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배비장전>, 제주문화의 옷을 입히다
○ 늘푸른 연극제 참가작 <제주배비장전>
○ 일시 : 2024년 11월 5일
○ 장소 : 미마지아트센터 눈빛극장

<배비장전>은 판소리 실전7가의 한 작품이자 대표적인 해학소설이다. 정남을 자처한 배비장이 제주목사와 기생 애랑의 공모에 빠져 여색을 탐하다 패가망신한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는 <배비장전>은 대중의 흥미를 끌만한 요소를 지니고 있어, 그동안 창극, 마당놀이, 연극 등 다양한 양식으로 변주되고 재창조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뮤지컬로 평가받는 <살짜기 옵서예>(1966년 예그린에서 공연)도 <배비장전>을 각색한 작품이다.
일반적으로 <배비장전>은 '배비장'이라는 전형적 인물을 내세워 양반의 위선과 허위의식을 풍자하고 웃음거리화 한 작품으로 이해하지만, 관료사회에서 통용되던 일종의 '신참례(新參禮)'의식을 다룬 작품으로 보기도 한다. '신참례'란 선배 관리가 신임 관리를 길들이기 위한 과정으로서 관료 사회의 입사식(入社式)을 말한다.
이번에 공연된 <제주베비장전>은 제주에 기반을 둔 '극단 정랑'이 무대에 올린 것으로, 그동안 "연극을 통해 제주 언어, 민요, 무속, 풍물 등을 유지, 보존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활동"에 주력해 온 이 극단의 지향성이 잘 담긴 공연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제목에 그 점이 잘 나타나 있다. 작품 배경이기도 한 '제주'를 제목에 포함함으로써, '제주'의 문화적 정체성이 담긴 공연이라는 점을 명시적으로 드러낸 셈이기 때문이다. 아닌게 아니라 <제주배비장전>에는 제주의 언어, 무속 그리고 민요 등이 다양하게 포함되어 있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극중 인물인 '심방'(제주에서 무당을 가리키는 명칭)이 등장하여 제주 민요를 가르쳐 주었으며, 제주굿에서 사용되는 무악기인 대양, 설쇠, 장고, 북을 무대 앞에 배치하여 공연 내내 반주를 담당했다.


극이 시작되자 배비장의 혼령을 불러낸다는 명목으로 심방이 등장하여 신칼과 요령을 들고 굿춤을 추었다. 그리고 여러 배우들이 종이가면을 쓰고 춤을 추었는데, 이는 영감놀이(도깨비신을 위한 제주굿)의 요소를 차용한 것으로 보였다.
배우들은 제주어를 사용했는데, 문맥을 고려하다보니 이해하지 못할 내용은 거의 없었다. "폭싹 속았수다"(수고 많았다는 의미)나 "요망지다"(똑똑하고 야무지다는 의미)와 같이 알고 있는 제주어가 사용될 때는 반가운 생각조차 들었다.
극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불린 <너영 나영>, <이아홍 타령>, <이어도 사나> 등 다양한 민요도 제주의 문화적 요소를 잘 보여주는 것이었다.
마당놀이의 형식을 취한 것도 이 공연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원형무대는 아니었지만, 객석 맨 앞줄에 악사들이 배치되었으며 해설자가 등장하여 극을 이끌어 갔다. 해설을 담당한 이태훈 배우는 등장인물을 소개하거나 극중 상황을 설명하는 역할 뿐만 아니라 민요를 부르고 관객의 추임새나 호응을 유도하는 등 극 진행의 중심을 잡으면서 분위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배비장전>에 제주 문화의 요소를 수용한 것 자체가 제주문화의 의미와 가치를 드러내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본질적으로 고민해야 할 문제는 제주의 굿이나 민요 등이 극의 맥락 속에 자연스럽게 용해되어 극의 의미를 효과적으로 부각하고 작품 완성도를 높이는 데 기여했느냐의 여부일 것이다. 원작과 달리, 심방이 등장하여 배비장의 혼을 불러낸 것으로 설정한 것은 흥미로운 시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영감놀이에서 모티프를 가져온 것으로 보이는 종이 가면을 쓴 배우들의 등장은 볼거리를 제공했다고 할 수 있으나 극의 상황에 부합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궤 속에 든 배비장을 두고 상여소리를 부른 것도 자연스러워 보이지는 않았다.
이 공연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배우들의 역량이었다. 전체적으로 연기력이나 대사구사 능력이 부족해 보였다. 공연 내내 갓을 바로 쓰느라 손을 올렸다 내렸다 하는 동작을 반복한 배비장의 모습은 참으로 안타까웠다. 조명 사용도 어정쩡한 데가 있었으며, 의상도 조야했다. SNS나 유튜브 등 현재 사용하는 용어를 즉흥적인 대사처럼 사용한 장면도 여러차례 있었는데, 자연스럽지 않고 어색했다. 시간 제약이 있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정비장의 발치(拔齒) 삽화 등 관객의 흥미를 끌만한 요소들이 빠진 점도 아쉬웠다.
<배비장전>이 아니라 <제주배비장전>이라고 한 것은 이 작품의 특징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에 제주 문화의 옷을 입히는 작업은 충분히 시도해 볼만한 일이지만, 무엇보다도 작품 자체에 집중하여 완성도를 높이는 데 주력하는 것이 선결 과제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