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의 의의와 과제
한류를 바라보는 시각은 양면적이다. 긍정적인 시각에서 보는 경우, 한류는 한국문화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일대 사건일 뿐만 아니라 국가의 위상을 높이고 엄청난 경제적 부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매력적인 상품일 수 있다고 인식한다. 나아가 한류는 외교적인 측면에서 국격(國格)을 높일 수 있는 대외정책의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보기도 한다.
그렇지만 한류에 대해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 또한 엄존하고 있다. 한류는 저급한 대중문화가 대부분으로, 해외에서 일부 젊은 층에게나 호응을 얻는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라고 보는 것이 비판적 관점의 핵심이다. 한류는 천박한 자본주의 혹은 산업적 국가자본주의의 산물로, 그 생명력이 길지 못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보이고 시각도 이와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문화의 수준을 나누어 고급과 저급, 엘리트문화와 대중문화 등 이분법적으로 접근하는 태도가 과연 바람직한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지만, 한류에 대한 이러한 비판적 관점도 도외시해서는 안된다. 한류는 현재진행형의 문화현상이기 때문에, 그 미래를 단정적으로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별로 생산적이지 않다. 한류를 어떻게 이해하고 가꾸어 나가느냐에 따라 한류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류는 K Pop과 드라마를 중심으로 인기를 얻었지만, 영화, 애니메이션, 패션, 음식, 의료 등 그 영역이 다양하게 확장되고 있다. 이러한 장르 다변화를 바탕으로 방송 콘텐츠를 비롯하여 많은 수의 콘텐츠가 창출되고 있다. 한류에 대한 관심이나 인기 또한 아시아권을 넘어 중동과 중남미 그리고 아프리카 등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이다. 이러한 흐름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동종업계 내부에서의 과도한 경쟁이나 부실한 콘텐츠 양산 그리고 기획력이 뒷받침 되지 않는 주먹구구식의 운용 등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 문화에 대한 쌍방향 소통과 존중이 필요한데, 한류에 대해 일종의 민족주의적 맹목적 애정을 보이는 태도 또한 경계해야 한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에서 발간한 ‘2018 글로벌 한류 트렌드’에 의하면, 권역에 따라 한류에 대한 선호 장르나 영역 그리고 수용 양태 등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K-Pop, TV드라마, 한국음식, 한류 스타, 뷰티 순으로 인기가 있었다. 말레이시아, 호주 등에서는 자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한국 상품 및 콘텐츠 1위가 K-Pop이었으며, 특히 말레이시아(81.8%)에서 그 인기가 가장 높았다. TV 드라마는 중국, 대만, 인도네시아에서 1위로 나타났으며, 한국 음식의 경우 일본에서 최상위를 차지했다. 태국에서는 한류스타의 인기가 높았으며, 한국 IT 산업은 인도에서 가장 인기 있었다. 미주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한국 상품 및 콘텐츠 1위는 K-Pop이었다. 브라질에서는 K-Pop이 1위였으며, 미국에서는 한국 음식이 가장 인기 있었다. 그 밖에 태권도, 애니메이션, IT산업 등이 이들 국가에서 공통으로 인기 있었다. UAE에서는 한국 영화, K-Pop, 드라마를 비롯해 한국 음식, 패션 등이 인기 있었다. 남아공에서는 IT산업, 자동차 등을 비롯하여, 게임과 한국 전통 무예인 태권도 등을 선호했다.
유럽에서는 태권도, IT산업, 자동차 등에 대한 인기가 특히 높았는데, 국가별로 다소 차이가 있었다. 프랑스와 영국에서는 K-Pop이 가장 인기 있었으며, 터키에서는 한국 영화가 가장 인기 있었다. 러시아에서는 자동차에 대한 선호도가 가장 높았으며, 프랑스와 터키에서는 자동차의 인기가 4위였다. IT산업은 프랑스에서 2위였으며, 러시아와 영국에서는 각각 3위와 4위였으며 터키에서는 5위였다. 국가나 지역에 따라 한류에 대한 선호도나 선호 영역이 차이를 보이는 것은 해당 국가의 문화적 배경이나 경제적 수준 등이 다른 데서 비롯된 당연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한류에 관한 연구 성과는 양적으로 볼 때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한류의 실체와 객관적 상황을 정확하게 보여주고 이를 심도 있게 분석한 연구는 그다지 많다고 할 수 없다. 국가나 공공 기관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조사나 연구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다. 그렇지만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그야말로 객관적이고 학문적 엄밀성을 담보한 연구가 보다 깊이 있게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류를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 이는 아마도 한류를 문화적 현상으로만 보기 어렵게 만드는 요소가 있기 때문일 수 있다. 한류가 상업주의나 대중문화와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렇다 해도 우리 사회는 이미 진작에 대중의 시대로 접어들었으며, 부의 가치를 창출하는 상업적 속성을 반드시 폄하해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한류는 한국문화가 더 이상 자국문화에만 갇혀 있지 않고 세계가 함께 하는 보편적 문화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문화적 현상이다. 이와 관련하여 한류의 지속성과 확산을 담보하기 위해 해외에서 한국문화를 연구하는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방안이다. 해외에서의 한국문화 교육이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지 못하고 한국어 교육의 방편 혹은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해외에서의 한국문화 전문가 양성방안을 논하는 자체가 시기상조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K Pop을 비롯하여 이른바 한류의 붐을 타고 한국문화에 대한 해외에서의 관심이 이전에 비해 비약적으로 많아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한국문화 교육이 지속적이고 실질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해외에서의 한국문화 전문가 양성이 시급한 과제이다. 각 지역마다 문화적 여건과 환경이 다른데, 언어 교육과 달리 문화교육의 경우 해당 지역의 특수성을 고려한 교육이 훨씬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교육 목표를 전문가 양성에 둔다면, 교육 내용 또한 마땅히 전문성을 담보한 심화된 교과과정으로 진행 되어야 할 것이다.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교양강좌 성격의 교육 프로그램과 구별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내 한국문화 전문가를 해외에 파견하여 한국문화 전문가 양성 교육을 담당할 수 있는 시스템과 지원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세종학당이나 국제교류재단의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한국학 관련 학과나 연구소를 보유하고 있는 해외 대학과의 연계를 적극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한국문화 교육에 사용할 교재와 교안을 개발하는 일 또한 시급한 과제이다. 이와 관련하여 기존에 제출된 성과가 많은 편도 아니지만 그마저도 대체적으로 실험적, 시론적, 탐색적 성격이 강하다. 그리고 기술된 내용을 섬세하게 검토해 보면 전문성의 측면에서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한국문화 교육에 사용할 수 있는 교재를 개발하는 작업이 사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이는 논의 대상 범위가 워낙 넓은데서 기인한 것이겠지만, 한국문화 전 범위에 대해 전문적 식견을 갖춘 연구자를 찾기도 난망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역별로 해당분야 전문가의 참여 속에서 공동작업의 성격을 가지고 교재를 개발하는 작업 등이 필요할 것이다.
