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저스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인간의 본성과 구원의 문제를 다루다
1월 3일 광림아트센터에서 뮤지컬 <지저스크라이스트 수퍼스타>를 관람했다. 지난해 12월 15일에 이어 두번째 보는 것이다.
성서에 기반했으면서도, 2000년 전 시공간을 현대로 옮겨와 인간의 본성과 구원의 문제를 다룬 뮤지컬 <지저스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예수를 수퍼스타로, 그를 따르는 군중들을 히피로 묘사해서, 초창기부터 논란을 불러 일으켰지만 어느새 세계적으로 잘알려진 뮤지컬로 자리매김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제목에서도 알수 있듯이 수퍼스타 예수다. 그를 추앙하는 군중들이 주위를 에워싸고 열광하며, 여성 마리아가 언제나 그 곁에 있다. 그런데 예수는 자신이 가야할 길에 대해 하느님에게 절규하듯 하소연하는가 하면 자신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군중들의 행태를 답답해하며 괴로워한다. 예수는 군중을 선동한 정치범으로 몰려 결국 십자가형을 받고 장엄한 최후를 맞이하는데, 십자가에 못박혀 허공에 매달린 예수를 집중하던 조명이 꺼지고 비장한 음악이 끝맺음하는 그 장면에서 가슴이 처연했다. 그러나 끝내 부활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인물의 성격상 극중 예수의 행동이나 표현 영역이 넓다고 할 수는 없으나, 일탈한 군중을 힐난하거나 유다에게 호통치는 장면 그리고 하느님에게 호소하는 대목에서 보인 샤우팅은 그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다. 마이클리나 임태경 모두 명불허전으로, 각기 개성 있는 모습으로 예수의 형상을 잘 소화해서 보여주었다. 마이클리가 성스러운 분위기를 좀더 잘 드러냈다면 임태경은 인간적인 고뇌를 좀더 강렬하게 드러냈다고나 할까..
제자이면서도 제사장에게 예수를 팔아넘긴 유다는 이 작품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 어떤 면에서는 주인공 예수보다 존재감이 더 크다고 할 수 있으며, 작품의 처음과 끝을 담당하는 인물도 유다이다. 공연이 시작되면 유다가 등장하여 < Heaven on their minds>를 부르며 내면적 갈등을 노래한다. 예수가 자신이 처한 상황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으며 사람들이 현실을 넘어서 공상적인 천국 생각 뿐이라고 경고하고, 이러다가 마침내 모든 게 끝장날 것이라며 절규하듯 부르는 것이다. 극이 진행되는 동안 유다는 군중 속에 섞이지 않고 예수 주변을 겉돌며 심리적 거리를 드러낸다. 심지어 최후의 만찬에서 유다는 자신을 배신자로 칭하며 갈길을 가라고 호통치는 예수에 맞서 항변하기도 한다.
유다를 단순한 배신자로 치부하지 않고 그의 인간적인 고뇌에 주목한 시각이 사실 새로운 것은 아니다. 다자이 오사무 작 <직소>(<유다의 고백>으로 번역되기도 함)를 본적이 있다. 가롯 유다와 예수에 관한 이야기로, 세속적 욕망에 함몰된 인간의 추악함을 현실감 있게 그린 작품이다. 유다가 예수를 로마군에게 팔아넘기면서 예수에 대한 복합적 감정을 횡설수설하듯이 떠벌이는 내용이어서 제목을 <직소>라고 했다. 장사꾼 유다는 예수와 나눈 대화를 회상하며 애증을 토로한다. 물질적 가치와 현세의 기쁨만을 소중히 여기는 유다는 예수가 아름다운 사람임은 인정하면서도, 그가 추구하는 고귀하고 이상적인 가치는 부정하며 때론 질투의 감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내적 갈등으로 고민하던 유다는 결국 자신의 한계를 자각하면서도 현상금이 걸린 예수를 고발한다. 뮤지컬 <지저스크라이스트 수퍼스타>에서도 유다는 이와 유사한 인물로 형상화되었는데, 예수를 존경하면서도 끝내 거리를 좁히지 못하는 내면의 갈등을 토해내듯 부른 그의 넘버곡은 심금을 울리는 바가 없지 않았다. 유다는 예수를 팔아넘긴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목매 자살하지만,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힌 이후 무대에 등장하여 한바탕 신나는 노래를 선보이며 작품의 결말을 맺는다. 유다역을 맡은 서은광과 백형훈 모두 소름돋을 정도의 가창력을 선보였다.
개인적으로 공연 보는 내내 전율을 느낀 장면은 힙합과 락이 동반된 군중들의 군무였다. '호산나'를 외치기도 하며 예수를 추앙하던 군중들이 막상 예수가 빌라도 총독에게 체포되자 돌변하여 그를 재판에 넘기고 처형하라며 광기를 보였기 때문이다. 군중들은 자신들에게 아낌없이 사랑을 베푼 예수를 때리고 야유하고 심지어 저주했다. 주체적으로 사고하지 못하고 부화뇌동하고 이해관계에 따라 태도를 돌변하는 이른바 '군중심리'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한 모양이다.
죄없이 죽어간 예수. 그게 하느님의 뜻이고 구원의 길일지라도, '십자가'로 상징되는 그 어마어마한 고통과 희생을 감내해야 했던 예수...
막달레나 마리아는 여성으로서, 일관되게 예수 곁을 지키는 유일한 인물이다.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의 주검을 어루만지는 이도 마리아였다. 애절하게 부른 넘버곡과 어떤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예수의 최후를 지킨 그녀에게서 진정한 사랑이 느껴졌다.
예수나 유다에 비해 비중이 크다고 할수는 없지만, 헤롯왕은 자칫 비장일변도로 흐를 수 있는 극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근사한 춤과 노래를 선보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몫을 수행했다고 할 수 있다. 체통이 서지 않음에도 애써 위엄있게 보이려는 얄팍함과 세속적인 욕망을 한껏 발산하는 헤롯은 예수와 대척적인 위치에 있는 인물로선 제격이었다.
세월이 갈수록 내면 어딘가에 숨어 있던 종교적 심성이 자꾸 튀어나오는걸 느낀다. 이 공연을 보면서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 인간의 본성과 구원의 문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밑도 끝도 없고 결론도 없는 고민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