 안에 여러 지역의 음악이 공존하고 있다. 연구자들은 ‘땅설법’이 지니고 있는 공연예술적 측면을 다각적으로 분석하며, 그 활용가능성을 제시했다.
현전하는‘땅설법’의 역사성과 전통성이 인정된다면, 그 활용가능성을 모색할 여지는 많다. 다만 공연예술의 측면에서 연희의 수준이나 기량이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니어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숙고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부에서는 땅설법의 가치를 확산할 수 있는 방안이 제시되었는데, 3명의 패널은 공통적으로 땅설법이 이벤트화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현장과 밀착해서 전승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연구자가 지나치게 전승 과정에 관여해서는 안되며, 전승 주체 옆에서 조력자 역할을 해야 하는 데 머물러야 한다는 점도 지적했다.



3부에서 전승 주체인 다여스님의 증언과 신도들의 부분적인 시연이 있었다. 다여스님은 땅설법이 특정 지역의 문화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전국적 전승 기반을 지니고 있다며, 각 지역의 음악을 두루 알아야 땅설법을 제대로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증언 과정에서, <창부타령>, <신고산타령>, <별신굿 소리> 등 여러 지역의 노래를 들려주었는데, 그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특히 굿소리도 익숙하게 부르는 것으로 보아, 예사 스님이 아니라 무계와 연관이 있는 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개인적으로 다여스님의 학습내력과 전승 과정이 궁금했는데, 이에 관한 이야기는 많지 않았다. 다여 스님은 안정사 주지였던 대법스님과 북한에서 내려온 무명스님으로부터 '땅설법'을 익힌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으로 이 부분에 관한 조사 및 연구가 심도 있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다여 스님의 증언 과정에 신도 가운데 몇 명의 할머니들이 시연을 선보였는데, 이들은 <창부타령>, <신고산타령(어랑타령)>, <정선아라리>, <노래가락 차차차> 등을 불렀다. <정선 아라리>를 제외하면 모두 근대 이후에 불린 통속민요이다.

이번 학술대회는 ‘땅설법’의 공연예술적 가치를 구명하고 그 활용방안을 모색하는 데 목적을 두었으며, 이러한 목적을 어느 정도 달성했다고 판단된다. 그리고 땅설법이 전승되는 공간에서 열린 연구자의 학술대회에 땅설법의 전승 주체들이 동참함으로써, 이론과 실제를 겸한 행사가 되었다. 현장감과 생동감도 있었다.
땅설법의 구비 경전은 본전 <석가모니 일대기>, <선재동자 구법기>, <목련존자 일대기>, <성주신 일대기>, <신중신 일대기> 등 5종과 별전 <만석중증도기>, <안락국태자경>, <태자수대나경>, <심청효행록>, <삼한세존일대기>, <위제희부인만원연기> 등 6종이다. 이들 경전과 인형극, 그림자극 등 다양한 놀이가 결합된 ‘땅설법’은 대중불교 포교의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공연예술의 측면에서 주목할만한 가치가 있는 문화자산임에 틀림없다.
앞으로의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는 ‘땅설법’의 전승 과정에 대한 탐색을 통해 그 역사성과 전통성을 구명하는 작업이다. 무엇보다도 동아시아 속강의 맥락에서 전승되고 있는 ‘땅설법’이 오직 안정사에서 특정 스님을 통해서만 전승되고 있다는 현실 자체가 매우 기이할 정도이다. 그리고 현재 ‘땅설법’에 수용되어 있는 <창부타령>, <신고산타령(어랑타령)>, <노래가락 차차차> 등은 근대 이후에 불린 통속민요이다. 이를 구비전승 과정에서 보이는 ‘현재성’으로만 설명하는 것은 무언가 부족하다.
현재 유일한 연희자라 할 수 있는 다여 스님의 사승관계와 전승 과정에서의 변이 등에 대한 심층적인 조사가 요구되며, 나아가 ‘땅설법’을 체험한 향유층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옥계 휴게소에 들러, 구름과 바다가 제법 잘 어울리는 동해바다를 보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