한국문화는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고 있다. 일정한 역사성을 담보한 ‘전통문화’와, ‘한류’로 대표되는 동시대 대중문화가 공존하고 있다는 뜻이다. 문화는 삶의 양식의 총체라 할 수 있는데, 20세기 이후 한국사회의 토대가 급격하게 변모하면서 문화 또한 이전 시기와 질적으로 구분되는 변화를 보이게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 시기의 문화에만 주목한다면 한국문화를 두루 아우를 수 없는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 설령 해외에서 이른바 ‘한류’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 하더라도 한류만을 중심으로 한국문화를 교육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한류’가 곧 한국문화의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서는‘한류’에서 한국적 요소는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직면할 수도 있다. 가령 대표적인 한류로 꼽히는 K Pop에서‘K’의 요소가 과연 있는가 라고 하면서 K Pop의‘무국적성’ 혹은‘초국적성’을 지적하는 시각이 있다. 이러한 문제 제기에 대해 설득력 있는 설명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문화가 지니고 있는 생성적 성격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지속성의 측면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한국문화를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문화의 통시적 전개와 변화상을 꿰뜷어 볼 수 있는 안목을 갖추고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안목을 지닌 전문가가 배출되었을 때, 한국문화에 대한 체계적이고 깊이 있는 교육이 가능할 것이다.
한류로 상징되는 문화콘텐츠산업은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상당하다. 이는 1998년 영국 크리에이티브 브리튼의 성공과 견줄 수 있다. 제조업이 침체를 겪고 있던 영국은 경제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신성장 동력을 문화에서 찾은 것이다. 영화, 음악, 공연, 디자인, 광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크리에이티브 브리튼의 성공신화를 일구어냈다. 그 결과 국민소득 3만달러에 머물러 있던 것을 2006년 4만달러로 끌어 올릴 수 있었다. 한류는 여러 면에서 크리에이티브 브리튼과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드라마와 K Pop 중심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는 못하다. 국가의 뒷받침이 강력했던 영국에 미치지는 못하지는 한국 또한 국가 차원에서 중장기 전략을 마련하여 적극 지원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문화콘텐츠의 고용유발계수는 15.2명(10억원당)으로, 이는 제조업의 두 배(6.0명)를 상회하는 것이다. 한류의 연간 고용유발효과는 약 7만여명으로, 이는 국내 5대 기업채용 수준과 맞먹는 것이다. 한류는 문화현상이기 때문에 이와같이 수치로만 환산되지 않는 플러스 알파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Made in korea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극대화 하고 한국어와 한국 상품에 대한 선호도를 높이는 효과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런데 한류의 지속과 확산을 위해서는 무분별한 상업주의와 국가주의 그리고 민족주의적 사고를 탈피하는 것도 필요하다. 한국문화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시각, 경제적 부가가치 창출에 대한 관심, 한국 소프트 파워의 증진 수단으로 한류를 바라보는 시각 등이 국가주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시각에만 매몰될 경우, 자칫 한류에 대한 반감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많으며, 실제로 그동안 그러한 현상이 드물지 않게 있어 왔다. 쌍방향 소통을 중시하고 상대 문화에 대한 존중이 전제되었을 때 한류 또한 상대 국가로부터 배척당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나 기획사 등이 중장기적인 전략을 마련하고 체계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국가가 지나치게 개입할 경우 국가주의의 혐의를 받을 염려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가의 역할을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기획사 등도 상업주의에만 매몰되지 말고 문화의 의의나 가치 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전략적 사고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류의 확산을 위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게 주목해야 할 점은 콘텐츠를 다양화 하고 질적 우수성을 담보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이른바 한류로 통칭되는 문화적 현상은 대중문화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제한적인 의의를 지니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국문화의 역사성을 담보한 전통에 기반하면서 현재적 의의를 지닌 새로운 문화의 창출, 정립, 확산 또한 긴요한 과제이다. 이런 점에서 10여년전인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전통문화에 기반을 둔 K Culture 한류 3.0의 육성을 정책 목표로 제시한 것은 일정한 의미가 있다. 물론 K Culture의 범위나 실체가 명확하지 않은 점이 있고 다분히 정책적인 측면에서 방향성 내지 지향점을 제시한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국가에서의 이러한 정책 목표가 어느 정도 실효성을 거둘 수 있는지 현 시점에서 속단하기는 어렵다. 이는 앞으로 구체적 실천 작업을 통해 그 타당성 여부가 검증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