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극동 시베리아 순례길>
11월 11일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연극 <극동 시베리아 순례길>(연출 정진새)을 관람했다.
이젠 BC와 AD가 코로나 이전과 이후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할 정도로, 코로나는 인류의 삶의 방식이나 패턴을 근본적으로 뒤바꾸어놓았다. 무엇보다도 대면보다는 비대면관계가 보편화되고 가상현실과 실제현실이 공존하게 되었다. 이 연극은 이러한 시대상황을 배경으로, '온라인 여행'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인생에서 가장 매력있는 것이 '여행'이고 그 다음이 '공연' 보는 일인데, 여행을 주제로 한 공연이어서 어떤 작품일까 기대하면서 관람했다.
2020년으로부터 얼마가 지난 시점에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뒤섞인 현실에서 순례도 마치 게임 속 캐릭터처럼 온라인으로 하는데, 대부분 온라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선택하는 상황에서 홀로 극동 시베리아로 ‘직접’ 순례를 떠나는 ‘그’가 등장한다.
스페인 '산티아고'는 예수의 제자 성 야고보의 유해가 발견됐다고 알려진 곳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표적인 순례길이다.
연극에서 '산티아고'는 신을 만나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이자 서로를 챙겨주는 안전한 길이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호하는 선망의 길로 제시되었다. 그리고 그 대척점으로 극동 시베리아가 제시된 것이다. 사실 사하라 사막, 히말라야산맥, 아우슈비츠, 남극대륙으로 설정해도 상관없지만, 작가는 시베리아를 선택했다. 그리고 서양 중심의 세계관이 투사된 '극동'이라는 말을 덧붙여 외지고 고립된 이미지를 부각했다.
극동 시베리아! 그곳에 가기 위해 오호츠크 바다와 땅끝 해협을 건너기 위해서는 '마가단'이라는 도시를 꼭 지나야 하고, 유배된 정치범들이 강제 노역을 당했고 죽은 이들이 그대로 묻혀 '뼈 위의 도로'로 불린다는 '콜리마'를 통과해야만 하는 곳...시베리아는 산티아고의 대척점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제격이었다.
그러니까 이 작품에서 산티아고와 극동시베리아는 실재하는 현실공간이면서도 관념적이고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공간으로 설정된 것이다.
극의 중심 인물은 주로 오호츠크 해상의 기후탐사선에 타고 있는 기후연구원 AA와 BB로, 실존을 추구하는 AA와 가상을 받아들인 BB는 극동 시베리아를 향해 떠나는 ‘그’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다양한 주제에 관해 논쟁을 벌이며 극을 이끌어갔다.
그런데 극의 서사는 유기적인 플롯을 갖추지 않았다. 두 사람의 대화는 수많은 암전으로 구획되었으며, 각각의 장면은 모호하면서도 무언가 생각하게 하는 일정한 의미망을 드러냈다.
연극에서 암전은 공간적 제약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앞 뒤장면의 유기성과 극의 사실성을 높이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암전은 흐릿하고 희미한, 깜박이는 세계를 보여주는 장치로 기능했다. "세상이 깜박거리는데 분명한 것은 하나도 없어. 지금은 정체성의 위기가 아니라, 비현실의 위기야.” 라는 대사가 말해주듯, 빈번한 암전은 자명해 보이는것조차 실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세계는 현실과 비현실의 구분조차 모호하다는 사실을 극적으로 표현한 장치였던 것이다. 무언가를 포착하려는듯이 사방을 비추는 레이더와 더불어...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아니 극동 시베리아로 순례를 떠나는 사람을 통해 이 작품이 제기한 문제는 다분히 철학적이었다. 그가 원하고 믿는 것은 무엇인지 구원 대신 다른 무언가를 추구한 것인지 나아가 '인간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바람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등등... 어찌보면 밑도 끝도 없는 물음들이 극이 진행되는 내내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쏟아놓은 문제제기와 달리, 결말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해답도 명쾌하게 제시된건 없었다. 마침내 동쪽 끝에 다다른 순례자는 우주로부터 불어온 바람인 오로라를 바라보며, “죽고 싶진 않지만, 살아 있다는 것의 허전함을 그만 느끼고 싶다”며 기도하듯 말했다. 허망함과 쓸쓸함을 내비쳤을 뿐, 그렇다고 죽음의 세계를 선택했다고 보기도 어려운 결말.... 근거없는 낙관적 전망은 공허하나, 모호하기만 한 결말은 막막했다.
연출가는 언어나 상황이 따로 노는 부조리극을 쓰고자 한 모양인데, 코로나 이후 시대를 배경으로 인간 존재의 의미 혹은 무의미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담으려 시도했다는 점에서 보면 일견 그럴듯해 보인다.
그런데 거칠게 말하면 이 극은 '개똥철학' 연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통적인 플롯 개념을 해체하고, 비약과 생략 그리고 은유의 수법을 동원했다고 근사한 부조리극이 될 수 있을까. 여행을 소재로 발상의 전환을 시도한 점은 참신한 데가 있으나, 시대와 삶과 인간에 대한 통찰이 담긴 언어가 빈약했다는 아쉬움은 떨칠 수 없었다.