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뮤지컬 이야기 : 우리나라 최초의 뮤지컬, 그리고 그 후

간다르바 2021. 9. 12.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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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은 노래와 춤 그리고 이야기가 결합된 무대예술의 한 형태로, 음악극의 범주에 속한다. 뮤지컬은 19세기말 영국과 미국에서 발생한 대중오락 범주의 공연물을 두루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음악뿐만 아니라 서사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점에서  음악 중심의 양식인 '오페라'와 변별된다.

 

우리나라에서 뮤지컬은 1960년대에 등장하는데, 이 시기는 대중매체가 발달하면서 본격적으로 대중문화가 개막되는 특징을 보인다. 그리고 자본주의적 근대화와 서구화, 8군 쇼를 중심으로 한 미국문화의 유입과 확산, 영화계의 활성화 등이 본격화 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러한 시대적 조건 속에서 새로운 공연양식의 실험대중성 모색을 목적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뮤지컬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뮤지컬은 1966년 예그린 악단이 무대에 올린 <살짜기 옵서예>이다. 이 작품은 고전 소설 <배비장전>을 각색한 것으로, 서울시민회관(현 세종문화회관)에서 4일간 총 8회에 걸쳐 공연되었다. 16,000여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는데, 당시 인기가수였던 패티김이 주인공 애랑으로 출연했다. 그리고 <살짜기 옵서예>의 주제가는 대중가요로 불릴 만큼 큰 인기를 누렸다.

1966년 <살짜기 옵서예> 애랑 역을 맡은 패티 김(왼쪽)(출처 : 네이버 이미지 사진). 패티김은 가수 출신 뮤지컬 배우 1호인 셈이다. <살짜기 옵서예>를 공연한  극단 이름 '예그린'은  ‘ 옛과 어제를 그리며 내일을 위하여 ’ 라는 의미로 ,  민요의 현대화와민속예술의 국제화를 모토로 내세운 것이다. '예그린 악단'은 1973 년 국립극장의 전속단체 '국립가무단'으로 개편되었다.

 

※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의 원전인 고전소설 <배비장전>은 공허하고 위선적인 유가윤리를 풍자한 작품이다. 평소 도덕군자를 자처하며 주색을 멀리하고 도도하게 지내던 배비장이 상관인 제주목사를 따라 제주에 부임한다. 그러나 배비장은 제주목사의 명을 받은 기생 애랑과 방자의 계교에 빠져 궤 속에 든 채 관아에 끌려가 망신을 당하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이후 예그린 악단은 TV드라마 <이 세상에서 가장 어여쁜 색시>를 뮤지컬화 한 꽃님이 꽃님이 꽃님이(1967), 고전소설 <춘향전>을 뮤지컬화 한 <대춘향전>(1968) 등을 무대에 올렸다. 그렇지만 과다한 제작비, 전문적인 배우와 스텝진의 부족, 극장공간의 미비, 민간단체의 미숙한 운영과 조직 그리고 열악한 제작환경 등으로 인해 뮤지컬의 지속적인 제작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뮤지컬이 대중들의 이목을 끌며 본격적으로 공연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들어와서이다. 경제 성장과 인구 팽창, 대중교육 수준의 향상 그리고 문화적 욕구의 증대를 특징으로 하는 시대 배경 속에서,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된 민중극단의 <아가씨와 건달들>(1983)이 대중들의 열렬한 호응을 받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당시 이 공연을 보면서, 제목이 왜 <아가씨와 건달들>일까 의아해 했던 기억이 있다. <아가씨와 건달들>의 원제는 <Guys and Dolls>로, 1951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이래 뮤지컬의 고전이 된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이다. 이 작품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선교사와 도박꾼의 사랑, 의리를 저버리지 않은 진짜 남자들의 우정을 다루었다. 1983년 초연된 <아가씨와 건달들> 공연은 뮤지컬이라는 갈래를 대중들에게 확실하게 각인시킨 계기가 되었으며,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재공연된 작품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한국 초연 <아가씨와 건달들>(1983년) 팸플릿(출처 : 네이버 이미지 사진)

2001LG아트센터 <오페라의 유령>이 장기 공연되며 뮤지컬은 대중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갈래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하게 되었으며, 창작 뮤지컬 제작과 더불어 해외에 판권을 지불하는 라이선스 뮤지컬 공연도 점차 많아졌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팸플릿(출처 : 네이버 이미지 사진)

 

 

뮤지컬이 양적으로 엄청난 성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뮤지컬에 대한 세간의 인식이 그리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단순하고 확연한 줄거리, 화려한 볼거리, 언어연극보다 덜 사색적이라는 등의 이유로, 저급한 대중예술이라는 인식이 팽배한 것도 사실이다. 대작의 성격을 지닌 작품은 관람료도 꽤 비싼 편이며, 소규모의 뮤지컬은 영세성을 벗어나지 못하며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경우도 제법 있다.

 

그렇다 해도 시대는 변했고 대중들의 취향도 변했다. 춤과 노래와 서사가 공존하며 다양한 볼거리와 재미를 선사하는 뮤지컬은 기본적으로 대중성을 담보하고 있다. 여기에 작품성이 더해져 예술적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 많아지면서, 뮤지컬은 21세기를 대표하는 공연예술로서의 위상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